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인 K쨩에게 있었던 일로 상당히 예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날 밤 나는 K쨩네 집에 놀러갔다.
K쨩은 침대 위에 앉아있었고 나는 K쨩을 마주보고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K쨩이 앉아있는 침대 밑의 어두운 부분에서 사람의 코가 보였다.
그리고 그 코는 점점 밝은 곳으로 나오며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힐끔힐끔 그 것을 쳐다보면서 K쨩의 이야기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줬지만 점점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K쨩에게 밥이라도 먹으러 나가자고 졸랐다.
K쨩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데리고 그 방에서 나가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고 싶을 뿐이었다.
이자카야로 가서 나는 K쨩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댄 이유를 설명했다.
침대 밑에 사람의 코가 보였고 점점 그 얼굴이 나오려 했다고.
그저 사람이 밑에 숨어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막상 드러난 그 얼굴의 생김새는 잠들어 있는 듯 눈을 감고 있었지만 K쨩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내 설명을 듣고 K쨩은 집으로 못가겠다며 겁을 먹었다.
우리 집에서 자고가라고 하니 그제서야 K쨩은 조금 안심한 듯이 술을 많이 마셨다.
평소에는 그렇게 술을 마시는 타입이 아니었는데, 공포를 떨쳐내고 싶었던 것 같았다.
K쨩이 괜찮은지 안색을 살펴 적당히 공포가 희석된 시점에 우리는 슬슬 이자카야를 나서기로 했다.
그녀는 집에가기 전에 잠시 화장실에 들리고 싶다고 했다.
술이 취해 얼굴이 새빨개진 K쨩은 무서우니 문 앞에서 기다려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나는 화장실 문 앞에서 K쨩이 나올때 까지 기다렸다.
조금 후 화장실 안에서는 물 내리는 소리가 두번 들리더니, 갑자기 문에 무엇인가가 부딪치는 소리와 커다랗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다.
"K쨩!!!!!"
나는 걱정이 되어 잠겨있는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K쨩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둘러 종업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종업원이 건물 뒤쪽에 있는 창문으로 화장실 안을 살필수 있다고 해서 나도 그 뒤로 따라 갔다.
까치발을 딛고 화장실로 이어진 작은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니 K쨩이 있었다.
그녀는 문에 기대어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눈조차 깜짝이지 않고 흑빛으로 질린 K쨩의 얼굴을 보고 종업원은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문을 부수고 실려나가는 K쨩는 이미 맥이 잡히지 않았다.
구급차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때는 이미 늦었었다.
사인은 심부전으로 진단되었다.
과음에 의한 급성 심장마비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술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믿는다.
K쨩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날 이자카야 현관에서 K쨩과 똑같이 생긴 그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침대 밑에서 보았던, 잠들어 있는 듯 지그시 눈을 감고있던 K쨩의 얼굴.
그리고 그 얼굴은 어둠 속에서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를 쫓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K쨩은 화장실에서 물을 내릴때 창문 밖으로 자기와 똑같이 생긴 얼굴을 보았던 게 아닐까.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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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비비스케 (http://vivian9128.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