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나는 여자 고등학교를 다녔었다.
우리 학교는 동성애까지는 아니지만 여자아이들끼리 설레하고 동경하는 분위기가 상당히 만연한 학교였다.
그리고 나는 상당히 후배에게 인기가 있었다.
좋아한다고 고백받는 일도 다반사였고, 좋아한다며 따라다니는 후배들은 대부분 상당히 예뻤기 때문에 그 시기의 나는 상당히 우쭐했었다.
하지만 내 팬 중에서 상당히 거북한 S라는 후배가 한명 있었다.
전체적으로 음침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기 힘든 아이였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S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가끔 학교 안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녀는 그저 말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내가 말을 걸면 곧바로 달아났다.
알려준 적도 없는데 우리 집 가족 구성원을 알고있었고 남들에게 자랑스레 그것을 떠벌리고다녔다.
S는 나와 친한 아이들에게는 노골적으로 차가운 태도를 취했다.
끝내는 내 사물함에서 체육복을 멋대로 꺼내서 입기도 했었다.
점점 스토커 같은 행동양식을 밟아가고 있었다.
발렌타인 데이에 그런 S에게 쵸콜렛을 받았다.
그녀는 갑자기 교실로 찾아와 고개를 숙인채로 작은 봉투를 나에게 건넸다.
솔직히 전혀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봉투 안에는 작은 상자 안에 수제 쵸콜렛이 들어있었다.
일단 받기는 했지만 솔직하니 정말 기쁘지가 않았다.
"야 너 어쩌냐. 진짜 소름끼친다."
친구가 웃으며 나를 놀렸다.
상자를 열어보니 묘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쵸콜렛 냄새라기에는 조금 이상하지 않냐?"
달콤한 쵸콜렛 냄새와 함께 약간의 비린함이 약하지만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 냄새가 아무래도 신경이쓰였던 나는 장난삼아 친구들과 그 쵸콜렛을 조리실에서 녹여보기로 했다.
그냥 불길한 느낌이 들었던 시점에서 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쵸콜렛이 녹더니 안에서 나왔다.
머리카락이.
한가닥 두가닥이 아니었다.
실수로 들어간 양이 아니었다.
작은 다발수준의 머리카락.
그리고 그 머리카락 다발을 둘러싼 검붉고 걸쭉한 무언가.
비릿한 냄새를 풍기던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피였다.
그저 재미삼아 녹였을 뿐이었던 나와 친구들은 그대로 굳고말았다.
아무런 말도 할수가 없었다.
피 아니야?
그 한마디조차 입 밖에 낼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겁에 질려있었다.
친구가 이 비릿한 냄새를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난 분명 이 쵸콜렛을 먹었겠지.
이 일이 있은 후로 지금까지 나는 쵸콜렛을 입에도 대지 못한다.
2월 14일이 다가올때마다 떠오르는 나만의 트라우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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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비비스케(http://vivian9128.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