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18살 고등학생 입니다.
재가 18년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ㅎ
저는 1995년도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989년도에 태어난 누나가 한명있습니다.
원래 저희 어머니가 누나를 낳으시고 몸이 극도로 편찮아 지셨습니다. 그래서 원래 저를 낳으실려 하지않았지만
저희 아버지께서 저희 누나 혼자 크는건 너무 외롭운거 같다고 누나 출산후 6년후 어머니 몸이 그나마 괜찮아지신후 저를 낳아주셧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때부터 고혈압 신부전증등 많은 질병에 시달리시게 되셧죠.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2000년도 아버지께서 간경화로 돌아가십니다. 저희가 잘 사는것도 아니였고 어머니는 주부 , 아버지는 건설회사에서 근무 하셧었습니다.
원래 저희 아버지가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피셧는데 유전적으로 간경화가 왔다더군요.
간이식을 하셧으면 사셧을수도 있었겟지만 그때 그럴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빛을 내서라도 수술을 할려고 하셧지만 아버지께서 반대를 하셧습니다.
그리고 결국 돌아가셧죠. 재가 지금 가장 후회되는것이 아버지 장례식장에 가서 웃으면서 뛰어 놀았다는것 입니다.
7살 그땐 아무것도 몰랐겟죠. 하지만 지금 너무 후회가 됩니다. 아버지 얼굴은 지금도 기억도 나지않고 사진으로만 보고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그리고 초등학교 때는 잘기억도 안날뿐더러 어리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평범하게 넘어갔습니다.
중학생이 되서는 재가 좀 방황을 했었습니다. 집에서는 어머니는 165cm 에 몸무게 40kg 하루에 한끼 잡수실까한 식사량 , 신부전증 , 고혈압 , 신기능저하(?) 등등 각각 질병때문에 저에게 관심을 쓰실수 없으셧고 누나는 학교 갔다가 알바갔다가 집에오면 공부하고 누나 역시 저에게 관심을 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때 좀 방황을 햇었습니다. 하지만 외가쪽 사촌형이 재가 방황할때마다 말로 타이르고 심하면 폭력까지 했습니다.
전 정말 그게 너무 고맙습니다. 사촌형이 폭력으로라도 잡아주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있겠죠.
그리고 무작정 때린것도 아니고 때리고나서 울고있는 저를 일으키고 안아주면서 니마음 다안다고 그런데 너네 엄마가 저런상황인데 넌 정말 그렇게
행동하면 안된다고 진심으로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때 2학기때 정신차리고 공부를 했는데 이미 입문계를 갈 성적은 아니더군요.
그래서 저는 실업계로 가서 열심히 공부하자! 라고 다짐하고 실업계를 갔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때 그 결심이 깨지게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저희어머니가 신장이 재 기능을 10% 도 못하셔서 입원을 하시고 수술을 하십니다.
신장이식 수술은 아니고 신장이 재기능을 못해 하지못하는 혈액속 노폐물을 걸러내는 작업을 기계로 하기위해 몸안에 관을 연결하는것입니다.
엄마가 입원하시고 수술을 하셧습니다. 약 한달 동안 입원하시고 처음에는 쇄골 쪽에 구멍을 뚫어 심장쪽에 인공혈관을 연결하셧고
왼쪽 팔쪽에 인공혈관을 집어넣으셧습니다.
지금도 어머니의 왼쪽팔을 보면 인공혈관때문에 수술흉터와 살아래 있는 인공혈관의 모습이 딱 잡힙니다.
그때 병원비가 아마 100만원 넘게 나왔을껍니다.
원래 저희가 기초생활수급자 였는데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되고 저희누나는 대학교를 졸업해 취직을 하자마자 차상위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의료혜택이 줄어들었죠. 누나는 치위생사로 큰 치과에 취직해서 한달에 120정도 받는데 병원비로 한달에 100만원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혈액 투석을 할때마다 몇만원의 돈을 내야되는겁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일주일에 3번 하루 4시간 혈액투석을 하러 가시고요.
( 참고로 혈액 투석은 신장이 피속의 노폐물을 걸러내는 기능을 하지못하여 기계를 이용해 연결된 두개의 인공혈관으로 한쪽은 피를 뽑아내고
기계로 들어가 노폐물들을 제거하고 다시 연결된 다른한쪽의 인공혈관으로 피를 넣는것 입니다. 이걸 하면 정말 그 하루는 몹시 힘이든다고 하네요 )
그래서 저는 이때부터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고1때는 아르바이트를 써주는곳이 없더군요. 그래서 택배 상하차를 나갔습니다. 하루 오후 7시부터 ~ 새벽 6시까지 상하차를 하고 학교를가면
공부가 될리가 없죠. 일주일에 택배 상하차를 2번했습니다. 하루 5만원받고요.
일주일에 10만원을 벌었는데 버스비로 일주일 마다 1만원 , 1만원 일주일 생활비 , 5만원은 누나에게 엄마 병원비 보태라고 줫고 남은 2만원은
통장에 저축했습니다. ( 수학여행비 , 수련회 이런 비용 지출을 위해 )
시험성적은 아래로 뚝 떨어지고 몸은 힘들고 근데 2달정도 후 기쁜소식이 왔습니다.
어머니의 혈액투석 비용을 전액 면제 받을수 있다고요. 그게 신기능장애 3급이상 되면 투석 비용 전액 면제였습니다.
바로 신청을 하고 어머니는 곧 신기능장애 3급으로 판정되시고 혈액투석 비용은 전액 면제가 되었습니다.
정말 기뻣습니다. 그래서 이제 택배도 그만두고 다른애들 처럼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고등학교 2학년 택배는 완전히 그만두고 고깃집 서빙알바를 하며 생활을 유지해 가고 있습니다.
재가 알바를 하면서 누나는 결혼자금을 모을수 있게되었고, 저는 재가 번돈으로 저희가족이 생활 한다는것이 정말 뿌듯합니다 ^
물론 누나도 생활비를 보태긴 합니다! 힘들지만 이렇게 어찌어찌 살고있는 모습을 보니 세상에는 안되는 일이 없겠다 라고 생각하게됩니다 ㅎ
그리고 여담이지만 어머니께 원래 투석대신 재가 신장을 한쪽 드린다 했는데 어머니가 절대안된다고 내가 죽으면 죽었지 어떻게 자식인생을 망치냐고
절대 받지않겠다고 하셔서 재가 고등학교 졸업후 성인이되는날 몰래 어머니께 기증해드릴 생각입니다 ^
여러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