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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나당전쟁
게시물ID : history_52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덕영이
추천 : 2
조회수 : 163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8/07 02:55:47

 

 

최근 중국의 경제적 성장과 더불어 군사/문화적 팽창도 커지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이 심화되면 한국과 중국은 제2의 역사전쟁을 벌여야 할 지도 모릅니다.

이와 관련하여 원조(?) 나당전쟁에 대한 신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당전쟁의 시작과 종결이 토번의 영향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시각을 비판하고

신라의 자주성과 삼국통일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는 책입니다.

아래는 한 스타블로거의 리뷰입니다.

 

당의 전쟁 8년

내용 편집/디자인 | 골드 점돌이 | 2012-08-06 | 추천0 | 댓글0

 

 

이상훈의 <나당전쟁 연구>를 읽었다. 서영교의 <나당전쟁사 연구>가 출판되어 있으므로 두 책을 통하여 나당전쟁의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었다.

 

668년 신라와 당의 연합군은 백제,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신라의 역량을 우습게 보았던 당은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기 위하여 웅진도독부와 안동도호부를 중심으로 신라를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국외의 연구자들은 당나라 서쪽에서 안서4군을 전격 침공한 토번과 싸우기 위하여, 신라 쪽에 투입하였던 병력을 빼서 토번전선에 이동배치하면서 한반도를 방기한 결과 나당전쟁이 종결되었다고 한다. 신라는 당이 쳐들어와서 싸우다가 당이 병력을 빼는 바람에 전쟁이 끝나 옛 백제 지역과 고구려 지역의 일부를 그냥 얻었다는 것이다. 신라는 당나라의 들러리에 불과하였다는 말이다. 

 

고대 한반도 남쪽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을 주장하는 일본측의 역사연구를 중국측이 그대로 수용한 탓에 이와 같은 해석이 나왔다. 당사자인 신라의 입장을 제외한 채 이루어진 전쟁 연구가 역사연구로서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에 반하여 국내 연구자들은 최강국 당과 맞서 싸운 신라의 자주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초반의 패전에도 불구하고 당의 보급을 적극 차단하는 전략과 눈부신 외교전술을 펼쳤고,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는 최강국 당이 한반도에서 사실상 패전하여 체면을 구기게 만든 결정적인 전투였다고 한다.

 

이 책은 선입관을 배제하고 먼저 나당 전쟁이 실제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면밀하게 검토한 후에 판단을 내리고 있다. 나당 전쟁은 679년 설오유와 고구려 부흥군 2만이 압록강을 건너 요동을 전격 공격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안동도호부 병력이 설오유 부대와 고구려 부흥군과 싸워 병력을 소진하는 사이에 신라는 옛 백제 지역을 공격하여 사실상 접수하여 버렸다. 웅진도독부를 붕괴시킨 것은 나당전쟁사에서 신라의 가장 탁월한 전략이었다.

 

결국 나당전쟁은 당이 토번과 싸우는 틈을 노려 신라가 당에 맞섰던 것도 아니었고,  당이 토번전선으로 벙력을 빼서 나당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토번이라는 변수가 있긴 하였지만 신라의 자주성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다. 당이 토번과의 전쟁에서 열세를 면하지 못했던 점도 신라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기 때문이었다.

 

나당 전쟁의 실상을 검토한 끝에 결론을 도출한 이 연구서는 나당 전쟁의 해석을 두고 벌어진 국내외 이견을 좁히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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