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4월 1일, 고승덕은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당사를 방문하여 정균환 사무총장에게 이력서를 제출하면서 공천을 받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공천이 불확실해지자 4월 26일 야당인 한나라당의 김덕룡 부총재의 후원회 행사에 참석하여 "지연은 국민회의(광주출생), 혈연은 자민련과 맺어져 있으나(현재 이혼한 첫번째 부인이 당시 공동여당인 자민련의 박태준 총재 딸임) 정치는 한나라당에서 하겠다"라고 입당을 선언하고, 서울 송파갑 재선거에 후보로 공천 받았다.
그러나 고승덕의 장인어른인 박태준 총재가 고승덕의 아버지인 고익태를 만나 "장인이 여당 총재인데 사위가 야당 후보로 출마하는 것은 집안망신이다"라고 하였고 고익태가 "면목이 없다"고 하면서 온 가족이 총동원되어 고승덕의 출마를 막았다. 결국 사흘만인 4월 29일 고승덕은 자민련 당사를 방문하여 "이번일로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송구스럽다. 양가 부모님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며 후보사퇴했다.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변인은 "문은 국민회의에 두드리고, 공천은 한나라당에서 받고, 사퇴는 자민련에서 했다."고 논평을 했고, 시사저널은 "재주 많고 대중적 인기 높아 전도 양양하던 최고의 '젊은 피'가 돌연 '썩은 피'가 되어 하루아침에 '정치 철새'로 전락했다. 과정보다 목적을 중시한 출세지향주의적인 한 젊은 변호사가 하루아침에 정치판에서 퇴장당한 [3류 정치]의 결정판이 이른바 '고승덕 코미디'"라고 비판하였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BBK 주가 조작 의혹에 휩싸였는데, BBK 구원투수로 긴급투입된 것이 바로 주식전문가 고승덕이었다. 당시 고승덕은 '고승덕 펀드'를 출시하며 펀드매니저와 주식전문가로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고승덕은 이명박 캠프의 전략기획팀장을 맡아 이명박을 대통령에 당선시켰고, 공을 인정 받아 2008년 18대 총선(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었다.
고승덕이 출시한 '고승덕펀드'는 '펀드매니저 실명을 펀드명칭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업계 자율규제와 '투자자문과 운용을 함께 할 수 없다'는 법령을 어겨 금융감독위원회의 경고를 받았다.
2011년 12월, 고승덕은 "한나라당 당대표가 전당대회에서 돈봉투를 돌렸다"고 폭로하여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이 논란이 되었다. '한나라당 돈봉투' 사건의 당사자인 박희태 국회의장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후폭풍은 일파만파 커졌다.
당시 고승덕의 '돈봉투 폭로'의 배경에 관심이 쏟아졌었는데, '박희태 국회의장의 먼 친척이자 고향 후배인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이 자신의 지역구인 서초을에 출마하려고 하자 폭로했다'는 분석,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 폭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 '한나라당 텃밭인 서울 강남권 의원들을 물갈이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폭로했다'는 분석들이 있었다.
5월 20일, 교학사 '친일 미화 교과서'를 집필한 이명희 공주대 교수가 참여하고 있는 '6·4 지방선거 좋은 후보 선정 시민유권자 운동본부'가 광역·기초단체·교육감 '좋은 후보' 23명의 명단을 발표하며 고승덕 지지선언을 함으로써, '고승덕과 우익인사들의 결탁' 논란이 발생하였다.
고승덕이 새누리당 18대 국회의원 재직 당시 고승덕의 지역구인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시민의 숲' 공원을 '윤봉길공원'으로 바꾸는 데 반대해서 명칭 변경이 무산됐다. 고승덕은 반대 이유로 "윤봉길 의사는 서초구와 아무 연고가 없고 윤봉길기념관이 특별히 서초구 내에 있을 이유가 없으며, 무엇보다 주민이 강력히 반대한다"는 것을 들었다.
양시헌 매헌 윤봉길 기념사업회 사무처장은 "고승덕의 논리대로라면 충무로와 이순신 장군, 을지로와 을지문덕 장군, 강남구와 도산 안창호 선생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기에 모든 지명과 명칭사용은 철회돼야 할 것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연고가 무슨 소용인가. 대한민국 전체 땅이 그들의 연고다. 주민반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반대 주민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고승덕이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되면 윤봉길 의사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학생들에게 어떤 역사의식과 교육 철학을 가지고 가르칠지 걱정된다"고 했다.
고승덕의 아들이 미국 시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병역대상자로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되어 이중국적 및 병역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고승덕이 2014년 5월 서울시교육감 후보등록을 위해 선거관리위원회에 병역사항을 신고한 서류에 고승덕의 자녀 1명이 2010년부터 징병검사를 연기했으며, 24세 이전에 출국했다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고승덕은 “대한민국 국민이 우연히 미국에서 태어나 이중국적을 갖게 된 것이다. 아들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해명했다.
제주 출신인 아버지 고익태와 윤선도 후손인 어머니 윤순엽의 슬하에서 2녀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숙은 대법관을 역임한 윤일영 변호사이다. 1984년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재직 당시 그는 박태준 포스코 전 회장의 둘째 딸인 화가 박유아와 결혼했다. 그의 전 부인인 박유아는 이화여자대학교 동양학과를 졸업하고 고승덕과 미국으로 유학할 때 미술사와 드로잉을 공부하기도 했으며, 지난 1987년과 1991년에 남매를 두었고, 전 부인은 1998년 아이들과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고승덕은 2002년 박유아와 합의 이혼하였다. 이후 고승덕은 2004년에 KBS의 전 아나운서 왕종근의 소개로 10살 연하의 이무경(李戊瓊)을 만나 비밀리에 재혼하였다. 이무경은 당시 경향신문 기자로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1991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편집부와 문화부, 《매거진X》부 등을 거쳤다. 지난 2005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참... 교육감이란 자리를 뭘로 생각하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