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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7
게시물ID : panic_479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oima
추천 : 4
조회수 : 190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5/19 17:07:51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prologue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1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2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3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4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5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6

 

 

 

#7

 

 

내가 고개를 돌리자 하얀 스커트와 노란 가디건을 입고 있는 검은 단발머리의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감 있는 목소리에 청아한 갈색 눈동자.

 

3년 전 내가 라스베거스에서 흑역사를 만들어 귀국하지 못할 때 도와준 장본인 혜선 씨였다.

 

순간 반갑다는 마음도 들었지만

 

‘하필 왜!’

 

라는 마음이 더 컸다.

 

왜냐하면 그녀를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6년 전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해 무작정 달려간 아프리카에서였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지프차를 타고 흙먼지 날리는 마른땅을 달려 도착한 어느 작은 마을에서 그녀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 탓 인지는 몰라도 밝은 얼굴로 거리낌없이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아니, 아름답다 못해 경이로웠다.

 

그렇게 그녀에게 이끌린 난 앙상한 나무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는 그녀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자원봉사 오셨나 봐요?”

 

그녀는 ‘넌 누구니?’라는 표정으로 날 지긋이 올려다보았다.

 

“혹시 한국인..?”

 

“이렇게 한국어가 유창한 외국인도 봤어요? 그것도 아프리카에서.”

 

내가 내 나름대로의 가벼운 농담을 던지자 그녀는 경계를 풀고 살짝 웃어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인사를 건 냈다.

 

“어수선 이에요.”

 

내가 악수를 청하자 그녀는 내키지 않는 듯 하다가 내 손을 잡았다.

 

“박혜선 이에요. 여긴 어쩐 일로..?”

 

“작품에 영감을 얻기 위해서죠.”

 

“영감이요?”

 

“제가 사실 예술 쪽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팝아트 아시죠?”

 

“아.”

 

내가 으스대자 그녀는 약간 못미더운 눈으로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근데 굳이 여기는 왜?”

 

“왜라뇨?”

 

“보통 경치 좋은 유럽이나 예술의 나라 프랑스로 여행가잖아요. 그런데 굳이 이곳으로 온 이유 말이에요.”

 

“글쎄요.. 딱히 이유는 없고 언젠간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거든요. 거친 야생의 세계.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아시죠?”

 

“아..”

 

그녀는 입을 벌린 체 ‘아 그러세요.’ 라는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혜선 씨라 불러도 되죠?”

 

“네.”

 

“그러는 혜선 씨는 왜 이곳에 와서 이렇게 힘든 일을 자처하시는 거예요?”

 

내 질문에 그녀는 아이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항상 이 아이들에게 많은걸 배우고가요. 이런 열악한 환경과 악조건 속에서도 저렇게 환하게 웃는걸 보면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죠. 나는 왜 그때 불평만 했을까 하고요. 사람이란 참 어리석은 동물이죠?”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굶주림에 바짝 마른 몸과는 달리 너무도 찬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어대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녀가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그런 아이들을 안쓰러운 얼굴로 보고 있자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전 이 일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제 자신을 위한 일이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그녀는 생긴 것처럼 정말 똑 부러지는 똑똑한 여자였다.

 

원래 예정에는 없었지만 나는 그 마을에서 몇일 더 머물며 그녀를 도왔다.

 

그녀가 하는 일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라는 가면을 쓰고 말이다. 그녀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왠지 당신이 하는 일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요.”

 

솔직히 난 여태까지 살면서 자원봉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 중 하나였다.

 

왜 그렇게 힘든일을 그것도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해야 하는지 도저히 내 머리로는 공감가지 않는 주제였다.

 

그런데도 내가 그렇게 그녀를 도와준 것은. 그녀에게 사심이 있어서였다. 사실 사심이라기보다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것이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가슴은 요동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자상하게 웃고 있는 그녀는 마치 동화 속 에나 등장할법한 공주 같았다.

 

동물 친구들에게 둘러 쌓인 그런 공주 말이다.

 

그렇게 난 그녀의 일을 열심히 도왔고 마을 아이들과도 재법 친해져 이름까지 외우게 되었다.

 

벤, 니마, 캄, 아루.. 참 소박하고 정겨운 이름이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들과 함께 웃고 있었다.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말이다. 난 이런 내 자신에 놀라고야 말았다.

 

그들의 순수함이 나마저 변화시키고 있었다. 난 그렇게 본래의 취지도 망각한 체 참 열심히도 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마지막 날 밤.

 

홀로 의자에 앉아 밤하늘을 보고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달빛을 머금은 그녀의 뒷모습은 참으로 몽환적이었다.

 

“여기서 뭐해요? 혼자서.”

 

나는 그녀의 옆에 다가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아무것도요. 그냥 달구경 하고 있었어요.”

 

라는 그녀는 말과 달리 너무나 근심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거 알아요? 우리가 보고있는 달은 한쪽면만 보이는 거래요.”

 

관심 있는 듯 쳐다보는 그녀.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한쪽 면은 보이지만 다른 한쪽 면은 언제나 숨기고 있죠. 당신 처럼요.”

 

그녀는 사뭇 놀란 눈치였다.

 

“말 해봐요 그게 뭔지.”

 

그러자 그녀는 손 사례를 치며 거절했다.

 

“됐어요.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하지만 나는 그녀의 고민을 듣고 싶었다.

 

“달라지죠. 혼자 속으로 끙끙 앓는 것 보단 속 시원하게 털어 놓는게 정신건강에도 좋구요. 혹시 알아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일지.”

 

그녀는 망설이는 듯 하더니 한숨을 크게 내쉬며 이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 일도 이제 얼마 못할지도 몰라요. 집에서 반대가 심하거든요.

 

“부모님께서 혜선 씨 걱정을 많이 하시나 봐요.”

 

“보수적이죠.”

 

내 말을 딱 잘라 말하는 그녀.

 

“그래서 고민이에요. 가족을 선택할지 꿈을 선택할지 말이에요.”

 

문득 그녀의 꿈이 궁금해졌다.

 

“꿈이 뭔데요?”

 

“말하는 대신 웃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나는 당연히 “물론이죠.”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나의 약속을 받아내고 입을 열었다.

 

“웃기게 들리겠지만 이곳에 눈을 내리게 하는 게 제 꿈이에요.”

 

“눈이요? 방금 눈이라고 했어요?”

 

너무나 생뚱맞은 그녀의 발상에 하마터면 웃을 뻔 했다.

 

하지만 웃을 순 없었다. 그녀가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잘못 웃었다간 뺨이라도 맞을 기세였다. 나는 괜한 헛기침을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웃기죠?”

 

대충 내 마음을 눈치 첸 그녀가 날 쏘아보았다.

 

“아, 아뇨. 그럴 리가요.”

 

솔직히 웃겼다.

 

“항상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이곳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까 하고요. 이곳 사람들은 웃고 있는 듯 보여도 사실은 그건 아픔을 감추기 위한 수단일 뿐이에요. 다들 상처받고 슬픔에 지쳐있죠. 그렇기에 웃고 있는 거 에요. 지쳐서..”

 

그녀는 허공을 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 난게 ‘눈’이에요. 이곳에 눈이 내리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이 희망을 갖지 않을까 하고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려고요.”

 

그녀의 말을 들으니 그녀의 꿈을 터무니없는 개그라고 생각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렇게 깊은 뜻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능하다면 이곳뿐 아니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눈을 내리고 싶어요.”

 

그녀가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멋있네요. 그 꿈.”

 

“네?”

 

그녀가 날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저도 그런 멋진 꿈을 가져 보는게 소원이었는데 오늘 그걸 찾았네요. 고마워요.”

 

“뭐가요?”

 

“혜선 씨 덕분에 저도 멋진 영감을 얻었으니까요.”

 

갑자기 그녀는 호탕하게 웃었다.

 

“참 의외네요. 보통 사람들은 이런 제 꿈을 들으면 터무니없다며 비웃었거든요. 그런데 수선 씨는 멋있다고 하니 자신감이 다시 생기네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탁탁 털고 말했다.

 

“저야말로 고마워요. 수선 씨 덕분에 결심이 섰으니까요. 수선 씨는 참 신기한 사람이네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요.”

 

“하하.. 그런가요.”

 

“눈 감아 봐요.”

 

“네?”

 

“어서요.”

 

그리고 나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나는 내심 그녀가 나에게 키스를 할지 모른다는 부푼 기대를 하며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녀는 내손을 잡더니 무언가를 손에 쥐어주었다.

 

“이제 눈 떠요.”

 

내가 눈을 뜨자 내 손에는 매끄럽게 다듬어진 하얀 돌맹이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괜한 기대에 맥이 풀려버린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실망한 얼굴이에요?”

 

“실망이라뇨. 그럴 리가요.”

 

내가 당황하며 허둥대자 그녀는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쥐고 입을 가린 체 ‘풋’하고 웃었다.

 

“그 돌은 행운의 돌 이에요. 그 돌을 지니고 있으면 언젠간 행운이 찾아올 거예요. 제 애장품이지만 특별히 드릴게요.”

 

“아.. 고마워요.”

 

고작 돌이라니.. 하긴 키스를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그녀는 숙소로 걸어가더니 멈춰 서서 말했다.

 

“혹시 한국 가서 제 도움이 필요하다거나 심심하면 연락주세요. 왠지 수선씨를 만나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거든요. 만약 그럴 의향이 있다면 돌을 뒤집어요.”

 

내가 돌을 뒤집자 돌에 예쁜 글씨로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렇게 난 한국에 가서도 그녀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점점 더 친해지게 되었다.

 

와중에도 나는 아프리카에서 얻은 영감으로 지구촌 사회의 어두운 면 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계속 만들었고 어느 순간엔가 사람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가 준 돌이 정말로 그녀의 말처럼 행운을 가져다 준 것 같았다.

 

그리고 난 점점 유명세를 탔고 세계로 나가 천재 아티스트로 추대 받았다.

 

그녀도 이런 날 축하해 주었고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던 나는 그녀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라스베거스 전시회가 끝나고 말이다.

 

그러나 한 순간 어리석은 실수로 나는 귀국하지 못할 위기에 놓였고 결국 그녀에게 여권과 돈을 도둑맞았다는 구차한 거짓말을 하고 그녀의 도움을 받아 귀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론매체에 의해 내 거짓말은 금방 들통 나고 말았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계속 왔지만 난 받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거짓말을 한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고 그녀를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난 폰 번호며 집 주소도 바꾸고 모든 지인과의 연락을 끊었다.

 

물론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참을 망설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오늘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이다.

 

3년만의 재회였다.

 

“왜 그렇게 놀라고 그래요? 못 볼 것을 봤다는 것 처럼.”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저기..”

 

내가 당황하며 동분서주하자 그녀는 오른손을 살짝 움켜쥐고 입을 가리고 ‘풋’ 하고 웃었다. 그녀는 예전모습 그대로였다.

 

“여전하네요 수선씨는. 그동안 뭐하고 지냈어요? 연락도 끊어져서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이게 대체 몇년만 이에요?”

 

그녀는 너무 반가웠던 나머지 나에게 속사포 같은 질문을 던졌다.

 

“저는 뭐.. 여전히 작품 만든다고 정신없죠.”

 

구차한 거짓말이다.

 

“밥이라도 먹을래요? 제가 쏠게요.”

 

“마음은 고맙지만.. 지금은 제가 좀 바빠서..”

 

“아.. 그래요? 그럼 언제한번 시간 잡아서 만나요. 어때요?”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마치 가시방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네.. 그러죠 뭐. 하하..”

 

그 때 그녀가 내 손에 들려있는 뭔가를 보더니 질문공세를 했다.

 

“그런데 그게 뭐예요?”

 

“뭐가요?”

 

“손에 들고 있는 거요.”

 

그녀가 생리대와 스타킹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아뿔싸.. 나는 급히 물건을 뒤로 숨기고 변명을 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작품에 쓸 재료라고 할까요.”

 

“그래요? 어쨌든 나중에 만나는 거예요 꼭!”

 

“네.”

 

나는 그녀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태풍이 내 머릿속을 한바탕 휘젓고 간 기분이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나는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불을 켰다. 그리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유림?”

 

유림이 보이지 않았다. 쇠창살 사이로 요리조리 훑어봐도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급히 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유림?”

 

유림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테이블 위에 놓여 져 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불타고 있는 집 그림이었다.

 

왠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때 어디선가 유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에요?”

 

“유림?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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