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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주의 스압주의)xx 부대 살인사건 (펌) - 2
게시물ID : panic_474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턱쟁이
추천 : 26
조회수 : 5580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3/05/12 17:43:48

밑에 올렸는데 중간에 끊겨서 끊긴부분 다음에 다시 올려요 ㅎㅎ

 


"그냥.....그냥........군인답게 살고 싶었습니다."



"헐...명답이로세."


수사관은 얼굴에 함박 웃음을 지었다.



시간이 10시에 가까워지자, 나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음을 감지하고 수사관을 제촉했다.


"이제 뭘하죠?"


"죽은 김병장이 말한 곳으로 가봐야죠."


"사건 현장 말입니까?"


"대위님이 거기를 파보려다가 실패한 것 아닙니까?"


"장비도 없는데..."


"오늘 거기 툇마루를 뜯어봅시다. 빠루같은 간단한 장비를 트렁크에 다 실어왔소."




사건현장....서서히 굵어지는 빗줄기...그리고 어둠에 묻힌 밤........왠지 불길하다.




"수사관님......"


"네?"


"현장에 가기 전에 나하고 약속 하나 합시다."









"무슨 약속이죠?"


"지금의 모든 주변 환경이 저와 김병장이 사건현장을 방문했을 때 상황과 같습니다."


"음........대위님은 지금 우리 중에 누가 귀신 들릴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신가요?""


"걱정이 되서 하는 말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한 명이 미쳐 날뛰기라도 한다면 지금 뒤에 있는 공구들이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에 수사관이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럼 어떻게 하잔 말입니까?"


"처음에 김병장이 이상한 행동을 했을 때 제가 김병장을 향해 주먹과 발길질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김병장이 정신을 차리는 겁니다."


"아...그럼 둘 중에 하나 누군가가 귀신 들렸다 판단이 되면 사정없이 후려쳐라 이겁니까?"


"현재로서는 그 방법 밖에 없습니다."


"별 거 아니구만. 일단 알겠소........"




나는 고개를 돌려 사정없이 빗줄기가 분쇄되고 있는 앞유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사건현장에 도달하자 주변은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내리는 빗줄기로 사물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우의를 입고 차에서 내리자 질퍽한 흙탕물이 군화 주변을 맴돌았다.

우리는 차량 트렁크에서 장비를 챙겨 들었다.

나는 배척(일명 빠루라고 부르는 못을 뽑을 때 사용하는 긴 쇠막대)을 들고, 수사관은 야전삽과, 해머를 들고 대문 앞에 나란히 섰다.

가끔씩 하늘을 울리는 천둥소리와 빗소리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들리지 않았다.

번갯불에 잠깐씩 얼굴을 드러내는 사건현장의 대문은 우리를 반기는 듯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또한 비바람에 찢겨 펄럭이는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어서오라고 반가운 손짓을 보내는 것 같았다.



"정신 바짝 차리십시오."


나의 말에 수사관이 맞대응했다.


"대위님이나 그 빠루로 날 찍어 죽이지나 마쇼."


지옥의 입구처럼 보이는 낮은 대문을 통과해 우리는 작은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어 우리 외에 다른 누가 있는지 구석구석 살폈다.


눈 앞에 툇마루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수사관에게 말을 건넸다.


"바로 저기입니다. 김병장이 말했던 곳이."


"음...그럼 먼저 마루 밑의 디딤돌부터 치워버립시다."


우리는 배척을 지레삼아 마루 아래에 놓여있는 두 개의 디딤돌을 힘껏 들어내기 시작했다.

디딤돌 주변을 시멘트로 발라 놓았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해머질과 삽질을 번갈아가며 우리는 조금씩 디딤돌을 움직여 나갔다.


기와집 처마 아래로 빗물이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보다 번개치는 횟수가 늘어난 듯 보였다.

번갯불이 번쩍일 때마다 마당을 중심으로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우....무섭게 자꾸 번개가 치고 지랄이야..."


수사관이 하늘을 몇 번 쳐다보더니 불평을 토로했다.




바로 그 때....


"응애......응애.......응애....."


내 귀속의 고막을 울리는 작은 아기 울음소리.....

빗소리에 섞여 있지만 분명히 들린다.

나는 즉시 행동을 멈추고 쭈그린 자세를 유지한 채,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대위님, 왜 그래요?"


수사관이 걱정스러운 듯,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액체로 흠뻑젖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없이 다시 한번 침을 삼켰다.


그리고 낮은 숨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안 들립니까?"


"뭐요? 애기소리?"


"네. 애기소리....."


내 말에 수사관이 주변을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기 시작했다.


"어라....난 안들리는데....진짜로 들려요?"


손전등을 통해 주변을 관찰하던 수사관이 나의 얼굴을 비추며, 말을 이었다.


"비오면 고양이 소리가 애기소리처럼 들리기도 해요."


수사관은 나를 안심시키려 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그의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는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순간 번개가 연속으로 플래시를 터트렸다.

나는 수사관을 바라본 채 정수리부터 꼬리뼈까지 쫘악 얼어버렸다.


마당 한가운데 누가 서있는 것이다.

얼굴은 수사관을 향하고 있는데 왼쪽 곁눈으로 그가 보이는 것이다.

나의 왼쪽뺨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뒤늦게 번개를 따라 온 천둥이 사방에 울려퍼졌다.


나도 모르게 오른손에 쥐고 있던 배척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둠속에 묻힌 마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번개가 빛을 발했다.

텅빈 마당....그리고 쏟아지는 빗줄기...아무도 없었다.


배척을 쥐어든 나의 오른손이 덜덜 떨렸다.


"괜찮아?"


수사관이 나의 어깨에 손을 탁 얹으며 물었다.


"응애.....응애....응애....."


아기 울음소리.....빗소리는 들리지 않고, 아기 울음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그런데 뭐지?

수사관이 왜 갑자기 나에게 반말이지?

그리고 목소리가 왜 낯설지?

나는 다시 고개를 천천히 원위치시키며 그를 바라 보았다.


순간 나는 심장이 터져나가는 듯 했다.


얼굴에 온통 피로 덮여있는 낮선 남자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짓고 있는 것이다.

번갯불이 번쩍일 때마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아~~~~~악!!! 씨발 뭐야!! 아~~~~~~~악!!"


나는 미친 사람처럼 괴성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뒤로 물러서며 넘어진 나에게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배척을 오른손에서 천천히 들어올렸다.

순간 어떤 강한 힘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차디찬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확 돌아왔다.


"여길 왜 왔어? 군바리 새끼"


그러나 그 괴상한 음성은 멈추지 않았다.


"너..누..누구야..."

다시 한번 내 얼굴에 큰 타격이 주어졌다.



"대위님!! 정신차려요!!!"


수사관이었다.

뒤로 넘어진 자세로 헐떡이는 나에게서 수사관은 배척을 뺏아들었다.


"미쳤어요? 정신차려요!! "


두 눈을 부릅뜨고 뒤로 넘어진 자세로 헉헉대는 나를 향해 세 번째 손이 나에게 날아왔다.


나는 날아오는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만.....그만..."


수사관은 계속해서 나의 얼굴을 살폈다.


"이젠 괜찮습니다....허..헛 것이 보였어요."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제야 주변의 빗소리가 귀에 다시 들어왔다.


수사관이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건넸다.


"진짜로 미쳐서 이 빠루로 날 찍어 죽일 셈이요?"


"미안합니다....잠시 헛것이 보여서..."


"아까 약속하고 오기를 잘 했네..."


이제야 난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정상인 줄 알았는데, 내가 미친 것이었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그렇다면 김병장과 다리를 건널 때 누가 미쳤던 것인가?

혹시 김병장이 아니라 내가 미쳤다면?

김병장이 똑바로 잡고있던 운전대를 내가 틀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럼 멀쩡히 운전하고 있던 김병장을 내가 죽였단 말인가?


그 날 애기 울음소리는 내가 듣지 않았던가?


"크아~~~악!!! 씨발 말도 안돼!!!!!!!!!"


머리를 움켜쥐며 울부짖는 나에게 수사관이 호통을 쳤다.


"왜 그래요? 박대위!!! 이번엔 군화발로 맞고 싶소!!!!!!!"


그래....김병장과 나, 우리는 둘 다 죽을 운명이었어.

그런데 나는 살아 돌아온거야. 혈기 왕성한 한 젊은이를 죽이고....

이젠 평생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해.

소대장의 권총세례에서 살아나온 하사의 말이 떠올랐다.

'난 살아 돌아왔지만, 살아 돌아온 댓가를 난 지금 처절하게 치루고 있는 것이오.'



"헉헉...말도 안돼...씨발!!! "


아무런 대답없이 주저앉아 울먹이며 절규하는 나에게 갑자기 군화발이 날아들었다.


"정신차려!! 박대위!! 당신 미쳤어?"


수사관의 군화발에 나는 마당의 흙탕물 속으로 나뒹굴어졌다.

큰 대자로 누워버린 내 몸위로 차가운 빗줄기가 끝없이 쏟아졌다.

헐떡거리는 내 입속에 빗물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가늘게 눈을 뜨려하자 나의 작은 속눈썹은 쏟아지는 빗물을 연신 걷어내기에 바빴다.


한참을 시체처럼 누워있는 내 앞에 수사관이 삽을 들고 걸어와 멈춰섰다.

한심한 듯 나를 지켜보던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박대위...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정신차리시오."


지금 이 순간 그는 나를 때려 죽이러 온 것 같진 않았다.


나는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빗물을 토해내기 위해 몇 번의 기침을 하고는 대답했다.


"김병장이 죽은 날....... 김병장이 미친 게 아니라..... 제가 미쳤었다면 어떻게 되는겁니까?"


"김병장을 자신이 죽였다고 생각하는거요?"


"만일 그랬다면요?"


내 말에 수사관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지 않았소?

만일 당신이 그랬다하더라도 그건 당신의 의지가 아니었잖소?

김병장이 죽지 않았다면 어쩌면 당신이 죽었을 수도 있는 것이오."


"흑...말도 안돼..."


나는 다시 한번 머리를 움켜 쥐었다.

이러는 나에게 수사관은 나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박대위....최중사나 죽은 김병장이 바라는게 진정 뭐일 것 같소?

이제 정신차리고 마저 하던 일을 계속합시다."


수사관은 조용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말에 서서히 안도감이 몰려왔다.

왠지 친형처럼 느껴지는 그가 나에겐 큰 힘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얼굴을 뒤덮은 눈물과 빗물을 두 손으로 힘껏 쓸어내리고는 그의 손을 잡아 일어섰다.

무슨 잘못을 하여 스승앞에서 꾸중을 듣는 아이처럼 나는 그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몸에 묻은 흙을 빗물로 천천히 씻어내던 나는 그에게 물었다.


"수사관님, 몇 살이죠?"


"서른 일곱이오. 그런데 나이는 왜 묻소?"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수사관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제가 서른 하나니까 여섯살 형님이시네요."


"어이쿠 대위님. 생각보다 젊네요."


"모든 일에 있어서 인생 선배들은 어린 사람이 모르는 뭔가를 가지고 덤비는 것 같습니다.

배운 놈이든 못 배운 놈이든 나이를 먹어가면 알아가는 그런 것 있잖습니까?

수사관님에겐 그런게 느껴집니다."



"쳇....별 거 없소이다. 마누라 잔소리 들어가며 처자식 먹여살려 보시오.

귀신?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 그런 거 별거 아니게 느낄 것이오.

여기저기 사람들에 치어가며, 욕먹어가며, 아둥바둥 살아가 보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오.

사람이 가장 나를 힘들게 하고, 슬프게 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거랍니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나의 감사표시에 그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위님 부하들은 참 행복하겠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지휘관 밑에서 근무를 하니..."


우리는 잠시 서로 미소를 지으며 우정의 눈빛을 나누고, 다시 장비를 챙겨 디딤돌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육중한 디딤돌이 밖으로 밀려 나왔다.

수사관은 몸을 옆으로 최대한 눕힌 후 낮은 마루 밑을 향해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었다.

같은 자세를 취한 나도 눈에 띄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때 마루 밑 깊은 곳에 눈에 들어오는 뭔가가 보였다.


"헛...저거 뭐죠?"


나의 질문에 수사관이 2미터 정도 마루 안으로 들어가 있는 그 물체를 유심히 쳐다보며 대답했다.


"먼지로 뒤덮여서 뭔지 나도 잘 모르겠소. 꺼내 봅시다. 그 빠루 한번 줘보슈."


수사관은 내가 건넨 배척을 마루 밑으로 집어넣어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배척의 머리로 물체를 낚아챘다.


"생각보다 가볍네.."


수사관은 반복적으로 그 물체를 배척으로 낚아채가며, 긁어내듯이 조금씩 조금씩 그것을 끌어냈다.


드디어 그 물체가 마루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이거.."


촉감이 섬유질이었다.

먼지를 몇번 털어내자 우리는 그것이 담요 종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한 번 서로의 얼굴을 확인 한 뒤 천천히 담요를 겉부분부터 벗겨냈다.


몇 겹으로 덮인 담요를 들어낸 후,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으아~~~~~악!! 뭐야 이거!!!"


아기였다.


아니 아기 시체였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나자빠진 우리는 다시 한번 멀리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 한 뒤 그 시체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후......씨발.....이건 뭐야..."


손전등을 비춘 수사관이 연신 두려움의 탄식을 내뱉았다.


돌도 넘기지 않은 아기 시체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신기하게도 시체는 썩지않고 미이라처럼 검게 말라있었다.

머리부분에 남아있는 많은 양의 검은색 머리카락이 그 신비함을 더했다.


"아니...왜 이런 곳에 애기 시체가 있는거지?"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며 살피던 우리는 작은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건드리면 갑자기 죽은 아기가 깨어나기라도 할 것 같은 생각에, 수사관은 그 쪽지를 두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누렇게 변색된 그 종이를 펼치자, 잉크가 거의 탈색되어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수사관은 그 작은 글씨에 손전등을 가까이 비춰가며 읽어갔다.


"1977년 12월 20일.......김ㅇㅇ"


"우와.....이게 20년이 넘은 시체란 말이예요?"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거 생일인가? 아니면 이 안에 들어온 날인가?

하여튼 이 아기가 뭔가 답을 얘기해 줄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구려...."


그런데 갑자기 수사관이 걱정스런 모습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이젠 어떡하죠?"


"어떡하긴요?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죠."


"그게 아니라 경찰이 오면 신고자인 우릴 조사할거고, 우리가 여기 온 걸 부대에서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럼 경찰들한테 군에서 물어보면 우리를 본 적 없다고 부탁하면 안될까요?"


"그것도 어렵습니다. 군관련 사고는 사고 접수 즉시 바로 군헌병대로 전달됩니다.

그럼 헌병대장이나 수사과장한테 보고될 것이고, 우리는 부대에 없다는 것이 밝혀질 게 아닙니까?"


수사관은 연신 걱정스런 심정의 말을 이었다.


"사단장 명령을 어기고 부대를 벗어났으니...보통 일이 아닌데.."


"버리고 갈까요? 가면서 신고하든가 아니면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보고 신고할 것 아닙니까?"


"이대로 버리고 가면, 우리는 더 이상 이 아이에 대해 조사할 시간이 없습니다."


수사관은 입술을 깨물며 해결책을 찾는데 머리를 굴리는 것 같았다.

그 때 불현듯 내 머리를 스치고 가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잠시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시간이 1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수사관님 잠깐 여기서 기다려봐요."


"왜요? 어디 가게요?"


"사건파일을 다시 한번 좀 봅시다."


나는 빗속을 가로질러 후다닥 대문 밖 소나타 차량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소나타 뒷좌석에 내려놓은 사건 파일을 우의 안으로 숨겨들고, 수사관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수사관은 무슨 일이냐는 듯 나에게 물었다.


"사건파일은 뭐하게요?"


"후레쉬 좀 비춰 보세요."


나는 서둘러 서류봉투에서 파일을 꺼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좀 보세요!! 첫 사건!!!!!"




[[[

-1978년 7월 14일-

육군 [중사 김ㅇㅇ]가 같은 부대원 [중사 고ㅇㅇ], [하사 이 ㅇㅇ]와 자신의 아내를 소총으로 살해하고 본인은 자살.

]]]



"아니!! 이럴 수가......."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수사관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 담요 속에서 나온 쪽지의 날짜는 1977년 12월 20일.......그리고 아기의 이름은 김ㅇㅇ.......

1977년 12월 20일은 저 아기의 생년월일이 분명하고, 용의자 김ㅇㅇ중사의 자식일겁니다."



"이런 세상에...그럼 이제 어떡합니까?"


"제가 전에 죽은 김병장과 여기 왔을 때 주변 이웃들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요?"


"그 중에 이 집에서 30여미터 떨어진 곳에 아주 연로한 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쭈욱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 아기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요? 그럼 바로 갑시다."


수사관은 서둘러 우의의 모자를 뒤집어 썼다.


순간 나는 바닥에 놓여있는 아기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아기 어떡하죠?"


"그러게요....차에 싣고 다닐 수도 없고..."


"일단 다시 마루 밑에 보이지 않게 넣어놓고 다시 옵시다."


"마루 밑? 불쌍하지 않소? 20년 넘게 저렇게 어둡고 쾨쾨한 곳에서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내 생각이 짧은 듯 싶었다.


"그럼, 방에 보이지 않게 들여놓고 갑시다."


우리는 그 아기시체를 조심스레 들고 들어가 툇마루와 이어진 작은 방 구석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아기를 내려놓고 수사관은 잠시 아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을 했다.


"참...마음이 착잡하구랴..태어나자마자 얼마 안되어 저 여린 몸으로 어둡고 음침한 곳에서 수십년을 보냈으니...."


나도 잠시 그 아기를 쳐다보면서 마음속으로 아기의 명복을 빌었다.


"자...이제 가시죠."


우리는 쏟아지는 빗속을 달려 그 노부부의 집으로 향했다.

녹이 슬어 페이트가 여기저기 벗겨진 낮은 철제 대문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 입니다."


"와 진짜 옛날 집이네."


집 자체는 시멘트 블럭으로 쌓아올려 기와를 얹은 허름한 형태였지만, 마당은 텃밭이 있을 정도로 비교적 넓었다.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노부부는 잠든 상태가 아닌 듯 싶었다.



"계십니까?"


대문을 두드리며 우리는 인기척을 보냈다.


몇 번을 두드리며 안에 있는 사람을 부르자 마루에 불이 켜지고, 70대로 보이는 노인이 런닝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우산을 쓰고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뉘시오?"


피부는 까맣게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에 마른 체형이었지만 노인은 매우 정정해 보였다.

우리는 우리의 신분과 여기에 온 목적을 얘기한 후 , 그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할멈...손님이 오셨어. 먹을 것 좀 있으면 좀 내와요..."


그러자 노인의 아내가 방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누구인지 묻고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안방에 앉자마자 노인은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저 집에 참 사고도 많이 났지.....조용하다 싶으면 사고나고, 다시 조용하다 싶으면 또 사고나고..."


"혹시 어르신....대략 20년 전에 그러니까..........애 키우던 집 하나 있었잖아요...."


"20년 전? 20년전이라...."


"군인 가족인데, 중사 한 명이 자기 아내 죽이고 자살한 사건 말입니다."


"아......그 친구!!!"


그제서야 노인은 무릎을 탁치며 대답했다.


그 때 노인의 아내가 옥수수가 담긴 양푼 그릇과 음료수를 들고 들어왔다.


"아이고...참... 손님 오셨는데 또 담배질이네..."


아내의 푸념에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친구 저 집에서 6년 가까이 살았지.....참 좋은 친구였어.

얼굴 잘 생겼지 성실하지 인사성 밝지...동네에 나이 맞는 처녀라도 한 명 있으면 소개시켜주고 싶었다니까

그런데 그 친구가 거기서 산 후 4년 쯤 되었을 때인가 여자 하나를 데려와 살더라구.

결혼할 여자친구라면서 데려왔는데 아주 고운 색시였다우.

그 친구만큼이나 예의도 바르고 부지런했지.

혼인식도 안하고 산 것 같았는데, 마치 부부처럼 너무나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더라니까"


이에 노인의 아내가 중간에서 끼어들었다.


"옛날 죽은 그 불쌍한 군인 얘기구랴?"


노인은 잠시 손에 들고 있던 있던 담배의 재를 털어낸 후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온지 얼마 안되서 색시의 배가 불러오더니 아들을 출산을 한거야. 참 빠르기도 하지.

그 때 쯤 그 친구는 혼인신고를 하고, 애 출생신고까지 마쳤다 하더라구..

얼마나 좋아하든지... 모든 걸 경험해 본 내 나이에도 여간 부러운게 아니더라니까...


그런데 그 친구가 죽던 그 해에 우리 동네에 작은 부대가 하나 이전해 왔어.

아주 멀리서 온 부대 같더라구.....

부대마크도 다르고 다들 처음보는 군인들이었어.

아주 먼 곳에서 훈련지원을 나왔다 그러더라구...

6개월 정도 머물다 갈 거라면서 막사도 천막을 쓰고, 밥도 이동식 취사기로 해먹더라구.

그런데 말야 그 부대가 이 동네에 온 뒤로 이상한 말이 돌았어."


노인은 잠시 쓰디쓴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지푸렸다.

그의 아내도 고개를 돌려 한숨을 내뱉으며 가슴을 잠시 쓸어내렸다.


"그 때가 그 친구 애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되었을 때야.

어느 순간부터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 나돌더라구...."


"무슨 소문 말입니까?"


"아니 글쎄....그 색시가 술집과 다방을 떠돌며 몸을 팔던 여자라는거야...."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이전해 온 그 부대원들 사이에서 처음 나온 것 같애.

원래 그 부대가 있던 동네에서 그 색시가 그런 일을 했었나봐....

돈 좀 벌어서 거길 떠나 열심히 한 번 살아보려고 하던 차에 그 중사 친구를 만난거지.

어이구...그런데 이게 뭔 운명의 장난이래...색시를 알고 있던 그 동네의 부대가 이전을 해 왔으니"


노인은 손에 든 담배를 재털이에 짓이겼다.


"여기는 워낙 동네가 작고 군부대가 가까이 있다보니까 군대 안이든 밖이든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

어디서 엿들었는지 모르지만 결국 그 친구 귀에도 그런 말이 들어간 것 같애.

그 뒤로 그 친구는 항상 술에 절어 다녔고, 마을 어귀 길거리에서 만취 상태로 뻗어있는 경우도 몇 번 봤지.

일을 마치고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매번 싸우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라고 ....

그렇게 금실좋던 부부가 저렇게 되었으니 마을 사람들도 다들 안타까워 했지...."


"그럼 그 여자분은 어떻게 죽은 겁니까?"


"요 앞에 읍내에 가면 작은 철물점이 있어. 농기구도 팔고 이런 곳이지.

그런데 에전엔 거기가 술집이었어.

칸막이가 쳐져 있는 요정같은 술집이었지...

그 날도 그 친구가 혼자 거기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나봐.

그렇게 만취한 상태에서 옆 칸에서 들리는 말소리를 들었나봐.

술집 주인년과 떠들고 있는 군인이었는데, 술집 주인년 얘기로는 아마 대위였다고 했지?"


"맞아요..대위..그 썩을 놈!! 장교나 되가지고!!"


얘기를 옆 귀로 듣던 노인의 아내가 분통이 터지는지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 년놈들 모두 취해 있었는데, 그 망할 놈의 대위가 그 친구가 옆 칸에 있는 것도 모르고, 그 색시 건드린 얘기를 하더래...뭐라더라?

얼굴값 해서 원래 잘 안주는 년인데, 자기가 제일 먼저 뚫었대나?

자기가 여자 하나는 제대로 죽여놓기 때문에 매일같이 자기 방에 찾아왔대.

그러고는 싫증이 나서 차버렸는데 그 다음부터는 이놈 저놈들이 돈 줘가며 돌아가면서 한 번씩 그 여자와 자봤다는거야.

그 애도 누구 애기일지 모를거라면서 사람으로서 입에 담지 못할 말을 계속 씨부렸나봐.

옆 칸에서 그걸 듣고 있던 그 친구의 심정이 어땠겠나?

그 얘길 들어 준 술집 주인년이 미친 년이지..지가 술에 취해 바로 옆 칸에 그 친구가 있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친구가 문을 박차고 나가자 그제서야 그 주인년이 그 친구를 알아보고 그 대위를 피신시킨거지....

그리고 30분 정도가 지나서 만취한 그 친구가 소총을 들고 오더니 술집 문을 박차고 들어가 그 대위가

있던 칸으로 개새끼 죽여버리겠다면서 총을 난사한거야."


노인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담배하나를 꺼내 입에 물어 불을 붙였다.

길게 한 모금을 들이킨 노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 귀신의 장난이란 말인가?

거기에 앉아있던 사람은 그 대위가 아닌 그 친구 부대원 두 명이었어.

그 술집년은 안쪽의 주방에서 일하다가 숨어서 지켜봤나봐.

그 친구는 이미 이성을 잃은 사람이었어. 주인년 얘기로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대.

죽은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걸레같은 년을 죽여버리겠다며, 총을 들고 뛰쳐나가더래.

주인년은 직감적으로 그 걸레같은 년이 그 친구 아내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한거야.

결국 부대에 연락이 닿아서 그 친구 색시한테까지 전해졌나봐.


우리는 그 날 동네 마을 회관에서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거의 9시 쯤 되었을거야.

그 친구가 또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라구.

그런데 싸우는 정도가 너무 심한거야...

뭐라더라...니 더러운 몸에서 나온 자식새끼 어디있냐면서 막 때려부수고 난리가 아니었다니까..."


노인은 연속되는 담배질에 목이 타는지 앞에 있던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우리가 들어가보려고 했는데 마침 싸이렌이 울리면서 엄청난 숫자의 경찰과 군인들이 몰려오더라구.

내가 여기 살아오면서 그렇게 떼거지로 몰려오는 건 처음 봤다니까.

그런데 그 소리에 그 친구가 마지막인 걸 직감했는지 갑자기 방안에서 총소리가 나더라구....

그 때 색시를 죽인거지.

대문 앞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직감하고서는 사람 죽었네 사람 죽었네 소리치면서 난리가 난거야.

그리고 조금 있다가 다시 총소리가 나더라구.

그 친구가 자살한거야...."


얘기를 듣고 있던 우리는 잠시 숙연해졌다.

아무 말없이 몇 초가 지나자 다시 노인이 입을 열었다.


"거기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다음 날 경찰서에 모두 불려갔어. 그 술집 주인년도 있었지.

그 년 얘기를 듣고 있으니까 분통이 터지더라니까.

우리 할멈을 비롯해 거기있는 사람들이 그 년 머릿채를 잡고 패댕이를 치고 난리가 아니었지."



"아이고...지금 생각해도 그 년 그 때 찢어 죽이지 못한 게 한스럽다니까."


노인의 아내가 분노가 치미는지 이를 갈며 화를 냈다.

이에 노인은 다시 한번 음료수를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리를 더 화나게 하는 건 그 대위라는 놈이 부대 복귀를 핑계로 나타나질 않은거야.

6개월 정도 머문다던 부대인데 무슨 얼어죽을 복귀야?

한 가정을 그렇게 처참하게 박살내놓고 그냥 가버리는 그런 개쌍놈의 새끼가 어딨어?"



"그 놈 얼굴이라도 한 번 봤어야 했는데..."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노인의 아내는 연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런데 말야...조사 중에 미처 생각 못한 게 있더라구.

애가 안보이더란 말이야. 경찰들 얘기로도 현장 조사 중에 애를 본 적이 없었다는군.

우리는 혹시나 다른 집에 애를 맡기지 않았다 싶어서 그 애를 찾아 돌아다녔지.

결국 못 찾았어..거 참.........어디 멀리 친정집에 갔다가 우연히 애를 맡기고 돌아와서 변을 당한건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연고도 모르는 낯선 색시라서 우리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그런 업종에 있던 색시라 돌아 갈 친정집이 없었는지도 모르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가슴이 아파......"



얘기를 듣고 있던 우리는 아기 얘기를 꺼낼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 순간 두 번째 담배를 재털이에 짓이기던 노인이 말을 이었다.


"그 뒤로 저 집에서 많이들 죽었지....

자네 군수사관이라고 그랬으니 알 것 아닌가?

모두 군인들이나 그 가족들이 죽지 않았는가?"


이에 수사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사람 죽이고 살아남은 군인들은 다 사형됐다지 아마?

그런데 그 친구들이 조사 받으면서 공통적인 말을 하더라는군.

그 집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더군.

그 애기가 실종된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말야.

어쩌면 그 전에 죽은 군인들도 들었을지도 모르지.

망자는 말이 없으니 알 턱이 있나?

아마 그 색시 애기는 죽었을거야.

가까이서 죽었다면 여길 떠나지 못하는 것이고. 멀리서 죽었다면 그 애기 혼령이 지 어미를 찾아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몰라.

그래서 그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지.

생각해 보게나. 자기 어미를 죽인 사람이 군인이었고, 결과적으로 군인들만 해를 당하지 않았나?"



우리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묵언의 합의를 보고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어르신...그 애기 저희가 찾았습니다."


내 말에 두 노인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그 색시의 아들 저희가 찾았단 말입니다."


"그래... 죽지 않고 살아있었나? 지금 어디 있나?"


나는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그리고 눈을 바닥에 깔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게... 저....조금 전에 마루 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이에 깜짝 놀란 노인의 아내가 두 손으로 방바닥을 치며 울먹였다.


"아이고!! 어떡해! 어떡해! 세상에나!! 아이고...불쌍해라!!!!"


아내와 달리 노인은 침착한 표정을 유지한 채,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어떡해!! 어떡해!! 지 어미 기다리다 죽었네...지 어미 죽은 줄도 모르고....세상에나!!! 아이고.. 세상에나!!!"


노인의 아내는 탄식과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내 뿐만 아니라 노인의 눈시울도 촉촉히 젖어있는 듯했다.


"애를 멀리 숨길만한 시간이 없었나 보군...세상에나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엄마를 찾았을고..."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컵에 들어있던 마지막 한 모금의 음료수를 들이켰다.

그리고 빤히 우리를 쳐다보면 십여초 간 말을 아끼던 노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애 어떻게 할텐가?"


"저희들도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저희도 오늘 밤 사건조사를 끝내야 합니다."


"그럼 빨리 그 애를 데리고 가게."


"어디로 말입니까?"


"지 어미의 무덤으로 말일세. 그래야 이 악몽같은 저주가 풀릴 걸세.

그 친구 시신은 부모들이 거두워갔는데, 그 색시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며 색시 시신은 거두지 않고 가버렸네.

연고가 없는지라 경찰에서 그냥 화장하려고 했는데, 우리 마을 사람들이 거두고 상을 대신 치뤄주었네.

언젠가 어미의 무덤에 장성한 아들이 찾아와주길 바랬는데...이렇게 그 때 그 어린 모습으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 돌아오다니..."


노인은 눈물을 감추려는 듯 한 손으로 두 눈을 감쌌다.


"어르신....그 무덤이 어디입니까?"


"찾기는 쉬워. 약도를 그려줄테니 거기로 가게..."


노인은 작은 노트의 한 페이지를 찢어 떨리는 손으로 그 곳을 그려나갔다.

노인이 그린 약도를 보자 그 곳이 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마을 외곽 가까운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대문까지 배웅 나온 노부부는 우리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그 애 좀 볼 수 있나?"


"그냥, 안 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신상태가 좀..."


"어디 상처를 입었나?"


"담요에 싸여 있어서 질식사 했거나 그대로 굶어 죽은 것 같습니다."


이에 노인의 아내가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다.


노인은 입을 굳게 한 번 다물더니 말을 했다.


"알았네...부디 잘 묻어주게...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뒷정리는 잘 해 줄걸세."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사건현장으로 향했다.

오는 내내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우리는 대문 안으로 들어선 후 마당 한가운데 서서 잠시 동안 그 집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집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왔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마치 그 아기와 엄마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잠시 동안의 만감에 젖어 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대문 밖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최상사 오랜만이야.."


우리는 고개를 획 돌려 그 낯선 목소리의 정체를 찾았다.


대문 밖에 낯선 남자 서너명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와 수사관은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사관이 욕설로 대답했다.


"너..이 씨발. 니가 여기에 왜 왔어?"


나는 뜬금없는 상황에 수사관에게 조용히 물었다.


"누굽니까?"


"군단 수사관 놈인데 제 동기입니다. 존나게 싸가지 없는 새끼죠. "


그들은 곧 대문 안으로 들어서더니 우리 앞에 떡 멈춰섰다.


모두 네 명이었다.


수사관 동기라는 사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손전등에 간접적으로 비추어진 그의 얼굴 표정은 매우 차거웠다.


그리고 뒤에 있는 세 병사의 우의 아래로 그들이 들고 있는 소총의 머리가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대위님. 저는 군단 수사관 정ㅇㅇ상사입니다."


그는 가볍게 오른손을 눈썹 가까이 들었다 내리며 예를 표했지만 그의 말투는 매우 거만했다.


"웬 일이십니까?"


"아니 아실만한 분이 소속 사단장의 명령도 어기고 이수지역까지 벗어나서 뭐하는 짓입니까?"


"누가 그러던가요?"


"사단 헌병대 수사과장한테 전화가 와서 말이죠.

그래서 이 비오는 야밤에 찾아다니느라 고생 좀 하고 있었습니다.

이수지역 검문소에 모두 연락해 보니까, 어디 멀리까지 가신 모양입니다.

행방을 알 수가 없었는데, 혹시나 해서 여기에 왔더니 저 친구 차가 보이더군요.

몇 십분 기다렸는데 힘들었습니다."


동기의 너무나도 오만방자한 말투가 듣기 싫었는지 수사관이 격한 어투로 말을 내뱉았다.


"그래서 씨발...니가 어쩔건데?"


군단 수사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턱을 잠시 치켜 올리며 삐죽거리는 입으로 말을 했다.


"야....다치기 싫으면 좋은 말로 할 때 호송차에 타라."


"뭐? 씨발놈아?"


수사관의 격한 언사에 군단수사관이 가소롭다는 듯 한 쪽 입술을 치켜 올렸다.


"씨발...미친 새끼...사단 수사관 주제에 뭘 잘 났다고 욕질이야?

조용히 타면 니네 사단장한테는 입 다물거고, 만일 껄렁대면 군단에 보고해서 그냥 옷 벗게 만들어 버린다."


"뭐 이 개새끼야!!!"


"아이 씨발... 이 자식이 말길을 못 알아듣네. 야!! 체포해!!"


군단 수사관의 한 마디에 뒤에 서 있던 소총으로 무장한 세 명의 병사가 움직임을 보였다.


"잠깐만요!!!!!!"


나는 그들을 잠시 정지시켰다.


"뭐?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여전히 그의 말투는 싸가지가 없었다.


"우리에게 한 시간만 여유를 주시오. 그리고 우리가 자진해서 부대로 복귀하겠소."


"지금 장난하십니까?

12시가 넘어가는데 저희보고 한 시간이나 더 기다리라구요?

지금 진짜 문제는 저 친구가 아니라 대위님이십니다.

사단장 명으로 헌병대에 연금당하신 분이 부대를 벗어나 이수지역까지 이탈하시고서 지금 이게 할 말입니까?"



"급히 할 일이 있소. 한 시간만 여유를 주시오."


나의 간곡한 부탁에도 그는 여전히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로 대응했다.


"이봐요. 대위님. 사단 헌병대 수사과장이 지금 사단에 보고하겠다고 난리입니다.

괜히 당신네 헌병대장이나 수사과장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협조하십시오.

우린 뭐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러고 있는 줄 아십니까?

그냥 가시면 되는데 왜 아무 상관없는 우리까지 피곤하게 만드는 겁니까? 예?"


그런데 나는 조금 전부터 군단 수사관 뒤에 서 있는 병사 한 명의 기이한 행동이 눈에 거슬렸다.

어둠 속에서 우의를 뒤집어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고개를 푹 숙인 채 자꾸 턱을 이리 저리 좌우로 채며, 뭐라고 궁시렁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까부터 저 친구...왜 저래?"


나는 머리를 옆으로 살짝 눕히고, 군단 수사관 뒤에 서 있는 그 병사를 바라보며 말을 했다.


"대위님, 지금 뭐하는거요?"


군단 수사관은 나를 바라보며 물었지만, 잠시 후 뒤에서 들리는 낯설고 괴기스런 소리에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으히힝!! 으힝!!! 으히히히힝!! 으힝!! 으히히히힝!!!!!!!!"



괴이한 소리에 군단수사관이 뒤를 돌아봤다.


"으힝.....으힝......"

연신 아랫턱을 좌우로 채던 병사가 또다시 알 수없는 종류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구어어어얼..거어어어얼..."


"아니 이새끼 왜 이래?"


나는 즉시 손에 들고 있는 손전등을 그 병사를 향해 비추었다.

동그란 모양의 손전등 빛에 비추어진 그의 얼굴에 모두들 놀라 뒤로 물러섰다.

간질 환자처럼 눈은 돌아가 흰자위만 보였고, 입에서는 연신 거품을 쏟아냈다.


"총 뺏아..."


갑작스런 내 말에 군단 수사관이 되물었다.


"뭐라구요?"


"우리 모두 죽어요!! 총 뺏으라구!!!"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병사는 갑자기 목을 이리저리 꺽더니 우리를 향해 미소지었다.


"어라? 정신이 돌아왔네."


군단 수사관은 신기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안돼!!! 총 뺏으라구!!!"


나는 잽싸게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군단수사관이 나를 몸으로 막더니 부릅 뜬 눈으로 노려보았다.


"어허...대위님, 이거 왜 이러실까? 어디로 튀실려고? 꼼짝하지 마쇼."


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다.


"야! 씨발 우리 다 죽는다고!!!!"


나의 미친 듯한 행동에 나를 붙잡고 있던 군단 수사관이 소리쳤다.


"야!! 뭐해? 이 사람 붙잡아!!"


양쪽의 두 병사가 재빨리 다가와 나의 양 팔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철커덕!!!!!"


소총의 장전소리에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리고 모두들 나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선을 천천히 돌려 그 병사를 바라보았다.

빗소리 외에는 그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감과 극도의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와함게 연신 빗줄기를 쏟아내고 있는 그 병사의 우의가 막대로 걷어올려지듯이 천천히 올라갔다.

걷어올려지는 우의의 끝자락의 움직임과 함께 우리의 시선도 같이 따라 움직였다.

우의가 걷어올려지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우리를 향하고 있는 소총의 총구였다.

총알이 빠를까? 내 몸이 빠를까?

순간 말도 안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 모두들 굳어버린 자세를 풀지 못했다.


"너...씨.씨발...새끼... 뭐하는거야?"


나를 붙잡고 고개를 뒤로 돌린 채 그를 바라보던 군단 수사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던 그 병사는 갑자기 모든 치아가 다 보일 정도로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오금이 저렸다.

전에 몇 번 금속성 물질이 내 몸을 관통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한 적이 있다.

대포 구멍처럼 확대되어 보이는 나를 향한 총구를 보는 순간, 그 게 미친 상상이었음을 느꼈다.

갑자기 그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워버리더니 병사가 입을 열었다.


"그런다고 모든 게 끝나지 않아......"


"뭐..뭐라고?"


그리고 그 병사는 무슨 결심을 한 듯 입을 굳게 한 번 다물더니 마지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군바리 새끼들...다 죽여버리겠어..."


"안돼!!!!!!!!!!!"


"탕!! 탕!!"


두 발의 총성과 함께 그 병사를 바라보고 있던 세 사람이 뒤엉켰다.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어둠과 폭우와 소름끼치는 공포속에 우리는 서로 뒤엉켜 있었다.

그 병사가 흥건한 흙바닥에 넘어진 것을 확인 한 군단 수사관이, 그에게 달려들어 총을 뺏고 무자비한 주먹질을 얼굴에 퍼부었다.


"이 개새끼! 미친 새끼!!"


몇 차례의 주먹을 허용한 후 그 병사가 실신한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병사의 움직임이 없자 군단 수사관은 헉헉대면서 오른 주먹을 높이 쳐들고 그를 노려보았다.

넘어진 자세로 그 병사의 다리를 잡고 있던 나도 그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 앞에 넘어져 있던 수사관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껄떡대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미친 병사를 향해 수사관이 소리치며 달려든 것이다.

손전등에 비추자 그의 주변으로 원형의 피바다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수사관님!!!!!!"


"야!! 최상사!!!!!!!!"


군단 수사관과 나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우의를 벗겨내자 그의 왼쪽 복부 아래에서 피가 토하듯이 뿜어져 나왔다.

발사된 총탄 두 발 중에 한 발을 맞은 것이다.


"뭐해!! 새끼들아!! 의무대 연락해!!!!!!!!!"


군단 수사관의 외침에 무슨 해괴한 상황이 벌어진 건지 감도 못 잡고 안절부절 하던 남은 두 병사가 대문밖으로 뛰었다.


"야!! 최상사!!!!!!! 정신차려!!!!!!!!!"


"지혈시켜야 돼요!!"


이 말과 함께 나는 우의를 벗어제끼고 이빨로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품 속에 감추어져 있던 사건서류가 바닥에 떨어져 물속에 잠겨 젖어가고 있었다.

서류는 흙탕물 속에 파묻혀 훼손되어가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의 피가 새어나는 왼쪽 하복부에 찢긴 우의를 접어서 덧대고 그 위에 길게 찢긴 우의로 하복부를 감아 돌렸다.

그 순간 부릅 뜬 눈을 유지한 채, 숨을 껄떡이던 수사관이 천천히 오른팔을 움직여 뭔가를 들어올렸다.

소나타 차량 열쇠였다.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나는 금방 알수 있었다.

나는 그의 손과 열쇠를 동시에 움켜쥐고 조용히 열쇠를 뺏아 들었다.


"죽지마요...꼭 다시 만납시다."


이에 옆에 있던 군단 수사관이 부릅 뜬 눈으로 노려보며 나에게 물었다.


"지금 뭐하는거요?"


이에 나는 경멸하는 듯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닥치고 있어요."


나는 천천히 일어서 아기 시체가 있는 작은 방으로 뛰었다.

나의 무서운 기세에 주눅이 들었는지 군단 수사관이 더 이상 나를 제지하지 못했다.

작은 방 구석에 놓인 아기 시체를 싸고 있는 담요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잠시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꼈지만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 시체가 담긴 담요를 들고 빗속을 뛰었다.


그리고 노인이 그려 준 약도를 따라 나는 차를 몰고 미친 듯이 달렸다.

억수같이 퍼붓는 비가 나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내가 먼저 저 세상 사람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10분 여를 미친 듯이 달려 나는 아기 엄마의 무덤으로 올라가는 야산 입구에 도착했다.

간혹 내려치는 번갯불에 조명탄이 터진 듯 야산 전체가 환하게 밝혀졌다.

우의도 없는 상태로 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야전삽 하나를 든 채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입구까지는 오기에는 수월했지만, 산 속 100여미터를 올라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거의 물반 흙반이라고 해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땅이 질퍽거렸다.

몇 차례 미끄러짐을 반복하며, 나는 아기 엄마가 있는 무덤으로 거의 기듯이 올라갔다.

헐떡이는 숨소리에 맞추어 빗물이 내 입속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침인지 빗물인지 입 속에서 쏟아지는 분비물이 턱을 따라 흘러내렸다.


드디어 노인이 말 한 그 곳에 도착했다.

정말로 비석 하나 없이 동그란 낮은 봉분 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관리가 있었는지 주변엔 잡초나 나무가 자라지 않고 있었다.


아기가 담긴 담요를 오른팔로 감아 안은 채, 숨을 헐떡이며 나는 그 무덤 앞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깊은 밤, 산속에 비까지 내리고, 어느 이름 모를 여자의 무덤 앞에 지금 나는 서 있다.

그 무엇이 나를 이 곳으로 이끌고 왔는지 기억조차 정리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20년 넘는 세월 동안 나를 이 자리에 세우기 위해 그 수많은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다.

수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나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어느 정도 잡스러운 생각들이 정리되자, 나는 지금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20년 넘게 내려 온 이 피비린내나는 저주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아이요...."


그녀가 듣고 있는지 아닌지 나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눈물을 거두고 이 아이를 데려가시오."


나는 아기를 조용히 내려놓고 봉분 옆을 야전삽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빗물을 먹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흙이 쉽게 파헤쳐졌다.

어느 정도 적당한 깊이가 되었다고 판단이 서자, 나는 아기가 든 담요를 들고 와 그 구덩이 속으로 가만히 내려놓았다.

물끄러미 몇 초간, 검은 미이라가 되서 어미 품으로 돌아온 아기를 쳐다 보았다.


"이젠 엄마하고 편히 잠들거라."


야전삽이 아닌 두 손으로 정성스레 흙을 채워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내 주변을 너무나도 작은 아기 울음 소리가 맴돌았다.


"응애...응애....응애..."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고 흙을 채워나갔다.

이젠 이 소름끼치도록 지겨운 환청과 이별하고 싶다.

두려움 때문인지, 서러움 때문인지, 이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인지....이유 모를 눈물이 내 두눈에서 쏟아졌다.

흙을 다 채운 나는 천천히 일어서 그녀의 무덤 앞에 다시 섰다.

그리고 조용히 흙으로 범벅이 된 오른손을 들어 그녀에게 예를 갖추었다.

마음이 정리되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기엄마의 배려인가......이젠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다시 야전삽과 손전등을 들고 산을 내려갔다.

미끄러운 산을 내려오는 것은 올라가기보다 더 힘들었다.

수없이 넘어짐을 반복한 후 나는 산을 내려왔다.

온 몸에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 차를 다시 사건현장으로 몰았다.


멀리서 의무대 응급차량이 떠나는 것이 보였다.

그 집 대문앞에 도착하자 군단 수사관과 남은 병사 두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없이 몇 초간 서로를 바라보았다.


"최상사..어떻게 되었소?"


나는 마지막 퀴즈 문제의 정답을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괜찮소..."


그제서야 내 온 몸의 긴장감이 스르르 풀리면서 너무나도 무거운 피로감이 몰려왔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고 말았다.


"일어서시오. 이제 갑시다."


군단 수사관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를 잠시 올려다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흥....이제 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군 수사관이 총에 맞았소...큰 바람이 불거요. 그런데 아까 대위님이 들고 뛴 것이 뭐요?"


"20여년 전에....이 곳에서 죽은 아기라오..."


"아기?"



사단 헌병대로 돌아온 나는 피의자처럼 유치장에 감금당하였다.

아침에 눈을 뜨자 나를 감시하던 병장을 달고 있는 헌병이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다.

밤새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잠들었다고 한다.

아침 식사를 조용히 내 밀며 헌병이 말을 걸었다.


"조금 있다가 사단본부에 들러야 하십니다."


"그래?"


"식사를 마치시고 정복으로 갈아 입으시기 바랍니다."


"사단장님이 그러래?"


"군검찰에서 대위님을 소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사단장님 면담이 끝난 후 바로 가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밤 동안 대위님 정복을 세탁하고 다림질해놨습니다."


사단 본부로 향하는 차량 안에서 나는 사단장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무엇을 말해야 할지 순서가 정해지지 않았다.


사단장실에 들어섰을 때 이미 몇 개의 담배를 피워댔는지 실내가 연기로 자욱했다.

나의 경례에도 사단장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그런데 평소와 다른 점이 눈에 하나 들어왔다.

어느 기관에서 호출 명령을 받았는지, 사단장이 전투복이 아닌 정복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왜 내 명령을 어겼나?"


사단장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그럴만큼 그 사건이 가치가 있었나?"


"........."


"이젠 나조차 감당할 수 없을만큼 사건이 커져버린 것 같아. 군인에 의해 민간인이 죽고, 어제는 군 수사관이 총에 맞고..."


"면목이 없습니다."


"같은 집에서 20여년 동안 1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어....옛날 같으면 감추고도 남았을 일인데..

세상이 변했다네....더 이상 감출 것이 없어.."


"...........?"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최중사 사건을 전면 재조사 하겠다더군....그러면 20년 동안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다 파헤쳐질거야....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인데 말야...."


이번 두 사건이 그의 진급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서일까?

사단장의 미세한 손 떨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명색이 사단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일로 손을 떨 정도인가?

사단장이 이렇게 형편없는 새가슴을 한 장성이었단 말인가?

사단장은 자신의 진급 외에는 그 무엇도 관심조차 베풀 자비도 없는 사람인가?

그리고............

수사관이 비밀스럽게 조사한 자료의 내용을 어떻게 알고 있는걸까?

어젯밤 그 서류는 흙탕물 속에 잠겨, 엄천난 빗줄기 때문에 물에 풀어지듯 사라졌을텐데...

나의 이런 의문에 사단장은 답이 될만한 질문을 던졌다.


"그 아기는 잘 묻었나?"


"네?"


"군단 수사관이 그러더군.....아기를 하나 묻고 오더라고..."


"그런데 사건 서류의 내용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제서야 사단장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소름끼치는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쳤다.


"호..혹시? 20년 전 그 대위?"


사단장은 음흉스런 미소를 풀지 않았다.


"미소만 지어도 알아차리다니 대단하구만.

그래...아기를 찾아내 어미 무덤까지 가서 묻어 주었겠지? 그 정도면 모든 걸 알았을거라 생각했네."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는 내 허리 뒤의 두 손이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에게 따로 사건 조사를 맡기셨던 거군요....

관할 경찰서나 헌병대에서 어떤 조사가 이루어졌는지 알고 싶은셨던 겁니다."


사단장은 입을 굳게 한 번 다물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그 동안 20여년 동안 벌어진 사건들을 대략적으로나마 듣고 있었지.

젊은 날의 한 때 불장난으로 인해 지금 이 때까지 나는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려 왔네.

다시는 이 곳으로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운명의 장난처럼 이 곳에 사단장으로 부임해 올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나?

내가 여기 있는 동안만큼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길 바랬는데 결국 최중사 사건이 터졌으니...

어떤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솔직히 두려웠지.

그렇다고 헌병대에 세세한 상황까지 캐묻고 다니는 건 무리였어.

국방 장관에까지 보고된 사건에 내가 자꾸 관여하는 모습이 좋아보이지 않았거든.

사건을 은폐 조작하려 든다는 느낌을 주지 않겠나?

그래서 자네를 내 대리로 이용한 걸세.

그런데 헌병대 조사가 끝났는데도 자네가 더 사건을 파헤치려고 하는거야.

그냥 둘 수가 없었어.

조금만 있으면 진급시즌이 다가오고 나는 이번 진급이 결정되면 여기를 떠날 상황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진급은 커녕 현재 보직도 유지할 수 있을 지 걱정이야.

새벽에 사건 보고를 받고 그 현장에 직접 갔었지.

난 20여년 만에 돌아와, 나의 경솔한 언행 때문에 일어난 그 참혹한 사건의 현장에 서 있던 내 심정이 어떠했겠나.

늦었지만 그들에게 마음 속으로 조용히 사죄를 했지...."


사단장은 들고 있던 담배를 재털이에 짓이겼다.


나는 웬지 모를 분노감이 치밀었다.

"정말로 죄책감이 드십니까? 진심으로 사죄를 하셨습니까?"


사단장은 대답을 거부한 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 정복 모자를 갖추어 쓰고, 뚜벅뚜벅 문 쪽으로 걸음을 향했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고 열려는 순간 그 자리에 멈춰서 뒤돌아보며 나에게 물었다.


"아참....군검찰로 소환되면 어디까지 얘기할텐가? 내 얘기를 할텐가?"


"......."


"내 얘기를 하든 안하든 사건조사에는 큰 영향이 없을 텐데...단지 나에게 도덕적인 책임만 물을거야.

내가 총질을 한 건 아니거든"


이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터질 듯한 분노와 증오가 밀려왔다.


"필요하다 판단이 되면 진실을 밝힐 것입니다."


"훗......도대체 왜 자네는 안전한 길을 놔두고 자꾸 이런 위험을 자초하나?"


나는 열중쉬어 자세를 풀지 않은 채 등 뒤에서 들리는 사단장의 말에 대답을 했다.


"사관생도 훈에 보면 '귀관이 정의를 행함에 있어 닥쳐오는 고난을 감내할 수 있는가?' 라는 귀절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따를 뿐입니다."


"훗...그렇군."


한 번 가소로운 듯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사단장은 말을 이었다.


"...그런다고 모든 게 끝나지 않아......"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사단장은 조용히 문을 열고 빠져 나갔다.


사단장실을 빠져 나왔을 때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헌병대 호송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운전병으로 보이는 친구가 차량 옆에 서서 말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게 어제밤 일로 끝난 것 같았는데, 이 편치 않은 마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순간 내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진동을 알렸다.


"네?"


"대위님...최상사입니다."


"수사관님!!!"


기쁨의 함박 웃음을 지었다.


"괜찮으십니까? 수사관님?"


"크크...살아있으니까 전화질 하는거 아니오?"


"수사관님...미안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그런 말 마쇼.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후회는 없소."


"그런데 웬 전화이십니까?"


"그냥 그 애기 잘 묻어줬나 궁금해서 말이죠...."


"네..잘 묻어주고 왔습니다."


"이제 모든 게 끝난건가요?"


"저....그게 말입니다..."


나는 찝찝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요?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요?"


"정말로 아기 영혼이 우리를 다치게 한 걸까요?"


"그게 무슨 말이오?"


"아기가 아니라 그 애 아빠의 영혼이 우리를 괴롭혔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애는 단지 이런 살육을 막기 위해 울음소리로 우리에게 알린 거라면?"


"설..설마요..."


"예전에 죽은 소대장이 밤마다 가위에 눌렸을 때, 피범벅이 된 무장한 군인이 나타났다고 그러지 않았나요?

어젯밤 아기를 들어내는 작업할 때 제가 목격한 것도, 얼굴이 온통 피로 덮여있는 낮선 남자였습니다.

귀신 씌인 병사가 한 말 기억나요? 군바리 새끼들 다 죽여 버리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기가 어떻게 군바리라는 말을 알죠?"


"대위님....."


불현 듯 내 머릿속을 스치는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잠시 멍하니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대위님......듣고 계시나요?"


나의 대답이 없자, 수사관이 아픈 몸으로 힘겹게 불러댔다.


"대위님...듣고 있어요?"


나는 온 몸이 오그라드는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어제 그 병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였죠?"


"예?"


"어제 총을 쏜 그 병사가 마지막으로 한 말!!!!!!"


"군바리 새끼들 다 죽여버린다고 그랬잖아요."


"그..그거 말고, 바로 전에 말...."


"음....뭐더라...아.....그런다고 모든 게 끝나지 않는댔나?"


동시에 나는 조금 전 사단장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조용히 읊조렸다.



"그런다고 모든게 끝나지 않아...."



나는 그 자리에 휴대폰을 떨구고 말았다.

사단본부 주변으로 보이는 드넓은 산악지형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헤어날 수 없는 깊고 어두운 숲속에 나 홀로 남겨진 듯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1차 출처 모름

2차 출처 알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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