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댓글을 달았었는데 왜곡이라기 보다는 영화를 찍기 위해 만든 의도적 오류라고 쓰는 쪽이 더 적절할 것 같네요. 사실 그 오류가 잔뜩 끼어 있어서 거의 역사를 토대로한 소설 수준이 되긴 했는데... -_-;
일단 감독 리들리 스콧 옹이 돈독이 좀 오르셨는지 극장판과 감독판을 따로 내놓는 삽질을 하시면서 좀 망작이 된 부분이 있습니다. 제대로 보려면 감독판을 보는게 더 낫다고 합니다. 근데 전 아직 감독판을 못 봤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예루살렘 왕국의 인물들을 대충 정리해보자면...
올랜도 블룸이 연기한 이블랭의 영주 발리앙.
작중 메인 히로인인 예루살렘의 시빌라 여왕.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 가면 쓴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4세.
후반부 찌질이 예루살렘 국왕 기 드 뤼지냥.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작중 통칭 타이베리아스. 트리폴리 백작, 티베리아스의 영주 레몽 3세.
살 좀 찌고 거만한 르노 드 샤티용(레이날드, 레지날드)
실제 역사에서는 기와 발리앙의 포지션이 서로 바뀌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발리앙은 십자군 이민 1세대 이블랭의 영주 바리장의 막내아들이고 단순히 유럽에서 머물다가 건너온 인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 사후 형 람라의 영주 보두앵의 봉신이 되는 형태로 이블랭 영지를 계승합니다.
반면에 기는 프랑스 출신이고 소싯적 망나니 기질이 좀 있었던 모양인데 잉글랜드의 귀족 솔즈베리 백작을 살해하는 대형 사고를 터뜨리고 추방당하는 바람에 형 아모리가 있던 예루살렘으로 건너 온 인물입니다.
그리고 발리앙이 1140년대 초반 출신이고, 기가 1159년 출신입니다. 그러니깐 기가 태어났을 때 발리앙은 성인식을 치를 나이였고, 기가 아직 어린아이일 때 이미 영지를 물려받은 인물입니다. 뭔가 영화에서는 비주얼도 그렇고 서로 뒤바뀐 느낌이 강하죠.
시빌라의 경우에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의 골X년 취급. 영화에서는 발리앙에게 연정을 품은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역사적으로 시빌라가 사랑했던 인물은 기. 기와 시빌라가 결혼하게 된 것은 보두앵 4세의 주선이었습니다. 당시 나병환자였던 보두앵 4세로 인해서 티베리아스와 에데사 백작 라인이 강성해서 왕권을 위협할 정도였는데 여기에 맞불을 놓고자 선택한 것이 기와 시빌라의 혼인입니다. 덕분에 기는 야파와 아스칼론의 백작 작위를 받고, 섭정까지 오르죠.
다만 기와 르노가 합작으로 살라흐 앗 딘과 맺은 휴전협정을 박살내는 바람에 보두앵 4세의 진노를 사게 됐고 결국 섭정직에서 쫓겨납니다. 차기 왕도 보두앵 4세의 조카인 몽페라토의 보두앵(보두앵 5세)가 지명되어 공동왕까지 됩니다. 보두앵 4세가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아예 시빌라와의 파혼까지 준비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1185년 보두앵 4세가 서거하는 바람에 파혼은 무산.
영화에서 발리앙의 경우 권력과는 크게 무관한 것처럼 나오긴 하는데 티베리아스와 의견을 같이 하는 세력이었고, 예루살렘 왕국에서 이블랭 가의 형제들은 10년 넘게 봉사한 인물들이고, 크고작은 군공 등 짬밥이 있기 때문에 마냥 듣보잡 클래스는 아닙니다. 실제 보두앵 4세는 보두앵 5세를 공동왕으로 올리면서 보두앵과 발리앙 형제를 내세워 기를 견제하려 했습니다.
일단 보두앵 5세의 경우 어린아이였는데 공교롭게도 1년도 안되서 역시 서거하는 사태가 터집니다. 이로 인해 왕권다툼이 벌어집니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 통째로 삭제. 감독판에선 보두앵 5세가 언급되긴 한다는데 일단 정확히 나오는 지는 모르겠군요.
당시 유력한 왕위 계승자는 보두앵 4세의 누이 시빌라였습니다. 하지만 시빌라가 즉위하면 기가 역시 부군 자격으로 공동왕이 될 것이고 티베리아스-발리앙 라인 입장에서 보면 이게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발리앙의 양녀 이사벨라를 왕위 후보로 내놓습니다. 갑자기 뜬금없는 인물이 나왔다고 하실 수 있는데 영화에서 거의 언급 안되는데 우리의 꽃미남 발리앙은 유부남이었습니다. 게다가 부인이 마리아 콤네나였는데 누군고 하면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마누엘 1세의 조카입니다.
하지만 이사벨라의 남편이 기를 지지하고 있었고 충성서약까지 하는 바람에 티베리아스-발리앙 라인이 단체로 빅엿을 먹는 사태가 터집니다. 결국 제후들도 타협해서 시빌라에게 기와 파혼을 하면 왕위계승을 인정하겠다고 한 걸음 물러섭니다. 시빌라도 이 조건에 순순히 수락하여 왕위를 계승하게 되는데 여왕이 되자마자 한 일이 기를 다시 남편으로 지명하여 공동왕으로 앉히는 일입니다. 결국 티베리아스-발리앙 라인은 두 번 연속 빅엿을 먹게 됩니다.
이후 르노가 무슬림 상단을 계속 털어먹으면서 살라흐 앗 딘을 계속 자극했고 혈족이 살해당하자 결국 폭발하여 대립 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티베리아스와 발리앙이 나서서 어떻게든 중재를 해보려고 노력했는데 무산되고 결국 양쪽은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됐는데 뭐 영화에도 나오는 부분입니다만 하틴 전투에서 개박살나고 기와 르노, 성당기사단 단장 리드포르의 제라르와 같은 고위급 지휘관들이 줄줄이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당시 발리앙은 티베리아스, 에데사 백작 조슬랭 3세와 후미에 있었는데 패색이 짙어지자 잔존병력을 수습해서 각자의 영지로 철수했습니다.
원래 발리앙이 예루살렘으로 간 것은 자신의 가족들을 더 안전한 트리폴리로 철수시키기 위함이었고, 미리 살라흐 앗 딘에게 양해를 구한 일이었습니다. 그 때 조건이 예루살렘에 들어가 가족만 데리고 떠난다였는데 주교 에라클리우스와 주민들이 애걸하는 바람에 결국 남아서 방어를 지휘할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서약을 어긴 셈이었는데 관대하신 살라흐 앗 딘은 발리앙의 가족들이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을 허락해주고 안전까지 보장해줬습니다.
이 때 방어군을 지휘할 인물이 부족하자 적당한 인물 60명을 뽑아서 기사에 서임했습니다. 영화에서도 나오는 장면인데 이건 요즘 식으로 말하면 병력을 지휘할 장교가 부족하니 적당한 인물 뽑아서 전시특진시킨 겁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닙니다.
어쨌든 영화에서처럼 공성전이 전개되고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진 상황에서 발리앙과 기사들의 분전으로 격퇴시켰지만 당시 유럽과 중동 세계를 기준으로 성벽이 무너졌으면 함락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는 항복이고 협정이고 받아주지 않는 관례가 있었고, 살라흐 앗 딘도 뭔가 받아줄 의향은 없었습니다. 근데 발리앙이 나와서 공갈협박을 하면서 협정 성사. 영화에서는 제법 순화된 형태로 보여줬단 말이 있습니다. 당시 살라흐 앗 딘이 내세운 조건은 30,000 베잔트의 금액으로 기독교도 7천명의 안전 보장, 그 외의 사람들은 50일 이내에 상응하는 몸값 지불이었습니다. 거저 보내주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몸값 못내서 노예가 될 뻔 한 사람들을 살라흐 앗 딘이 구제해줬기 때문에 거의 거저가 됐긴 했습니다만...
영화에서는 예루살렘 왕국도 망했고, 발리앙도 평범한 대장장이로 여생을 보낸 것처럼 묘사되는데 실제 팔레스타인 해안가에는 아직 십자군 제후들의 영지가 제법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온 3차 십자군 덕분에 아크레를 탈환하여 임시수도로 삼아 예루살렘 왕국은 계속 명맥을 이어나갔습니다. 시빌라도 계속 여왕직을 유지하고 있었고, 나중에 포로로 잡힌 기가 송환된 이후로도 계속 공동왕으로 있었습니다.
발리앙 역시 계속 전선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3차 십자군 원정에 고문자격으로 계속 참여하고 있었고, 나중에 리처드 1세의 사절 자격으로 살라흐 앗 딘과의 람라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대체적으로 인물 묘사는 잘 되어 있긴 한데 연애관계나 관련 시나리오에는 많은 오류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