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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에 관한 베오베 글을 보고...
게시물ID : history_86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저윤
추천 : 11
조회수 : 49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5/01 08:35:55

도대체 왜 이런 글을 계속 올리는 걸까요?

오늘 오유에 들어왔더니 베오베에 이런 글이 딱~~ 있더군요. 우리나라 국사편찬위원회의 현실...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107828

이 상황을 보고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미 해명이 된 사실이고, 그 해명에 문제제기를 해야지...

왜 앞뒤 싹~~ 자르고 계속 손가락질일까요?

파고배님이 이런 저런 글을 올리셔서 저 베오베 글에도 이런 저런 글을 올리셔서 다행이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잘 모르는 듯 합니다.


저 사건 터지고 인터넷에 국사편찬위원회의 이태진 교수가 '뉴라이트'라는 어이없는 말도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어떻게 지금까지 뉴라이트와 싸워온 분을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건지...

솔직히 이 분이 고종을 근대화 군주로 너무 미화(?)한 측면으로 지적당하는 것은 봤어도, 이건 또 무슨 경우인지...


역게의 고수님들은 다들 아실 것이지만...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국편위 관계자는 아니지만 한번 저 사건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하려고 합니다.

혹시 나중에 누가 또 저런식의 악의적(?) 편집을 해서 글을 올리면 대놓고 손가락질 좀 해 주세요.


1. 국왕 -> 천황 수정권고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가 한국사 영역과 세계사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정 권고가 나간 부분은 세계사 영역의 일본의 근대사 서술입니다. 

근대 이후 일본의 정치 제도에 대한 설명과 이후 제국주의 침략으로 어떻게 변모해가는지에 대한 일본 역사의 특징을 설명하는데, 당연히 일본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천황제'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교과과정 집필기준은 교과부(지금은 교육부)에서 만드는데 그 검정기준에 '천황제'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이 검정기준이 있으니 여기에 맞추세요 라고 권고한 것이구요.


이 검정기준이 사실 말이 많은데... 제가 다음에 말하고자 하는 문제도 대부분 이 검정기준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것은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위)가 만든 사항도 아니고, 교과부에서 만든 것입니다.

국편위에서도 일부 수정해 달라고 요청 중인 사항들이 꽤 있구요...


그래서 수정된 내요은 이렇게 바뀌었네요.

심사본 : 막부 반대 세력은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국왕 중심의 새로운 정부를 수립한 후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였다(메이지 유신, 1868)

수정 후 견본 : 막부 반대 세력은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부를 수립한 후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였다(메이지 유신, 1868).


한 단어만 봐서는 말도 안될 것 같지만... 이 한줄을 보니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되시죠?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천황제를 통해 근대화의 길을 추진하고 이후 이를 중심으로 제국주의 침략의 단계로 넘어갔다는 설명을 하려면... '국왕'이라는 표현이 너무 약하지 않나요??


2. 을사늑약 -> 을사조약

이 부분이 가장 웃긴 부분입니다.

을사늑약이란 용어의 사용을 주장한 사람이 바로 국사편찬위원회의 위원장인 이태진 교수입니다.

그런데도 왜 국편위에서 을사조약을 사용하세요 라고 권고했을까요?

바로 지금 교육부가 제공하는 '편수자료(교과서 용어집에 해당)' 때문입니다.

교과서의 용어 일관성을 위해 이 자료를 따르도록 하기 때문이죠.


심사본과 수정 후 견본을 볼까요?

심사본 :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궁궐을 포위하고 고종 황제와 일부 대신들을 위협하여 제2차 한ㆍ일 협약(을사조약)을 강요하였다(1905). … 그러나 이 협약은 고종의 서명과 위임장, 명칭과 비준서가 없어 절차상의 결함이 많은 데다가 강제로 체결되어 ‘을사늑약’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은 을사늑약에 적극 항거하였다.


수정 후 견본 :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궁궐을 포위하고 고종 황제와 일부 대신들을 위협하여 제2차 한ㆍ일 협약(을사조약)을 강요하였다(1905). … 그러나 이 협약은 고종의 서명과 위임장, 명칭과 비준서가 없어 절차상의 결함이 많은 데다가 강제로 체결되어 ‘을사늑약’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은 을사조약에 적극 항거하였다.

 

편수자료에 근거해서 용어를 통일하도록 권고한 것입니다. 그것도 국편위가 만든 기준도 아니고...

손가락질 하려면 교육부를 손가락질 해야지...

국편위의 문제가 아니지요. (교육부에서 저걸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3.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 일본군 위안부


2곳에서 이 문제가 나타나는데...

하나는 교과서에 '위안부' 소녀상이라고 된 부분을 '일본군 위안부' 평화비로 변경하라는 권고였습니다.

검정심의회가  수정보완 권고 이유를 이렇게 쓰고 있네요.

소녀상 설명판에는 ‘평화비’로 명명됨. 또한 이 소녀상이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진실 규명 뿐 아니라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에 ‘평화비’라는 용어를 추가해주는 것이 적절함. ‘위안부’라는 용어도 ‘일본군 위안부’라는 편수용어 사용


다른 하나는 정말 어이없는 내용인데요... 어떻게 이런 식으로 편집을 해 대는지... 내용을 알고보면 정말...

심사본 :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일본은 진실을 외면 말라

수정 후 견본 :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은 '일본군 위안부'


한 문장으로 보니 문제가 보이십니까? 국편위가 권고한 사항이 오히려 타당하게 보이지 않나요? 어디에 성노예라는 표현을 뺐습니까? 교과서 검정기준에도 맞고, '성노예'라는 표현도 맞는데요.


4. 그림설명에서 김구 선생의 이름을 빼라?

내용을 도대체 보고 하는 말인지...

그 교과서에 수록된 사진은 임시정부 수립기 임정 요인들의 단체 사진입니다.

이 시기 주요 3요인은 이승만(대통령), 이동휘(국무총리), 안창호(내무총장)입니다.

김구 선생은 이 당시에는 주요 인물이 아니었구요.

게다가 이후에 여러차례에 걸쳐 김구 선생의 이름과 사진이 등장합니다.


5. 이한열 열사의 사진 수정보완 권고...

교과서에 게재하려고 한 사진은 이한열 열사가 당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사진을 수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과서가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과서인데, 저 사진은 아무리 사실적인 역사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학생들이 직접 대하기에는 과한 부분이 있습니다.

원래 심사본의 내용을 올리면...



6. 제주 4.3 항쟁이 무장봉기?

원래 심사본에 제주 4.3항쟁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심사본 : 한편, 제주도에서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제주 4ㆍ3 사건).

수정 후 견본 : 한편, 제주도에서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제주 4ㆍ3 사건).


엄밀히 말하면 심사본이 잘못 쓴 것이지요. 그저 무장봉기가 일어난 것만 기술하고 있는데...

그래서 뒤에 글을 더해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것을 설명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설명에서 계속 제주 4.3항쟁을 제주 4.3사건으로 교과서에서 기술한 것도 편수용어 자체가 '제주 4.3사건'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교육부가 수정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네요.


제가 국편위 관계자도 아니고... 역사학도도 아니지만...

이런 선동성 글을 보면 짜증이 납니다.

거기에 우리 오유 분들이 빨려가는 것도... 답답하구요.

도대체 누굴 위해서 저런 글을 계속 올리는 건지... 이해도 안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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