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을 중심으로 현 집권세력은 노무현 대통령 하면 이를 갈며 벌떼처럼 달려든다. 그만큼 저들에게 노무현이라는 존재가 두려운 모양이다. 문재인 의원이 뭐라고 말만 하면 벌떼처럼 달려드는 것도 노무현의 리더십에 자신의 것들을 접목시켜서 새로운 민주적 리더십을 만들고 있는 문재인의 잠재력을 알기 때문이다.
노무현 같은 폭발적인 카리스마가 부족하지만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기 제어와, 낮은 민중의 소리에 차분히 귀를 기울여 줄 아는 진솔함은 투쟁의 시대에서 공존의 시대로 넘어온 작금의 현실에 가장 적합한 리더십임을 저들은 안다. 박근혜 정부가 온갖 사기와 불법을 동원해 최고의 권좌에 올랐지만, 막상 노무현이 남긴 것들을 보면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민주적 리더십이 몸에 밴 사람들ㅡ노컷뉴스에서 인용
조중동과 방송들의 연합으로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호도하고 폄하시켰지만, 그가 해놓은 일들로 해서 대한민국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튼튼한 기초를 다진 것을 알게 됐으리라. 이병박 정부 시절 ‘노무현만 아니면 무엇이라도’를 외치며 노무현의 흔적들을 모조리 지워버렸지만, 세월호 침몰 같은 대규모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노무현의 흔적들을 다시 불러올 수밖에 없었음은 NSC와 해수부 등의 부활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물론 노무현의 흔적을 되살리면서 마치 별개인양 온갖 정치적 언어올 포장하지만 그렇다고 노무현의 흔적이 박근혜의 업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세월호 참사 때 보여준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 각종 혼선 등에 대해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허둥지둥 내놓은 국가안전처 신설이다. 박근혜가 눈물의 정치쇼를 하며 70년 적폐의 청산을 말했지만 이 또한 노무현이 4대개혁입법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국가가 최소의 일을 하되, 미래의 번영과 상생의 길을 모색했고,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묵묵히(때로는 시끄럽게) 실천했다.
또한 박근혜가 국가 개조라는 거대 담론의 형식을 빌려 70년 적폐를 해소하겠다고 말했지만,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일방적인 대국민담화를 통해서는 그 진정성에 의문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노무현의 꿈을 붉은 색으로 떡칠하며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한 당사자가 박근혜 본인임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대통령에 올라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그 자리에 주어지는 권력의 크기만큼.
참여정부 국가안전대책 체제ㅡ다음이미지 캡처
사실 참여정부는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사고가 일어났을 때,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놓았다. 세월호 참사 때문에 통째로 폐기된 것이 알려진 ‘국가재난관리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대통령 본인이 직접 분야별로 상세한 매뉴얼까지 챙겨가며 국가의 존재 목적의 하나인 국민의 안전을 실천하기 위해 선진국 못지않은 종합대책을 마련해 놓았지만, 국민도 모르게 폐기됐다.
현대국가의 존재 목적은 공동의 번영과 함께 국민의 안전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노무현은 아주 작은 것까지 자동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자 한 것이다. 시장이 그렇게 요구하고, 자유란 이름으로 제한하는 국가 통치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도 현재의 국민과 미래의 국민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독재와 제왕적 대통령의 과잉 통치를 단절하기 위해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합법적 권력마저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사용했다.
다음이미지 캡처
특히 안전시스템은 보편적 복지 및 사회안전망과 함께 3개의 축으로 이루어진다. 참여정부 때 마련한 안전대책이 폐기되지 않고 계속해서 보완되고 세련화되었다면, 무려 304명(무조건 그 이상이다)에 이르는 소중한 생명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최후를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침몰 이후의 구조과정에서 발생한 온갖 혼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처럼 얼굴 도장만 찍고 실행되지도 않을 정치적 언어들만 나열하거나, 희생자 조문이 연출 의혹을 받는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으리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모든 방송들의 오보도 없었을 것이며, 각종 음모론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형편없고 무성의한 사고 수습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의혹만 몇 가지인가? 그리고 그것들 중에 제대로 밝혀진 의혹들이 한두 가지라도 있기나 하단 말인가? 참사가 일어난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사고란 일어나기 마련이어서 완전한 예방이란 불가능한 일이지만, 사후 수습에 있어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지도자의 리더십과 의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진심에서 하늘과 땅 차이만큼 최종 결과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대구지하철 사고가 났을 때, 당선인 신분이었던 노무현이 보여준 사고 수습과정이 이를 웅변해주고 있다. 노무현 당선인은 승객 구조를 위해서라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라라고 현장에 힘을 실어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미적거리던 해경의 해체를 결정해 현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국민이 없으면 국가가 존재할 수 없고, 대통령이란 필요하지도 않다.
서로가 윈-윈인 10.4 공동성명ㅡ다음이미지 캡처
남북한 문제도 그렇다. 북한이 외부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설득에 넘어가 시장을 대폭적으로 확대했다. 현대 국가는 자유주의 경제학이 정치의 내부로 들어감으로써 성장의 동력을 만들 수 있었고, 이것이 우파들이 고집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신규 시장임을 감안할 때, 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합의한 10.4선언이 내포하고 있는 함의는 낮은 수준의 통일을 의미했다.
헌데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보수우파는 이것을 반대했다. 10.4 공동선언이 제대로 이행됐다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폭격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천박한 슬로건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며, 북한의 개방을 되돌릴 수 없는 수준까지 우리나라 기업에게 제공했을 것이다. 한반도 상황이 지금처럼 최악으로 치닫지도 않았을 것이며, LTV와 DTI 규제를 통해 부동산거품을 연착륙시켰듯이 지금과 같은 경제침체와 하우스푸어와 랜트푸어를 양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북한이라는 무한대의 시장과 인력, 청년실업난과 가족의 해체를 생각해 보라. 이것만이 아니다, 남북한 양쪽에서 천문학적인 군비가 복지와 교육, 인프라 조성에 투입돼 남북한 양국이 새로운 도약을 경험하고 있었을 것이다. 북한에서 만들어진 중간재들도 늘려나가면 완성품을 만드는 남한에서의 좋은 일자리도 늘어난다. 이 같은 방식은 거의 모든 선진국이 지금의 위치로 오른 단 하나의 성공한 방법이자 부분적인 공생의 방안이었다.
평화의 가치도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 가장 좋은 시절을 군대에서 보내야 하는 청춘도 대폭 줄어들었을 것이며, A급 관심사병의 총기난동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중국과 일본, 미국과도 동등한 입장에서 선린외교정책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놓인다. 아베 정권의 망나니짓도, 미국의 중국 견제에 천문학적인 군사 비용을 대주며 놀아나지 않아도 된다. 최소 수억 년을 흘러왔을 4대강은 생태친화적으로 개발돼 미래의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녹색성장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것을 어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좋다, 이 모든 것이 일방적 추론이며,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할 수 있다. 참여정부의 정책 중 문제가 많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진영논리에 갇혀 있는 집단일수록 잘못했다고 질타할 정책의 수도 늘어날 것이다. 미래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며, 완벽한 대통령이란 없는 법이니까. 한 치 앞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이 사는 세상이며, 예기치 못한 사건도 발생했으리라. 그러나 최소한 세월호 참사의 피해를 줄였을 것이며, 문창극 같은 자가 총리로 내정되지도 않았을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친일 부역자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한 다음 과거의 연좌제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며, 교학사 교과서 채택 같은 반역사적 해프닝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국정원을 중심으로 국가기관들이 대선에 개입해 민주주의의 기초마저 무너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송이 장악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우리는 퇴임 후 시민으로 돌아온 최초의 대통령과 함께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의 국정경험을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들에게 전해졌을 것이며,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눠가질 수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나라는 진보좌파만 사는 나라가 아니라고. 보수우파도 살고, 중도적인 사람들도 사는 나라라고. 모름지기 대통령이라면 이 정도의 신념과 비전, 포옹력과 뚝심은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반칙과 특권이 사라진 세상을 만들려 했으나, 지금의 집권세력에 의해 제지됐다. 언제나 민생경제가 최우선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과 패거리 집단 및 기업의 이익만 챙긴다. 그 어디에도 국민은 없고,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