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조선-동아일보의 신탁통치 오보사건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에 의해 오보된 기사로 인한 사건
-동아일보는, 독립 이후 한국의 통합정부 수립을 논의하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소련이 조선의 신탁통치를 주장한다고 오보함.
-조선일보는 최초 오보를 제공한 원인제공자.
사실상 이때는 3상회의가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은 상태였고 당연히 언론이 이 내용을 아는 것을 불가능했는데,
신기하게도 회의내용이 보도가 됨(것도 오보로).
진실은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은 미국이었음.
이것을 소련이 주장했다고 오보하였는데, 이때문에 국내에 엄청난 파장이 일어남.
이 오보로 인해 벌어진 일.
국내 동세
1. 우익세력(자유세력 친미진영) 에서는 신탁통치, 즉 3상회의를 반대하게 됨
2. 좌익세력(사회주의 친소진영) 에서는 신탁통치와 3상회의를 지지하게 됨.
3. 송진우(당시 동아일보 사장)은 친미파였으나, 신탁통치의 필요성을 느껴 입장을 유보하다가 오보사실을 알게 됨.
4. 오보를 바로잡으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우익세력에 의해 암살당함. 결국 정정보도가 나가지 못함
5. 국내 이념은 극단적으로 좌/우로 나뉨.
3상회의 동세
1. 미/소는 남북통합정부의 책임자 선정을 놓고 갈등중이었음
2. 소련은 오보로 인해 우익세력의 반탁운동이 거세지자, 통합정부 반대세력을 3상회의에 참여시킬 수 없다고 주장
3. 미국은 자신들의 편이어야 할 우익세력이 3상회의를 거부하자, 당혹에 빠짐.(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나 실패)
4. 결국 통일정부 설립을 위해 개최되었던 3상회의 결렬 (2번 진행, 2번 모두 결렬)
이후 사건
1. 결국 3년간 3상회의를 재개하지 못하고 통합정부 수립 계획은 물거품이 됨
2. 1948년 5월 10일 남한만 단독선거 실시후 단독정부 구성
3. 북한도 김일성을 핵심으로 하는 괴뢰정부 수립
4. 6.25 전쟁 발발 -> 단순한 38도선에서 확실한 국가간 경계인 휴전선이 세워짐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곤 하지만, 당시 저 오보가 없었다면 남/북 분단이 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큼.
당시 소련은 대체로 수용적 입장이었고 미국의 입김이 더 쎘기에 통일정부는 자유민주정부로 구성될 가능성이 지배적이었음..
3줄요약
1. 조선동아일보가 미/소를 뒤바꾼 오보를 냄
2. 그때문에 통일정부 계획하던 미국/소련 회의 결렬 및 국내 좌우 이념대립 극대화
3. 남북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