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시험을 앞두고 있었으니 7월 쯤이었을까.
그 당시 나는 세워진지 20년 가까이 되는 원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제일 꼭대기 층인 4층 끝방이었다.
그 날 나는 친구와 시험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중간에 편의점도 들렀다 와서 그런지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2시 였다.
우리 아파트엔 엘레베이터라는 편리한 문명따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걸어올라가기 위해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 근처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위협적인 소리를 내던 고양이들은 이쪽을 흘깃 보더니 어디론가 달아났다.
영역싸움이라도 한 것일까.
방금까지 고양이들이 있던 곳을 보니 꿈틀거리는 검은 덩어리가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그 것은 까마귀였다.
상처가 심했다.
한쪽 날개는 부러지고 다리도 다쳤는지 움직이지를 못하고 그 자리에서 버둥버둥 하고 있었다.
아까 그 고양이들이 이 까마귀를 공격했던 것 같았다.
내가 그냥 두고 가면 고양이들이 되돌아와서 까마귀를 죽일 것만 같았다.
까마귀가 가여웠다.
나는 그 까마귀를 우리 집으로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순간 동물병원도 뇌리를 스쳤지만 시간이 시간인만큼 연 곳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바둥대는 까마귀의 상처가 벌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옮겨서 우리 집 베란다에 두었다.
4층이니 고양이가 못오겠지 싶었다.
나는 내일 있을 시험을 대비하여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베란다를 내다보았다.
까마귀는 조금 기운을 차린 듯 마리를 질질 끌며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어제 먹다남은 편의점 도시락 반찬과 물을 주었지만 까마귀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아는 사람은 다들 알겠지만, 까마귀는 경계심이 상당히 강한 동물이다.
사람이 버린 음식을 주워먹는 주제에 사람손에서 직접 받아먹는 일 따위는 없는 것이다.
어느새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에 나는 시험을 보러 학교에 갔다.
벼락치기를 한 것 치고는 시험을 꽤 잘 봤다.
내일 있을 시험을 위해 오늘도 친구와 공부하기로 하고 일단 집으로 갔다.
베란다를 보니 까마귀는 죽어있었다.
베란다에서 탈출하려고 몸부림 치다 그렇게 된 것 같았다.
부러진 날개를 억지로 펼친 자세로 쓰러져 있었다.
왜인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나때문에 까마귀가 죽었다는 사실에 자책하며 시체를 묻어주고 감상에 잠길테지만, 그 순간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베란다 건너편을 보았다.
시선이 닿은 곳은 베란다와 평행이 되듯이 설치 되어있는 전선이었다.
거리 상으론 약 1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의 전선 한 구간이 까맣게 되어있었다.
처음엔 당황해서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무시무시한 수의 까마귀 떼였다.
엄청난 숫자의 까마귀 떼가 우리집 베란다 바로 맞은 편 전선에 바글바글 앉아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쳐다본 순간, 까마귀 떼는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무지막지한 소음공해였다.
나는 서둘러 베란다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두려웠다.
하지만 다행히 꼭대기 층이다보니 비둘기 방지용 그물이 설치되어있어서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이웃 집 주민들이 하나 둘 나와보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도망칠 필요까진 없었지만 견딜 수 없었던 나는 그만 집에서 도망 나왔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온들 갈 곳이 없었다.
일단 내일 시험도 있고 해서 친구 노트라도 빌리려고 친구를 불러냈다.
부르는 입장에서 우리 동네로 나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친구네 동네 편의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로 가보니 친구가 먼저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편의점의 유리 너머로 잡지를 읽고있는 친구가 보였다.
타고 온 자전거를 구석쪽에 세우던 그 순간 후두부에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누구한테 쇠파이프로 얻어맞기라도 한 것 같은 충격이었다.
멀어질 듯한 의식을 억지로 다잡았다.
뒤통수에 손을 대보니 피가 흥건했다.
내 발치에는 캔 음료수가 구르고 있었다.
내용물이 가득 들어있는 이 캔 음료가 내 머리에 떨어진 것이 틀림 없었다.
나를 보고 놀라 친구가 뛰어나왔다.
친구는 반신반의 하고 있었지만 나는 확신 할 수 있었다.
저 까마귀들 짓이야.
편의점 지붕위에 앉아있는 두마리 중 한마리가 캔을 내 머리에 떨어뜨린 것이다.
친구는 나를 병원에 데려가 주었다.
다행히도 상처는 대단치 않은것이었다.
두개골도 함몰된 곳 없이 멀쩡했다.
친구는 차로 나를 데려다주며 공부는 됐으니 집에서 잘 쉬라고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친구의 말을 듣기로 했다.
나를 아파트 앞에 내려주고 가는 친구의 차를 배웅하면서 나는 전선을 살폈다.
까마귀는 두세마리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까의 그 까마귀 떼는 전부 흩어지고 없었다.
마음 놓고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려는 그 순간,
위에서 하얀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거의 코끝 을 스치듯 내 바로 앞에 떨어졌다.
뭔가가 둔탁한 것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주변을 울려퍼졌다.
그리고 까마귀가 까악까악 하고 우는 소리가 이어졌다.
재빨리 위를 올려다 보니 까마귀 세마리가 내 머리위를 날고 있었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었다.
떨어진 것은 하얀 비닐 봉투였다.
찢어질 새라 주먹만한 돌 들이 그득 그득 차 있던 그 봉투를 보며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만약 이게 내 머리위에 떨어졌더라면.......
까마귀는 정말로 나를 죽일 생각인 것이다.
공포심에 가득차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죽은 까마귀의 시체를 가지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근처의 공원에서 맨 손으로 땅을 파서 까마귀를 묻어주고 간단히 묘지를 만들어 주었다.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미안하다고 몇번이고 육성으로 반복했다.
주변에 있는 까마귀들이 전부 들을 수 있도록....
그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후로 까마귀가 나를 죽이려 시도한 적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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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비비스케(http://vivian9128.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