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그시절에 비해 많이 발전한 폼생폼사 현재의 이탈리아군 사진부터.. 아직도 전투용 식수를 파스타 데치는데 쓰고 있을까요?
문명4
1차대전 전 이탈리아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를 침략. 6천명의 병력이 독가스탄과 기관총까지 들고 침공했으나 창과 활로 무장한 원주민 3천명에게 대패..
- 1차대전
독일/오스트리아 연합군과 이탈리아 군이 격전(?)을 벌임. 독일군 피해 사상자 2만 3천명 이탈리아군 피해 사상자 3만명, 포로 29만 3천명, 탈영병 30만명??!?!?
- 선전포고
2 차대전 당시 이탈리아 지도자 무솔리니는 히틀러를 질투해서-_-; 아무 생각없이 즉흥적으로 연합국에 선전포고. 덕분에 전세계에 있던 이탈리아 선박이 모조리 연합국에 나포당함.. 그리고 즉흥적으로 선전포고 했기때문에 선전포고 후 10일간 아무것도 안함..
- 프랑스
독 일의 프랑스 침공시 이탈리아도 당당하게 프랑스로 군을 진격시킴. 하지만 국경을 막은 프랑스 국경수비대에게 전병력이 대패하고 오히려 프랑스 국경수비대가 이탈리아 영토로 침공하는 상황이 됨-_-; 다행히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해서 프랑스 국경수비대에게 이탈리아 영토가 점령당하지는 않음..
- 인해전술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이탈리아군 25만명과 영국군 3만 5천명이 전투. 이탈리아군 대패. 포로만 20만명-_-;
- 등반가
케 냐산은 아프리카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으로 2차 세계 대전 도중 이탈리아 병사 세명이 정상 (4985 m)에 도전해서 첫등정에 성공했다. 그들은 영국군에게 잡혀 있던 포로들로 포로 수용소에서 매일 그 산을 보는 중, 한번 올라보고 싶었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 루트를 검토하면서 반년 동안 식료품을 모으고 등산 도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탈주, 80Km 거리를 걸어 마침내 등정 성공을 이뤄냈다. 이후 이들은 수용소로 당당하게 복귀했다. 영국군은 이들의 기행이 너무 기가 막혀서 단지 몇주 동안의 독방형만을 내렸다고.
- 참호속에서의 이탈리아군.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의 롬멜 원수가 이탈리아군의 참호를 방문했다. 하지만.....그 때!! 영국군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이탈리아군의 병사와 장교는 모두「오 성모 마리아님!」이라고 외치며 지면에 엎드렸다. 이 광경을 지켜본 롬멜 원수는 이탈리아군 장교에게 이렇게 말했다.
「......반격은 안할꺼냐??? 」
- 이탈리아군 포로의 취급
북 아프리카 전선에서 영국군 장교에게 무장한 이탈리아군의 중대가 항복하기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리품을 수집하기 바쁜 영국장교는 그들을 무시한채「시끄럽다!, 저쪽으로 꺼져!」라고 이탈리아 병사의 총을 빼앗아 던지면서 고함쳤다. 이탈리아군의 무장중대는 어쩔 수 없이 포로로 잡아주는 영국군을 찾기 위해 다시 총을 주워 또 터벅터벅 걸어갔다.
- 고문을 받은 이탈리아군
2 차 대전 중, 유고 유격대의 포로가 된 독일군은 끝까지 완고하게 부대의 정보를 일체 발설하지 않았고 고문에도 굴하는 일없이 꼿꼿해 세르비아인의 분노를 샀지만 이탈리아군은 곧바로 울며 아는걸 전부말하며 용서를 빌었으므로 고문을 안당했다고..
- 우리가 졸리면 저쪽도 졸린다.
이탈리아군은 밤이 되면 「우리가 졸리면 상대방도 졸리다. 그러니까 공격해 오지 않을 것이다」 라며 경계도 세우지 않고 취침했다. 그리고 부대 전체가 포로로 잡혔다..
- 브라이언 킴
이탈리아군의 병사가 한밤중에 눈을 떴는데 소대장이 어디론가 나가려는 중이었다. 병사는 소대장에게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그러자 소대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 나는 국가를 위해서는 목숨을 걸지 않는다. 나는 노예가 아니기 때문에!」
짐을 싸면서 그 대장은 매력적인 미소를 보이며.......
「 내가 목숨을 걸 때는 반한 여자를 지킬때 뿐이다!」......라고 웃는 얼굴로 상쾌하게 말하며 전선에서 이탈해갔다. 그러자 병사도.....
「 소대장님! 기다려 주십시오!」......뒤돌아본 소대장에게 부하는 이렇게 말했다.
「 저도 함께 갑니다!」라고. 이렇게 아침이 되어 다른 소대원이 눈을 뜨면 뜰수록 소대의 수는 줄어들고 있었다. 하루하루 지남에 따라 한 명 줄고 두 명 줄고.. 결국 영국군과 싸우기 전에 그 소대는 사라졌다.
- 영국해군 무장 어선과의 1:1 대결
잠 수함「갈릴레이(Galilei)」, 이탈리아의 위대한 과학자 이름을 붙인 군함이다. 하지만 이 군함은 영국해군의 무장 상선도아닌 트롤어선 개조 무장 어선과의 1:1 승부에서 패배.( ASW trawler - HMS Moonstone )게다가 무려 포획되어 버렸다. 어선주제에 정면으로 싸움을 걸어 변변한 조준기도 없는데 차례차례 명중탄을 퍼붓고 승리한 로열 네이비도 굉장하지만 이탈리아 해군은 사관들이 다쳤다고 시원시럽게 백기를 걸고 항복해버렸다.
- 전쟁 준비보다 외화
돈벌이를 위해 자국 공군에도 배치가 끝나지 않은 기체를 수출하고 있었다.
-> 이탈리아 공군 전투기 피아트 G50은 40년 6월에야 첫 전투비행단이 창설되었다. 하지만 피아트사는 자국 공군에도 배치가 아직 끝나지 않았던 41년 1월 최신 개량형인 G50bis를 핀란드공군에 판매했다.
- 이탈리아군이 미군의 공세를 막았다?
2 차대전기 미군이 이탈리아 본토에 진출, 이탈리아군과 대치하고 있던 시기의 이야기다. 그러나 패전이 기정사실화된 이탈리아군에 전의는 없었고 미군도 그걸 눈치채곤 공격을 어영부영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군의 관측기가 지나갔을 때는 제대로 싸우고 있는것을 가장한 이탈리아군이었다.
왜냐? 독일군이 오면 전쟁이 더길어지므로 미군에 발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 미군도 의지없는 눈가림 반격, 그 전투을 독일군 관측기는 이렇게 보고 있었다.
「 이탈리아군이 미군의 공세를 막고 있다! 」하지만 그 후에 이탈리아군의 바램과는 달리 독일군이 구원으로 나타나 그 전투는 진짜 격전이 되어버렸다.
- 신의 가호
이 탈리아군은 화약의 경우 적절한 보관 장소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 교회에 즐겨 보관했다. 교회라면 적군도 폭격까지는 하지 않을것이고 또한 신의 가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첨탑에 보기 좋게 낙뢰. 마을은 대폭발로 순식간에 1/5이 날아갔다고 한다.
- 나폴리의 도둑은 세계제일
2차대전기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는 군함이 도둑맞은 사례가 있었고 중동전쟁의 한창때는 전차까지 도둑맞았다고 한다.
- 군용기에 관한 일화
이 탈리아 공군은 2차대전기때까지도 전기간에 있어 계기 비행의 훈련을 전혀 하지 않았다. 어느 전투기의 초기형은 밀폐식 방풍이었지만 파일럿들로부터「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라는 불평을 듣자 양산형은 창문을 떼버렸다-ㅅ-.. 그 결과 속도가 떨어져서 격추..-_-;
- 머리회전이 빠른 이탈리아군
북 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이 영국의 패잔병 사냥을 하고 있었지만 영국군은 원주민 취락에 교묘하게 숨어들어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다. 독일군도 원주민 취락을 샅샅히 수색했지만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탈리아군은 현지의 세력가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 영국군 한명당 설탕 5포대, 밀가루 5포대」
다음날, 영국군은 전원 잡혔음.
- 와인
대전기 이탈리아군에서 보급한 와인의 표지엔「전투중 단숨에 들이키면 만취되어 전투도 두렵지 않다!」라고 써 있었다. 또 물자 비축은 탄약보다 와인이 많았다.
- 포로가 된 이탈리아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독일, 일본, 이탈리아의 3개국군의 포로가 수용된 수용소가 있었다.
독일군 포로들은 집단을 이뤄 땅굴을 파 수용소에서 탈주하려고 시도했고
일본군 포로들은 집단으로 자결해버렸다.
하 지만 이탈리아군 포로는 수용소의 문이 필요없을 정도로 점잖았고 자기들끼리 요리대회도 열어서 즐거운 수용소 생활을 즐겼다-_- 그리고 그와중에 동네 아가씨를 꼬셔서 결혼해서 해방시켜줘도 그 동네 눌러사는 이탈리아인들이 많았다고-_-..
- 사막에서 구원 요청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영국군과 싸울 때, 이탈리아군 부대로부터 구원 요청이 들어와 독일군 부대는 전력을 다해 그들을 구원하러 향했다.
이유는 이탈리아군이 가진 물을 전부 파스타 데치는데 써버려서 마실물이 없었기때문.. 결국 독일군이 구해주기 전에 목이 말라서 영국군에게 전원항복-_-
- 포로대우
말타 공방전시 방공전에서 격추된 영국군 파일럿이 해상에서 이탈리아 해군에 포로로 잡혀 이탈리아 본토로 이송 되었다.
밤 이되고....... 감옥에 들어온 그에게 저녁 식사가 들어왔는데 이것은 파스타에 고기 요리 식후에는 과일에 와인까지 한잔 따라오는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호화로운 식사.장교라곤 해도 말타에서 보급이 끊겨 매일 형편없는 식사만을 해왔던 RAF 파일럿은 생각했다.
「이것이 최후의 만찬이라는 것인가.....」
내일은 총살된다....... 라고 생각하고 맛있게 음식을 비우고 맞이한 이튿날 아침 그가 수감된 감옥 문앞에 고위 장교가 당번병을 동반하고 나타났다.
이 장교가 총살을 집행하는 녀석인가(?) 라고 생각한 영국군 파일럿 앞에 그 장교가 무슨이야기를 시작했다.
일행인 당번병이 통역했다.
「 어제는 사소한 행정착오로 장교인 귀관에게 일반 병사용 식사를 공급해버렸다. 나의 명예를 걸고 말하건데 우리는 제네바 협정을 준수할 것이며........(이하중략)..........하여튼 포로를 학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나의 얼굴을 봐 어제의 실례를 용서해주지 않겠는가?」
반박글..
1. 1차 에티오피아 - 이탈리아 전쟁 에서의 아도와 전투
원글 - sescia님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escia&logNo=70116812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