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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시즘과 헐리웃의 두 감독
게시물ID : movie_518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넥스트
추천 : 13
조회수 : 969회
댓글수 : 23개
등록시간 : 2016/01/03 01:19:55
1.jpg

1. 엘리아 카잔 (1909년 9월7일~2003년9월 28일)
 
터키 태생의 그리스인으로 4살때 미국으로 이민온 엘리아 카잔은 브로드웨이에서 연극 연출을 시작으로
헐리웃에 입성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덴의 동쪽, 신사협정,초원의 바다 같은 걸출한 걸작들을 연출한 감독이었습니다
1950년 공화당 상원의원인 조지프 메카시가 미국 전역에 공산주의들이 넘치며 자신이 그 명단을 가지고 있다는 궤변으로
시작된 광풍은 미국 전역을 광기로 몰아갔고 헐리웃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엘리아 카잔은 당시 많은 사회비판적인 연극,영화를 연출했던 사람이었고 공산주의자로 몰린채 반미조사위원회에 출두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가 한 선택은 자신이 공산주의 활동을 한바 있으며 헐리웃에 있는 다른 공산주의자를 알고 있다고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고한 헐리웃의 동료 여덟명을 팔아 넘긴 공으로 자신은 살아 남은채 헐리웃에서 다시 감독생활을
할 수 있었고 그 후에도 워터프론트 같은 걸작을 찍으며 위대한 감독으로 칭송 받게 되었죠.
 
1999년 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는 수많은 논란 끝에 평생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됩니다. 그가 무대 위에 올랐을때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던
많은 영화인들...워렌 비티나 케시 베이츠, 커트 러셀, 메릴 스트립은 그의 수상에 기립박수를 보냈지만 또 다른 영화인들 짐 캐리,에드 해리스
닉 놀테, 홀리 헌터, 조디 포스터, 조지 클루니 같은 영화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냉소적인 시선을 보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각 시상식장 밖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공로상을 수상하는 것을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었죠.
그는 동료를 무고하고 팔아 넘기며 살아 남고 또 감독으로 훌륭한 커리어를 이어 나갔지만 역사와 사람들의 기억까지 지우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무고한 다른 사람들 처럼 누명을 쓰고 쫓겨났던 찰리 채플린이 1972년 공로상을 수상할때 모든 사람의 기립박수와 눈물로 환영을
받았던거와는 참으로 비교되는 모습이었죠.
카잔은 자서전에서 자신이 워터프론트로 아카데미상을 석권 했을때 나를 밀고자로 조롱하던 놈들을 엿먹인 거라며 통쾌한 복수를 했다고
자화자찬 했지만 카잔의 영화가 기억되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동안 그가 행한 변절과 배신은 메카시즘 이라는 역사와 함께 두고두고 기억되게
될 겁니다.
 
 
2.jpg

2. 존 포드 (1894년 2월1일~1973년 8월31일)
 
카잔과 동시대를 살았던 감독이자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중 한명인 존 포드 입니다.
카잔도 감독으로서는 위대한 인물이지만 존 포드는 머리 몇개 만큼은 위에 있는 가장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감독중 한명이죠.
또한 그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유일무이하게 4번이나 수상한 감독이자 철저한 보수주의자이며 또한 가장 미국적인 영화를 찍는 감독이기도 했습니다.
존포드 하면 서부 영화, 서부 영화 하면 존포드란 수식이 등차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서부극이야 말로 가장 미국적인 쟝르니까요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가 4번이나 수상한 아카데미 감독상 중에는 서부영화는 없습니다.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카잔과 동시대를 살았던 만큼 그 역시 맥카시즘의 광풍을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
당시 미국 영화감독협회의 회장은 조셉 맨키비츠 라는 인물이 맡고 있었는데 그 또한 공산주의자란 누명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공산주의자라 몰아세운 이는 감독협회장 직을 탐내고 있던 십계의 감독 세실 B 드밀 이었습니다.
당시 감독협회 회의가 열리고(년도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세실 B 드밀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앞세워 맨키비츨르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며 맹공을 펼쳤고 장장 4시간 동안의 연설을 통해 모든 미국의 영화 감독들이 스스로가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고
국가에 충성 맹세를 해야 한다고 몰아 부쳤습니다.
메카시즘에 반대하는 목소리만 내도 당장 공산주의자로 몰려 인생이 끝장날수도 있던 시절(비교하자면 우리나라의 해방부터~80년대)
누구도 이 광기어린 연설에 마음속으로 불만을 가질 지언정 입으로 말을 꺼낼수 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맨키비츠 패거리의 장광설이 끝나고 존 포드가 연단에 올라 연설을 합니다. 그는 평소에도 인터뷰 조차 잘 하지 않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헐리웃에 어떻게 왔냐고 물으면 버스 타고 왔다고 답하고 영화에 대해 물으면 영화나 보라고 답하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그가 연단에 올라가 한 연설은 전혀 뜻밖의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존포드요. 웨스턴을 만듭니다. 미국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방에서 세실 B 드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잠시 연설을 멈추고 드밀을 바라보고)그러나 나는 당신이 싫소. 당신이
지지하는 것도 싫소. 오늘밤 당신이 여기서 말한 것도 싫소"
 
자신이 누군인지 밝히고,가장 미국적인 웨스턴을 만든다고 당당히 밝힌뒤에 메카시즘의 광기에 휩쓸린 미국인들을 언급하고
그 광기에 편승해서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던 드밀을 비난하고 나아가서 당시 누구도 감히 입밖에 꺼내기 조차 두려워 했던 메카시즘에 대한
비판까지 직설적인 화법으로 꺼리낌 없이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존 포드의 이 발언 이후 당시 감독협회의 분위기는 급반전 되었습니다.
 
존포드는 일생을 서부극에 바치며 그것을 무엇보다 자랑스러워 했던 보수주의자 였습니다.
가장 미국적인 감독 하면 언제나 첫번째에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의 영화에 페르소나 였던 존웨인 역시 극렬한 보수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존 포드는 보수주의자의 탈을 쓰고 남에게 누명을 씌우는 비열한 행태에 대해서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 진짜 보수주의자 였습니다.
 
사망한지 어느덧 40년이 지났지만 사후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영화 역사상 그 수많은 명장들 천재들 사이에서도 존 포드는 언제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감독들의 감독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영화 감독이전에
진실된 인간으로서 항상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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