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 강원도 속초의 한 공동묘지 근처에서 암매장된 시체가
경찰에 발견됐다. 175㎝ 정도의 키와 40대 초반의 나이에 ‘휠라’
상표가 새겨진 상의(上衣)를 입고 있었다.
경찰이 이곳을 수색하게 된 것은 20대 남자 3명의 ‘자백’ 때문이었다.
시체가 발견되기 10일쯤 전 이들은 강도상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문제는 3명 중 한 명인 A(22)씨의 진술이었다. 그는 강도상해
조사를 끝내고 다른 사건에 대해 추궁을 받던 중 경찰이 “공범인
B(25)씨가 ‘당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자백했다”고 유도심문을 하자
엉겁결에 “내가 아니라 B가 죽였다”고 대답했다. 이때부터 이들은
강도살인 혐의를 받게 됐다. 범행에 가담했다는 또 다른 공범 C(28)씨도
소환됐다
이후 A씨 등은 살해 암매장 장소, 범행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기
시작했고, 경찰은 이들이 자백한 시체 암매장 장소인 문제의 공동묘지
근처를 수색해 자루에 담겨 암매장된, 신원을 알 수 없는 40대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 것이다. ‘휠라’ 상표가 새겨진 상의 등 시체의 겉모습도
이들의 자백 내용과 일치했다. 이들의 자백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였다.
A씨 등은 이후 구체적인 범행일시·장소·과정 등에 대해 서로 다른
진술을 번복했고, 범행 시점에 대해서도 ‘2000년 봄이었다’, ‘2001년
7월이었다’며 서로 엇갈렸지만 결국 춘천지검 속초지청에 의해
살인혐의로 구속기소됐다. ‘2001년 7월 속초시의 모 콘도에 침입,
객실에 있던 한 남성의 금품을 뺏다 반항하던 남자를 5층 옥상으로
끌고가 칼로 찔러 옥상에서 떨어뜨려 숨지게 한 뒤 암매장한 혐의’였다.
이들은 1심에서 “경찰의 강요에 못 이겨 허위로 자백했다”며 줄곧
범행을 부인했지만 작년 4월 춘천지법 속초지원은 발견된 시체 등을
근거로 B씨에게 무기징역, A·C씨에게 징역 20년과 7년을 각각 선고했다.
그러나 사건은 2심 재판이 시작되면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전봉진·全峯進)는 ‘암매장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시체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한 점, 범행과정·동기가
석연치 않은 점’ 등의 의문을 제기하며 처음부터 다시 심리를 했다.
결국 재판부는 29일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이 발생한 콘도에서
피해자의 유류품·투숙 기록이 없는 점 사건이 한여름에 발생했는데도
발견된 시체에서 겨울 점퍼가 발견된 점 5층 옥상에서 떨어진 시체에
골절 흔적이 없는 점 단순히 유흥비 마련을 위해 사람들이 많은 콘도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 석연치 않다는 점 등이 이유였다.
그렇다면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40대 남성을 죽인 진범은 과연 누구일까?
사건은 미스터리 속에 대법원으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