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릿말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식은 뇌의 반응이다.’
뇌를 가진 생물이 뇌를 가진 생물로서 생각하는 활동을 하는 것. 이 활동의 구조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당신은 당신의 생각하는 활동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엄밀히 말해서 통제하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존재가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지 뭐...’ 라고들 합니다.
이 질문과 대답에서도 저는 한 가지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뇌는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세뇌당하였다’ 라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 생각하고 그 생각에 따라 몸을 움직이게 하는 활동. 이 활동은 뇌의 활동 그 자체인데도 불구하고 뇌는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활동을 하게 하는 활동을 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상정합니다. 그것이 바로 ‘령(靈)’의 개념이지요. 즉, 뇌를 가진 생물체의 모든 활동은 어떤 영적인 존재의 통제가 아닌 뇌 그 자체 스스로와 함께 온갖 기록이 축적된 유전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째서 뇌는 자기 자신을 움직이는 존재를 상정해 놓는 것일까요? 설령 귀신의 개념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저는 자신의 뇌가 뇌 스스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코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고도의 뇌 실험을 당한 인간이라면 모를까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도출한 답은 이겁니다. ‘뇌는 자기 자신의 활동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존재를 상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뇌는 자기 스스로 존재하여 활동하고 있음에도 무언가에 통제되고 있다고 정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생각의 함정’이겠지요. 모든 것을 생각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이 착각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겠지요.
이 가정에 따른다면, 인간은 이 착각 속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는 상황일까요? 이에 대해선 조금 회의감이 듭니다. 만약 뇌가 뇌 자신마저도 타 존재를 바라보듯이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면 인간은 자기 자신의 소중함(‘생존 본능’을 의미)과 그 밖의 상당수의 인간으로서의 욕구 따위를 잃게 될 것입니다. 꽤나 위험하지요.(각 개인으로서는) 현 지구의 환경 속에 존재할 인간으로서는 자기 자신을 하나의 주관적인 존재로 상정하지 못하는 뇌는 지구 환경과는 부적합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뇌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면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한 현상이겠지요. 애초에 그게 마음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성공한 사례 또한 없으며, 시도하려는 사람도 거의 없고, 어떻게 시도해야 할지조차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착각 속에서 벗어나는 길은 단 한 가지, 뇌를 병합하거나 분해, 변화시킬 수 있는 아주 고도의 과학기술로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으론 어림도 없지요. 허나 만약 된다고 한다 해도 이런 뇌 실험은 호기심만으로 미지의 위험성을 감수하는 과학 행위일 것입니다. 뭐, 그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은, 이것이 가능할 시점에선 아마 전세계적으로 논란이 일어나겠지요.
윗글에서는 ‘생각하는 활동은 뇌의 활동이자 활동으로 일어나는 반응이다. 생각하는 활동 자체가 령이니 뭣이니가 아니라 뇌 그 자체의 활동과 반응이다.’를 부족한 필력으로 풀어 써 보았습니다. 잠깐 여기서 한 가지 상정해 놓을 필요가 있겠군요. 저는 뇌의 활동이 영적인 존재의 활동이 아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지 ‘세상에 귀신 따윈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 엄밀히 말해선 귀신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진배없군요. 귀신이라 함은 인간의 령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 특징을 소실하고서는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부유하며 또 투명하고, 밤에 다니기를 좋아하며, 성격 또한 가지각색에 어떤 밝혀지지 않은 그네들만의 능력이나 또는 고유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것의 의미는 말벌의 경우라 치자면 ‘독침’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필력 부족으로 부가 설명을 덕지덕지 붙이니 아무쪼록 양해 부탁드립니다.)으로 인간의 신체에 침투하여 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할 수 있는 어떤 미지의 생명체가 있을 수도 있지요. 즉, 인간과 개미와 고양이와 돌고래처럼 서로 다른 생명체일 것입니다. 이 맥락으로는 신마저도 존재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전 우주 모든 것을 통제하는 뇌의 존재?에 대해선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이다만은 그런 존재는 없는 편이 인간에겐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가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항들은 전부 필기했으니 조금 더 나아가 생각해 볼 시간이군요. 여러분, 여러분 중에 이런 생각을 해 본 사람 있습니까? ‘어째서 나는 나인가? 어째서 나는 나의 눈을 통한 시각, 나의 코를 통한 후각, 미각, 청각, 촉각과 어째서 이 자리에 존재하는 뇌의 활동만을 지각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 말입니다. 사실 이런 생각 해 본적 없는 사람이 더 드물겠지요. 게다가 윗글을 읽고 나면 아마 이 의문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제 개인적으로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 자체가 이미 뇌 스스로 자기 자신을 주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위에서 뇌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다고 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단언하건대 저 질문 자체가 뇌리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의 활동과 반응이라는 것을 뇌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 자기 눈앞에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들어오는 전구가 몇 개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이 전구들의 불빛의 빛깔은 제각각입니다. 빨주노초파남보 등등으로 말입니다. 이때 붉은 빛의 전구에다 생각하는 활동을 가능하게 해 주는 어떤 장치를 부착해 봅니다. 인간의 뇌의 능력에 필적하는 것으로요.(절대!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붉은 빛의 전구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다가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그 전구에 부착된 뇌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가 이런 쪽으로 관심이 있도록 구조되어 있다면.) “왜 나는 붉은 빛깔입니까?” 그러면 우리는 뭐라고 답해줘야 할까요? 이렇게 답해줘야겠지요. “너의 내부회로는 붉은 빛깔이 발현되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지” 이렇게 말하면 바보가 아닌 이상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그 외의 상상은 하지 못하지요. 이것을 해소시켜 주려면? 간단합니다. 장치를 분리하여 다른 빛깔을 발현하고 있는 전구에 연결하면 되는 겁니다.
이제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모든 생각하는 활동, 심지어, ‘왜 나는 이 자리의 이 뇌의 활동만을 자각하는가?’라는 질문마저도 뇌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질문이며 뇌 활동 그 자체이자 그 활동으로부터 발생하는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각자 다른 빛을 내고 있는 전구처럼 말입니다. 이에 따라 이 반응은 현 과학기술로써는 밝혀지지 않은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이 맥락으로 한 가지 더 설명드리고 싶은 것은, 사후에 대한 생각입니다. 일단 전 삶과 죽음은 뇌와 인간의 유전자와 세포가 서로 조화되어 활동하여 갖가지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 삶이며, 죽음은 그 활동이 정지된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헌데, 우리는 죽은 뒤에 어떻게 될까 하고들 생각하지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죽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완전히 ‘무’의 상태? 그렇다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였을 때 그 생명이 느끼는 온갖 감각과는 완전히 분리되는 것일까요? 찬찬히 생각해보면 알쏭달쏭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 이때까지 주장했던 제 생각에 따라 이렇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눈앞의 전구 중 보랏빛의 전구라고 칩시다.
자 이제 이 전구를 끕시다.
전구에서 일어나던 모든 반응들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다른 전구를 켭시다.
그 전구의 모든 반응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보랏빛의 전구의 활동이 다른 전구로 전이된 것일까요? 현재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들에 따르면 절대 그렇지는 않지요. 보랏빛 전구는 활동이 정지되고, 또다른 전구는 활동이 시작된 것일뿐, 어떤 무언가가 옮겨간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그대로 인간의 상황으로 옮겨보세요. 즉, 자기 자신이 죽었을 때 ‘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조차 대부분은 이미 ‘완전히 사라진 자기 자신’의 존재를 가정해두게 됩니다. 이를 배제해 보십시오. 물론, 그게 완전히 가능하진 않을 겁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의식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