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짧은 인생이지만 스무살 넘게 살아오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참 많은 고민을 하면서 살아 왔던것 같습니다.
그냥 전 지금 여러분께, 왜 사는가?에 대해서 묻고 싶네요.
그저 다양한 사람들의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들으면서 더 많은 방향에서 보고자 함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그저 제 생각을 적어 놓은 것 뿐이니 내키지 않으시면 더블클릭하시고, 왜 사는지! 에 대해 댓글만 작성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참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왜냐면 제겐 삶의 이유을 깨우쳐 줄 수 있는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는 기독교에서 소위 말하는 모태 신앙입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때부터 교회를 다녔다고 해서요. 그래서 기독교적 인식이 저에겐 굉장히 자연스럽고 제 주위는 온통 복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뿐입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그렇기 때문에 왜 사는가?에 대한 문제를 자연스레 신과의 관계를 두고 생각하는 데에 많은 초점을 두고 살아왔답니다.
어릴때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이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같은 말들이야 해왔죠. 물론 어릴때도 사실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왜 알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데 내가 안하면 초치는... 뭐 그런거 ㅋㅋ 의구심이 점점 커지기 사작한 것은 나이가 들면서 말에 힘이 생기고 무시 받지 않기 시작하면서 의문을 여기저기 묻고 다니고 토론하며 다닐 때였습니다.
그때부터 철학에 비추어진 신이란 존재에 관한 책들을 뒤지며 살았습니다. 사실 많은 부분을 알게 된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흥미롭고 해서 주위에 철학과 사람들 하고도 이야기 해보고 여기저기 막 찔러보고 다녔습니다..;; 사실 이건 제 흑역사 일수도..ㅠㅠ(너무 귀찮게 하고 다녀서요...ㅋㅋㅋ)
제 생각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사실 아직까진 왜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 공부들을 통해 얻은 것들이 있다면 길이 보이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대부분 사람들이 말하기를 가톨릭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로부터, 개신교의 철학은 플라톤에서로부터 나왔다고들 말하죠. 그런데 제가 공부했던 바로는 가톨릭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꽃을 피웠을때 그가 정리했던 방법이 아리스토텔레스 적이었으며 그 이전 아우구스티누스가 신플라톤주의를 정리해서 교리를 탄탄히 한것이기 때문에 플라톤 사상에 속한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보고 있습니다. 결국 근본적으로 신플라톤주의가 기독교 교리의 열쇠가 되는 것이겠죠.(실제로 기독교철학 책전반에 걸쳐 이 이원론적 사상이 상당히 많이 언급되더라구요)
신플라톤주의에서 이야기 하듯이 이 세계는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편의상 기독교 식으로 설명하지면 인간의 영혼을 뜻하는 프시케, 예수, 혹은 지성을 뜻하는 누스, 마지막으로 절대자인 1자가 존재한다고 하죠.(아지막 '물질'에 대해선 중요히 다루지 않는 듯 합니다) 신플라톤주의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유출론이라더군요. 1자에서 누스로, 누스에서 프시케로 '유출'되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이로써 세계가 만들어지고 존재하게 된다고 합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방향도 제시를 하는데, 하위 단계에 있는 존재는 상위 단계의 존재로 다시 합일 되고자 하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것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요? 하위의 존재는 상위의 존재보다 열등하지만 결론적으로 '유출' 되었기에 상위의 존재의 속성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우린 모두 1자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겠죠? 그렇다면 그 속성이 다시 합일 되게 하고자하는 속성을 가진 무언가란 얘기가 되는데.. 그 존재가 기독교에서는 '사랑'이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 하면 절대적으로 우리가 정의하기 불리한 그런 존재죠..허허.. 어찌 되었던 기독교는 그 빈자리에 '사랑'이란 존재를 부여함으로써 합일의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완전한 사랑이요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의 목적이 완전한 사랑의 실천이 되는 것이며 1자의 존재는 절대자. 즉, 진리의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의 근본이 되므로 사랑또한 모든것의 근본이며 특징적으로 창조되는 것이 아닌 그 존재 스스로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 되는 거죠. 쉽게말하면 뭐.. '사랑하는 덴 이유가 없다!'를 정당화 했다고 해야하나..
여기서 여러모로 논란이 되고있는 유명한 십계명의 '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라는 구절도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이유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종교라면 다 같은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문제가 남았죠. 우린 이 '사랑'이란 것에 대해 너무 막연하게 알고 있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우리가 감정을 느끼고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어쩌구 해도 사실을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사실 '사랑'이 진리라고 한 시점에서 '사랑'은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의 결론이 존재한다면 사실 그것은 진리가 될 수 없겟죠.. 도가도비상도란 말도 있듯이 말예요. 그래서 제 생각엔 '신을 믿는다.'라는 행위 자체가 이 '사랑'을 알고자 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역시나 그 '사랑'에 대한 무지에 아직도 전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지 못했네요.
사실 더 많이 쓰고 싶은데 너무 길면 지루하고 재미없을까봐 많이 줄였습니다.. 그리고 책읽은지도 오래되서 많이 기억도 가물가물하고..ㅎㅎ 읽어주신 분들 너무나도 감사 드리고 다른 분들의 생각도 듣고 싶네요. 제 생각에서 잘못된 부분도 지적해 주셨으면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