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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안중근.
게시물ID : lovestory_549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플쓰려가입
추천 : 1
조회수 : 28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5/17 11:48:30

안중근 청년시절.jpg

               <청년시절의 안중근>


안중근(安重根 1879.9.2~1910.3.26)은 독실한 천주교집안에서 태어나 1895년 천주교학교에 입학, 


1904년 평양에서 석탄을 팔다가, 1905년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드는 을사조약이 체결되는것을 보고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삼흥학교를 설립, 돈의학교를 인수해 학생들을 교육하다가 1907년 본격적으로 의병에 가담했다. 


긴 세월을 울분으로 보내고 마침내 1909년 10월 26일....................



이토.jpg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등박문), 을사조약의 원흉>


오전 9시. 


일본의 전 총리이자 제 1대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의 재무상 블라디미리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그곳, 하얼빈 역에 도착했다.


이등방문 암살.jpg

      <1909.10.26.안중근의 저격 직전 이토 히로부미의 모습(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인물)>


이토 히로부미가 도착해 차내에서 약 20분 정도 코코프체프와 대화한 후,


그의 권유에 따라 명예 사령관으로서 러시아 수비병을 사열하기 위해 열차에서 내렸을때.


그가 수행원의 안내를 받으며 러시아 군대 앞을 막 지나가는 순간, 


군중속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안중근이 권총을 꺼내 "3발"을 쏘아 이토 히로부미를 한발도 빠짐없이 명중시켰고 


안중근은 혹시 이토 히로부미가 아닐 것을 대비해 다시 총 "3발"을 주위에 있던 일본 관리들을 향해 쏘았다. 


이때 이토의 수행원들은 깜짝 놀라 급히 이토를 껴안아 보호했다. 




이때 안중근은 죄 없는 사람을 잘못쏘아 다치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여 


"러시아어"로 '코리아 우라(대한 독립 만세)!, 코리아 우라(대한 독립 만세)!'를외친 뒤에 러시아 군대에게 체포되었다.ㅜㅜ


안중근 체포.jpg

                          <영화 "도마 안중근" 中 저격후 체포장면>



이토는 "당했다"(이끄 이끄.. 모 야메떼 구다사이..)라고 한마디 하였다. 


수행원은 우선 이토를 차내로 옮기고 이토가 좋아하는 브랜디를 한잔 따라 건네주었다. 


이토는 이 때 지팡이를 쩔뚜기마냥 꼭 잡고있어서 수행원이 이 것을 빼내고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이토는 잠시 신음하다가 저격 당한지 30분 뒤인 오전 10시경에 드디어 사망하였다.


이토 암살.jpg


안중근이 이토를 제거한 곳, "하얼빈역"의 영유권을 가진곳은 '중국',


그시각 그 곳의 모든것을 빌려 그곳에서 일어난 일에대한 책임 또한 모두 지고 있던 나라는 '러시아',


응징된 인물은 '일본'인 이토, 


그를 응징한 인물은 '대한민국'의 안중근.




한, 러, 일, 중이 개입된 이 거사에 대한 처리에 국제적 이목이 집중된다.


그리고 자신의 나라를 구하려는 그 정당한 의식의 뒷처리는 공평공정이라는 뻔뻔한 전제 아래 


'일본'에게 맡겨진다.


안중근 심문모습.jpg

                                         <안중근 의사 심문 당시 모습>


당시 일본과 한국의 병합을 목전에두었던 일본은 조사가 진행될수록


너무도 당당하고 예사롭지않은 안중근의 주장과 공박에 할말을 잃고,


국제사회로의 여론 확산을 우려, 조사를 형식적으로 마치며


재판을 가장한 단순보복으로 급히 안중근에게 사형을 언도한 뒤,


어차피 죽을목숨이니 이토와 일본 정책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


혹은 다른나라와의 이해관계에서 사주를 받은 일이라고 인정할 경우,


목숨을 부지할수 있을뿐만 아니라 출세까지 보장해주겠다며 그를 꾀어낸다.


이에 안중근 의사는


"이 의거는 나의 명리와 현달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한국의 독립회복과 동양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한 것이므로 다시는 그런 유인을 하지말라"


"나는 이토를 살해하면서 이미 목숨을 내놓기로 한 사람인데 죽은 뒤에 무슨 돈이 필요 하겠느냐"며 


안중근의 거짓자백을 대외보도용으로 이용하려했던 일본의 달콤한 제의를 뿌리친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확정된후, 영국 '그래픽' 지의 찰스모리머 기자는 이렇게 보도했다.


"마침내 안중근은 영웅의 왕관을 손에 들고 늠름하게 법정을 떠났다."


안중근 옥중 모습.jpg

                             <안중근 의사(당시 31세) 투옥중의 당당한 모습>




짧은 140여 일의 회유를 동반한 형식적인 조사를 마치다.




그리고 이토를 저격한지 5개월만인 1910. 3. 26. 오전 10시 55분. 




민족의 공분을 짊어진 당당한 죽음.




조마리아.jpg

                        <안중근의사 모친 조마리아여사>


     {조마리아여사가 안중근 사형집행 전 보냈다고 구전되는 편지 내용}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不孝)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고 있는것이다.]


[네가 항소(抗訴)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日帝)에 목숨을 구걸하는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딴 맘 먹지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大義)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孝道)이다.]


[아마도 이 편지는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이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세상에 나오너라.]





안중근 사형직전.jpg

<안중근 체포 직후사진. 단추하나는 체포과정에서 떨어진걸로 추정(左)>

<조마리아 여사가 손으로 직접 만든 옷을 입은 사형직전의 안중근 모습(右)>


                                    

                                                    {안중근의사 생전 유언}



[내가 죽은 후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


[나는 천국에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 주권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에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것이다.]








- 안중근의사 103주기를 넘어선 2013년 5월 현재에도 여러 단체의 노력에도 불구, 


   중국측의 매장기록 누락과 매장추정 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는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발굴작업에 상당한 난항을 겪고있어,


   미쳐 유해 조차 발견하지 못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의 


   죽은 후 조국으로 이장되고자 했던 소박한 유언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







도마 안중근.jpg 


 

저나이에 인생을 바치는건 쉽지 않을텐데...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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