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의사 이보라 씨(34·서울 동부병원)는 지난 18일 광화문 광장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유민 아빠 김영오(47) 씨를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36일째 단식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한 남성을 앞에 두고 ‘살려달라’는 진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김영오 씨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의사인 제가 아니라 정부와 정치인들입니다. 제발 기아 상태인 유민 아빠 영오 씨를 치료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 씨의 호소에 옆에 앉아있던 영오 씨는 고개를 숙였고, 수백 명의 동조 농성자들로 가득 찬 광화문 광장은 숙연해졌다.
‘세월호 주치의’로 알려진 이보라 씨는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단식을 시작한 지 6일째 되는 날부터 영오 씨를 돌봐왔다. 매일 퇴근 후 광화문 농성장에 들러 유민 아빠의 건강을 살폈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장외 일정이 잡혀있을 때면 반차를 내서라도 유민 아빠 곁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유민 아빠는 단식하면서 힘이 들어도 상대방이 불편할까봐 애써 농담을 건네는 속 좋은 동네아저씨 같았어요. 많은 시민들이 농성장에 찾아와 눈물을 흘려도 도리어 그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하는 분이셨는데···”
“단식 20일에 접어들면서 유민 아빠가 제대로 서 있기 조차 힘들었는지 지팡이에 짚고 다니셨어요. 현재는 웃음도 많이 사라지셨고, 척추 쪽 근육이 많이 소모돼 혼자 힘으로 앉아 있기도 힘든 상황이에요. 며칠이 더 지나면 앉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있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단식 38일째를 맞는 영오 씨는 현재 표정을 짓는데 필요한 얼굴의 근육까지도 소진되고 있으며, 이대로 단식을 중단하더라도 몸에 심각한 대사 장애와 장기 손상까지도 올 수 있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이 씨는 “상태가 더욱 악화되면서 주변에서 단식중단을 권유했지만, 영오 씨는 눈 하나 꿈쩍 않고 오히려 화를 냈다”고 말했다. “한번은 포도당 수액을 가지고 갔는데 유민 아빠가 ‘나는 반칙은 안한다’라며 화를 내셨어요. 정말 큰일 날 수도 있다고 재차 권유해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죠. 정신력으로 버티고 계신 겁니다. 몸도 마음도 모두 망가졌지만 더 이상 잃을 게 없으셔서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겁니다.”
이 씨는 죽어가는 환자를 앞에 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도 원망스럽다고 한탄했다. “환자가 꿈속에서 죽는 악몽을 꾸기도 했어요. 한 번은 영오 씨가 자고 있을 때 몰래 병원에 옮겨 놓을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런 고민을 말하자 유민 아빠가 날 병원에 데려다 놓으면 곧장 도망쳐 나올 거라는 엄포로 맞서셨고요. 지금으로써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서히 생명이 꺼져가는 유민 아빠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 씨는 “유민 아빠가 단식을 마칠 때를 생각해서 회복 프로그램까지 고민해 놨다”며 미소를 지었다. “ㅇㅇ수액에 ㅇㅇ비타민을 섞어서 주사를 맞히고, 식당에 연락해서 어느 정도 열량의 음식을 주문하고···” 하지만 미소는 금세 한숨으로 바뀌었다. “오시기만 하면 되는데, 유민 아빠의 성격을 봤을 때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절대 광화문 광장을 떠나지 않을 것 같고, 정부·여당은 가족들의 이야기에 귀를 닫은 상태고··· 유민 아빠를 지켜보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유민 아빠 영오 씨는 인터뷰가 진행되던 20일 오후에도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박근혜 대통령 공식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했다. 영오 씨는 열리지 않는 청와대를 바라보며 두 시간 동안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농성을 벌이다 구급차에 실려 광화문 광장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