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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6
게시물ID : panic_469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oima
추천 : 7
조회수 : 1816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05/04 17:20:30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prologue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1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2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3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4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5

 

 

 

#6

 

 

“매운탕하고 회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횟집 아저씨가 커다란 쟁반위에 있는 음식들을 차례대로 식탁에 올려놓았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매운탕은 한 눈에 봐도 먹음직스러웠다.

 

“자, 먹어.”

 

나는 유림에게 먼저 영광의 한 숟가락을 권했다.

 

하지만 유림은 숟가락을 들지 않고 나에게 말했다.

 

“아저씨 참 대담하네요. 아니면 멍청하던가.”

 

“뭐?”

 

“제가 만약 여기서 납치당했다고 소리라도 지르면 어떡하실 거예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그렇게 되면 뭐 어쩔 수 없지. 내 책임이니깐.”

 

그 순간 유림은 장난 끼 가득한 얼굴로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저기요! 저 이 아저씨한테 납치..”

 

순간 당황한 나는 유림의 입을 틀어막았다.

 

“뭐하는 거야!”

 

수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재빨리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각자 할 일 하시면 됩니다.”

 

잠시 후 시선이 흩어지자 나는 유림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다신 그러지마!’

 

유림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유림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천천히 땠다.

 

“아저씨 화났어요?”

 

유림의 돌발 행동에 적잖이 놀란 내가 묵묵히 밥만 먹고 있자 유림이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런 거 아니니깐 빨리 먹기나 해.”

 

그렇게 침묵의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그래도 오늘 재밌었어요. 그쵸?”

 

나는 말없이 옆에 있는 유림을 힐끗 보고는 시동을 걸었다.

 

헤드라이트가 밖을 비추었다.

 

“그러게, 다시는 이런 짓 심장 떨려서 못하겠다.”

 

“뭐가요?”


“널 이렇게 대리고 나오는 거.”

 

그 때 헤드라이트 불 빛 사이로 빗방울이 하나 둘 씩 떨어졌다.

 

그리고 그 빗방울은 곧이어 더 많은 빗방울을 불러 일으켰다.

 

“소나긴가..”

 

빗방울이 자동차 천장을 시끄럽게 두드렸다.

 

그 때 유림의 입에서 뜻 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고마워요..”

 

“...뭐가?”

 

“아저씨 덕분에 어쩌면 평생 느껴보지 못 할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요.”

 

“...”

 

하긴.. 그렇겠지. 납치라는 흔하지 않은 경험을 당한 사람이 몇 이나 되겠는가.

 

유림은 어쩌다 그 흔하지 않은 사람 중에 하나가 되어있었다.

 

단지 나 때문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를 쉽게 놓아줄 수는 없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 하니깐.

 

나는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고 운전대를 쥐었다.

 

“재밌었다니 다행이네.”

 

“다음에 또 올까요?”

 

“글쎄..”

 

 

 

 

 

 

 

붉은 기운이 감도는 방 이었다.

 

“아빠 잘못했어요. 제가 안 그럴게요. 한번만 봐 주세요.”

 

‘누구지?’

 

처음 보는 여자애가 처절하게 울먹이며 어떤 남자에게 무릎 꿇고 빌고 있었다.

 

남자는 더욱 화를 내며 분이 풀리지 않는지 자신의 혁대를 풀어 여자애를 향해 있는 힘껏 내려쳤다.

 

“안 돼요 아빠 제발요! 악!”

 

여자애는 누군가를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지켜내려고 했다.

 

‘짝-!’

 

방안에 소름끼치는 채찍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자애가 비명을 질렀다.

 

“아빠 왜 이러 세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네? 제발요..”

 

여자애가 숨넘어갈 듯 울면서 남자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애가 괴로워하든 상관하지 않고 더 세게 내려쳤다.

 

“니 애미를 탓해 이 더러운 년아 이게 다 니년 탓이야! 그러게 왜 태어나서 지랄이야! 어!”

 

‘짝-!’

 

나는 그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남자를 말려야만 했다.

 

‘그만 둬!’

 

‘짝-!’

 

‘그만 두라고!!’

 

내가 남자에게 달려들자 남자는 나를 돌아보았다.

 

 

 

 

 

 

 

‘쿵’

 

“으..”

 

눈을 떠보니 나는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있었다.

 

“꿈이었나..”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 특히 채찍소리는 아직까지 귓가에 맴도는 듯 했다.

 

뒤숭숭한 꿈자리 탓인지 나는 왠지 모르게 유림이 걱정되었다.

 

지하실로 내려 가보니 유림은 침대 위에서 단잠에 빠져 있었다.

 

정말 이상한 꿈이었다. 


나는 유림을 한참 보고 있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 유리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거실 벽에 걸려있는 아날로그 시계는 정확히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시였다.

 

다시 침대에 누운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검정으로 물들어있던 창문이 점점 푸른빛으로 가고 아침을 알리는 새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날이 밝았다.

 

나는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 서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잠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막 잠이 든 순간 리모컨 벨소리가 들렸다.

 

‘삐-’

 

“으음..”

 

내가 피곤함에 뒤척임 일어나지 않자 날 깨우려는지 리모컨은 한번 더 소리를 냈다.

 

‘삐-’

 

나는 말라붙은 눈을 끔벅이며 마지못해 일어났다. 그리고 지하실로 내려가자 유림이 나를 반겼다.

 

“아저씨.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미안.”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유림은 입가에 까지 내려온 내 다크서클을 보며 말했다.

 

나는 눈 밑을 엄지와 중지로 마사지하며 피곤함을 감추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차마 꿈에서 어떤 여자애가 맞고 있었다 라는 말은 꺼낼 수 없었다.

 

너무 섬뜩했기 때문이다.

 

“배고프니?”

 

“아니요.”

 

“그럼?”

 

“그냥요.”

 

“...”

 

그냥이라니.. 고작 그런 이유로 내가 가까스로 되찾은 잠을 깨웠단 말인가.

 

내가 다시 위로 올라가려고 하자 유림이 나를 불러 세웠다.

 

“저기.. 아저씨.”

 

“왜?”

 

“아직까지 화난 거 아니죠?”

 

“내가?”

 

“그러니까 어제..”

 

아무래도 유림은 어제 횟집에서의 일이 내심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그런 거 아니니깐 신경 쓰지 마. 난 위에서 자고 있을 테니깐 배고프면 불러.”

 

내가 다시 방으로 돌아가 잠에 곯아떨어지고 몇 시간 후.

 

개운하게 일어난 나는 문득 자명종 시계를 보았다.

 

‘오후 1시 32분.’

 

“벌써 이렇게 됬나..”

 

그 때 유림이 생각났다.

 

분명 아침도 먹지 않고 점심도 굶고 있을 터였다.

 

나는 늦었지만 급히 아침 겸 점심식사를 만들어 지하실로 내려갔다.

 

“유림?”

 

유림은 책상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배고프면 부르라고 했는데 왜 안 불렀어?”

 

“아저씨 피곤 할까봐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밥은 먹어야지..”

 

나는 미안한 마음에 차마 끝까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래선 마치 일부러 밥을 굶긴 흉악 범죄자와 다를 바 없었다.

 

유림이 수갑을 차려고 하자 난 그녀를 말렸다.

 

“됐어, 그럴 필요 없어.”

 

그녀가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굳이 수갑을 채울 필요는 없었다.

 

“들어간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런 거 이젠 묻지 말고. 대답하기 귀찮으니깐.”

 

나는 철창문을 열고 들어가 테이블에 식사를 올려놓고 유림의 옆으로 갔다.

 

"뭐해? 아까부터 열심히 던데.."

 

“그림 그리고 있었어요.”

 

여자의 초상화였다. 망설임 없는 드로잉이며 과감한 손놀림이 꾀 많이 그려본 솜씨였다.

 

“와.. 잘 그리네.”

 

“그림 그리는 게 취미거든요.”

 

유림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야?”

 

유림은 뭔가 말하려고 입모양을 만들다가 재빨리 내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바꿨다.

 

“친구. 유일한 친구에요.”

 

“유일한 친구?”

 

“그러니깐.. 왕따 였어요 저.”

 

“아.. 미안.”

 

나는 왠지 유림의 아픈 과거를 들춘 것 만 같아 급히 사과를 했다.

 

“뭐가 미안해요. 아저씨가 절 왕따 시킨 것도 아닌데.”

 

“그래도..”

 

유림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난 이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가렵지도 않은 머리를

쉴 세 없이 긁어댔다.

 

제발 유림이 무슨 말이라도 뱉었으면 하던 참에 다행히 유림이 입을 열었다.

 

“저기.. 아저씨. 저 그것 좀 사주 세요.”

 

“응?”

 

“그러니깐.. 그거요..”

 

“그거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자 유림은 무언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말하기를 주저했다.

 

“아 참.. 그러니깐.. 여자가 주기적으로 하는 거 있잖아요.”

 

여자가 주기적으로 하는 거라면..

 

“화장?”

 

내가 답을 맞추지 못하자 유림은 답답했는지 화를 내며 말했다.

 

“남자가 그렇게 센스가 없어서 어디 여자 친구라도 사귀겠어요? 그러니까! 새..”

 

“새..?”

 

“새..”

 

“...?”

 

“생!!”

 

 

 

 

 

 

 

내가 이런 걸 사러 편의점에 오게 될 줄이야..

 

하지만 사육을 위해서라면 이런 위험쯤이야 기꺼히 감수해야 한다는 것쯤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 삼으며 깊은 심호흡 후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어서 오세요."

 

편의점 알바녀가 생기 없는 눈으로 나에게 인사를 건 냈다.

 

나는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오로지 목표 앞으로만 삐걱대며 걸어갔다.

 

그리고 내 앞에 보이는 것.

 

파란색 포장지가 인상 깊은 생리대였다.

 

“크흠..”

 

나는 괜스레 헛깃침을 하고 알바녀의 눈치를 살폈다.

 

이것을 잡는순간 알바녀 에게 혹시나 변태남 으로 찍히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누군가 무상무념의 경지에 오르면 못할 것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시험해 보기로 하고 머릿속을 백지화 시킨 뒤 오로지 생리대에만 내 몸의 모든 감각을 집중시

켰다.

 

그러다보니 그 작은 생리대가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느껴졌다.

 

결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산위에 바위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과감히 생리대를 움켜쥐었다.

 

알바녀는 다행히 아직까진 나에게 관심이 없는 듯 계산대에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생리대만 사면 이상하게 볼 수 있으니깐 근처에 적당한 것을 보지도 않고 아무거나 잽싸게 집어서 계산대 앞

으로 갔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내가 계산대에 올려 놓은건 생리대와 여성용 스타킹 이었다.

 

알바녀가 이걸 보는 순간 분명 날 패티쉬 매니아 같은 음지의 인간으로 볼게 뻔했다.

 

아무 생각없이 잡히는 대로 가져온 결과가 이렇게 큰 비극으로 다가올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이젠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올려놓은 순간 허둥대고 다시 뺀다면 그것은 알바녀의 의심만 더 증폭시킬 뿐 이었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이때만큼은 하늘에 빌고 싶었다.

 

‘제발 모른 척 지나가기를!’

 

알바녀는 스타킹과 생리대의 바코드를 찍으며 나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먼 산만 필사적으로 바라보았다.

 

“4천 5백원 입니다.”

 

알바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먼 산 모드를 풀고 바로 현금 1만원을 건 냈다.

 

알바녀는 돈을 받아들고 계산기를 열었다.

 

“여자 친구 심부름하시나 봐요.”

 

젠장.. 알바녀가 말을 걸었다. 이건 날 의심 하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최대한 당황하지 않고 알바녀의 말을 받아쳤다.

 

“예? 아, 예 맞아요. 여자 친구. 여자 친구 심부름. 하하. 귀신같이 맞추시네.”

 

“알바 하다보면 그런 사람들 많더라고요.”

 

알바녀가 웃으며 거스름돈을 건 냈다.

 

“5천 5백원 입니다."

 

"하하.. 그런가요.“

 

나는 거스름돈을 받아들자마자 생리대와 스타킹을 품고 부리나케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정말 위험했다. 다행히 별 탈은 없었다. 나는 졸인 가슴을 풀고 기분 좋게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신나게 걷던 중 누군가 나를 불렀다.

 

“어? 혹시 수선 씨 아니에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목소리였다.

 

“어, 이 목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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