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나 막 상병을 달았음.

 

그리고 5월은 다시 찾아왔음.

 

작년에 받은 유격의 추억이 다시 몰려왔음.

 

짬안될 때는 몰라서 받았지만, 알고는 거기로 가기는 너무 힘들었음.

 

우리는 3차였는데,

 

(4차까지 있었고, 중대 모두가 한 번에 훈련받지 않고, 기수를 나누어서 받음. 중대 근무의 원활함을 위해서)

 

1차,2차 다녀온 애들이 작년보다 더 빡세다고, 유격대장이 미친 거 같다고 했음.

 

유격훈련의 질은 유격대장의 자질에 따라 다름.

 

대위급에서 유격대장을 뽑는데, 말년이 유격대장하면 좀 쉽게 하는 편이고,

 

장기대위가 맡으면 빡세지는 거였음.

 

이번 유격대장은 하필이면 우리부대 몇 없는 사관학교 출신 본부중대장이었음.

 

게다가 부대 전입온지 얼마 안되서 왠지 모를 의욕에 불타고 있었음.

 

그리고 그 불타는 의욕만큼 유격장의 열기도 뜨거워졌음. 좋지 않은 쪽으로...

 

작년처럼 군장 싸고, 턱끈에 반창고 감으며 내무실에서 취침하고 있었음.

 

유격소대는 전날 야간 근무가 완전 프리이기 때문에 풀침을 보장받았음.

 

하지만 전소대 풀침이라는 행운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좋은 소대원은 하나도 없었음.

 

모두 근심걱정에 찌든 얼굴로 모래알 낀 눈꺼풀을 겨우 닫았음.

 

 

 

 

그리고 하느님은 다시 한 번 기적을 약속하셨음.

 

우리가 출발해야하는 그 날 아침.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음.

 

작년 화생방 째는 수준의 비가 아니라 정말 폭우, 전국적인 폭우였음.

 

훈련은 스톱되었음.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종 루머가 나돌기 시작했음.

 

오전 : 비가 그치는 대로 출발한다는 이야기.

 

오후 : 오늘은 째고 내일 출발한다는 이야기.

 

밤 : 내일은 꼭 출발한다는 이야기.

 

하지만 다음날도 폭우는 계속되었음.

 

다시 루머가 돌았음.

 

이번주는 째고 다음주에 간다는 이야기.

 

하지만 행정반 계원을 통해 고급정보가 흘러나왔음.

 

훈련장 스케줄이 차있기 때문에 3차를 한 주 미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였음. 

 

결국 3차와 4차를 통합해서 가는데, 인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인원을 잘라야 한다는 이야기였음.

 

다시 루머는 돌았음.

 

위에서 짬밥으로 끊는다.

 

밑에서 짬밥으로 끊는다.

 

아니다 섞어서 보낸다. 가고 안가고는 복불복이다.

 

이번 폭우로 중대 섹터 복구할게 많은데, 우수작업자는 제외된다. 재량은 보급관님 재량이다.

 

마지막 루머는 소대원들의 작업혼을 불살랐음.

 

중대 복구 속도는 빨랐고, 그리고 우수했음.

 

그리고 유격 소대가 출발하기로 되어있는 다음주를 앞두고,

 

일요일에 최종 훈련 참가자가 발표되었음.

 

결론은 위에서 짬밥으로 끊었음. 하지만 고참들은 다 자를 순 없고, 분대별로 고참을 잘랐음.

 

나는 소대 서열로 보면 갈 군번이지만 분대로 보자면 훈련 제외 대상이었음.

 

고참들 앞에서 티내지 못하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 울었음.

 

제외된 고참들은 보급관님의 현명하심을 칭송하며, 작업의 열의를 다졌음.

 

실제 산이 무너져 투입로를 덮쳐 포크레인이 투입되어야 할 작업에 삽을 들고 모였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

 

그리고 유격소대가 복귀했을 때, 고참들이 손수 유격뒷정리를 했음.

 

CS복을 빨고, 텐트를 정비하고, 세탁기를 돌렸음.

 

유격을 제낀 그 주,

 

남은 우리 소대원에게는 미소 짓는 군생활, 살맛나는 군생활이 된 한 주였고,

 

나로써는 신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