먼저... 오유인은 내게 절친이므로 말 놓음!...
당장은 저렇듯 서럽게 우는 것이....
부모와의 협상카드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나...
나중 어른이 되어서는 환하게 웃는 표정이...
더 많은 득이 된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 되겠지...
나도 생생하게 기억 나는 과정 하나....
아주 총명?하던 어린 나이에...
어느날인가... 시골 아낙이셨던 어머니가...
평소 농사일 하시던 몸빼에 티셔츠 옷차림이 아닌
꽃가라 블라우스에 감색 주름치마 차림으로 아침부터 외출준비를 서두르셨드랬지...
눈이 휘둥그래 쳐다 보던 난 이내 함께 나설 수 없다는 인지를 하고 그때부터 닭×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는 서럽게 떼를 쓰며 목놓아 울기 시작했지...
'제발... 나도 같이 데리고 가 달라고...'
지금처럼 어디 교육적 시설에서 유년기를 보내는 것도 아닌...
엄마가 호미 들고 밭에 나가면 밭둑이 놀이터 였고... 장화 신고 논에 나가면 논둑에서 흙장난에 빠졌으며... 밥 지을 땐 아궁이 옆에서 불쏘시개 놀이에...
그저 엄마곁이면 안심하고 심심한 것도 몰랐던 시기였었으니... 아마 엄마가 나를 떼어 놓고 아주 멀리 간다는 생각에 두려웠었나봐~
함께 갈 수 없던 엄마는 그런 날 어르고 달래다가 나중엔 역정까지 내셨지만... 한번 터진 서러움?의 눈물을 멈출 것 같지 않던 막내아들이 안스러우셨는지 다시 몸빼로... 티셔츠로 갈아 입으셨드랬어...
안 가신거지...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못 가신거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동네 부녀회에서 어디 나들이를 가실려고 했었다던데... 철부지 막내아들 때문에 포기하신 거였지...
나중 머리가 커져서 그 이야기를 어머니한테 직접 들었을 때 얼마나 죄송스럽고 내 자신이 미워져 속이 상하던지...
힘들게 농사일 하시다가 잠시 잠깐 그 나들이가 당신한테는 커다란 기쁨이자 활력소였을텐데...
그런 어머니가...
요즘은 날 보시면... 한번씩 이런 말씀을 하셔...
"넌 언제 제대한다냐?"
"집에 소 여물은 누가 쑨다냐?"
그럼 지금의 난 활짝 웃으며 이렇게 대답을 하지...
"엄마!... 내가 제대한지 20년은 되가요~"
"우리집 소... 이제 없유! 그런 걱정 하지마요"
그리고 나서... 난...
요양원에서 발길 돌리자마자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막 솟구쳐 오르는 걸 또 주체하지 못하게 되지...
지금은 그저... 당신 앞에서 만큼은 활짝 웃어 드리는 게 정말... 잘하는 것이라 싶어...
난 더이상... 이제 애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