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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4
게시물ID : panic_461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oima
추천 : 7
조회수 : 193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4/22 13:39:51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prologue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1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2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3




#4



여자애를 대리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토록 원하던 꿈을 드디어 이룰 수 있음에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여자애가 해달라는 건 다 해줄 생각이었다. 


그것이 사육하는 사람으로써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나는 여자애를 업은 체 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가 다치지 않게 살며시 침대에 눕히곤 마취에서 깰 때 까지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몇 시간 후 여자애는 잠꼬대를 하듯이 뒤척이더니 눈을 껌뻑였다.


“여기가 어디..”


아직 덜 깬 모양인지 여자애는 뒷말을 흐렸다.


“여기는 앞으로 네가 살아갈 집이야.”


분명 


“이런 걸 저에게 주시다니 너무 마음에 들어요.” 


라던가 


“오빠 멋있어요.” 


라는 말을 기대했지만 나의 그 순수한 기대마저 여자애는 처참히 부숴버렸다.


“이 변태ㅅㄲㅀ..”


말이 흐려서 다른 말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변태. 


여자애는 몽롱한 정신으로 끝까지 나를 보고 변태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상처받은 나는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웃음을 지으며 침대 옆 서랍에 있던 리모컨을 꺼냈다.


“그래. 편히 쉬어.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여기 리모컨 버튼을 누르면 되.”


나는 여자애에게 리모콘을 건 내 주고 지하실 철창을 닫았다. 


쇠창살 너머에 보이는 그녀는 이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는지 몸을 일으키려는 듯 했다. 


여자애는 침대위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베이지색 계통의 지하실은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지하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아기자기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냥 사람이 사는 집과 똑 같았다. 오히려 보통 집과 비교해도 이쪽이 더 고급스러웠다. 


그녀가 이곳이 지하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놀라 까무러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단 하나 여자애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이라면 벽에 걸려있는 그림이었다. 


괴상하게 생긴 여자가 춤을 추고 있는 그림은 여자애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역시 변태가 틀림없어..”


여자애는 울먹이듯 혼자 말했다. 


혹시나 출구가 있나싶어 이곳저곳을 뒤졌지만 헛수고였다. 


이곳은 창문하나 없는 지하실이었기 때문이다. 


지상과 연결되어있는 통로가 있다면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갈 정도의 환기구멍이었다. 


자신의 몸이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여자애는 나갈 방법을 골똘히 생각하며 안절부절 못 했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했는지 여자애는 리모컨을 들고 힘껏 눌렀다.


‘삐-’


나는 벨소리를 듣고는 지하실로 내려가 쇠창살 너머의 여자애를 마주보았다.


“내보내줘 이 변태야!!!”


갑작스러운 그녀의 돌발 행동에 나는 움찔했다.


“왜..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심장 떨어질 뻔 했잖아.”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심장을 움켜잡고 여자애를 경계했다.


“이제 어쩔 거지 변태아저씨?”


“내가 뭘 어째.”


“날 잡아먹기라도 하실 건가?”


“안 그래!”


“그럼 뭐 때문에 날 납치한 거야!”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답했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단지 그것뿐이야. 그리고 너도 갈 곳 없는 건 마찬가지였잖아. 추운데 밖에서 해매는 것보단 여기서 지내는 게 더 안전할거야.”


내가 현란한 말솜씨로 이유를 설명하니 여자애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니깐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윈윈작전 이라는 거죠?”


“그렇지!”


이제야 말이 통하는 듯하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나 그 미소는 얼마가지 못했다.


“야!!!!!!!!!!!!”


“깜짝이야! 소리 좀 그만질러!”


씩씩거리던 여자애는 잠시 후 조금 진정되었는지 나를 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좋아. 그럼 아저씨 계획부터 들어봐요. 이제 어쩔 건지.”


“계획?”


“절 이렇게 가둬 놓은 건 계획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 그런 건 없는데? 그냥 넌 여기서 편하게 살면 되.”


“그게 다예요?”


“응. 그게 다.”


“...”


“...”


나와 여자애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의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저씨 무슨 약 하셨어요?”


어김없이 여자애의 입에서 내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왔다.


“야.. 약이라니, 말이 너무 심하네.”


“약을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저 그림 좀 당장 치워요!”


여자애가 내가 예전에 만들어 놓은 작품을 보고 손가락질을 했다.


“저건 한 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내 명작 중에 하난데..”


“저딴 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구요? 여자가 발가벗고 춤추는 그림이? 그 사람들은 변태만 모아 놨나보죠? 내가 발로 그려도 저것보단 훨씬 잘 그리겠다!”


그렇게 여자애와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고 여자애는 지쳤는지 소파에 몸을 파묻고 나를 째려봤다. 


아무 말 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여자애의 눈매는 상당히 매서워서 솔직히 조금 겁이 났다.


“보니깐 절 풀어줄 생각이 없는 거 같은데. 그럴 거라면 저 그림은 당장 때주세요. 정말이지 역겨우니깐.”


“알았으니깐 수갑을 차.”


“수갑이요?”


나는 벽에 고정되어있는 수갑을 가리켰다.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제가 도망 갈 거라고 생각 하는 거죠?”


“굳이 그런 건 아니지만 수갑을 차야지 문이 열리거든.”


여자애는 나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마지못해 한쪽 손에 수갑을 찼다. 


내가 문을 열고 그림을 때어내는 사이에 도망가려는 여자애의 계획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었다.


“됐어요?”


그러자 굳게 잠겨있던 철창이 ‘철컹’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열렸다.


“들어가도 되지?”


“아저씨집인데 그런 걸 왜 물어요?”


“여긴 네 방이니깐. 사생활침해라던가 그런 걸 대비해서..”


“멍청이.”


“멍청이라니..”


나는 축 쳐진 어깨를 들고 그림을 때어냈다.


“이러면 됐지? 근데 이거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은근히 매력있..”


“됐고, 다됐으면 빨리 나가요. 움직이기 불편하니깐!”


“알았어. 나갈게 나가.”


내가 다시 철창을 닫자 철창은 ‘철컹’ 소리를 내며 다시 잠겼다. 그러자 수갑도 자동적으로 여자애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럼 쉬어. 난 다시 올라가볼게.”


“가든지 말든지..”


여자애는 혼자 궁시렁대며 팔목을 어루만졌다.


“아 참, 네 이름이 뭐야?”


“그건 묻는 사람이 먼저 밝히는 게 예의 아닌가요?”


“미안, 내 소개가 늦었네. 내 이름은 어수선. 27살이고 현재 무직이야.”


“이름만큼 스펙도 어수선하네요.”


“윽..”


그 말 대로였다. 천재 팝아티스트에서 한순간 바닥으로 떨어진 나로 써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 인생은 정말이지 너무나 어수선했다.


“그럼 이제 네 이름을 말해줄래?”


“싫어요.”


“...”


예상외의 반응에 내가 당황하자 여자애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말한 사람이 바보죠. 전 나가면 아저씨 경찰에 신고 할 거예요.”


“그리고 나선?”


“그리고 나선 뭐요?”


“신고 하고나서 뭐 할 건데?”


“물론 다시 지..”


순간 여자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물론 다시 집으로 가야죠.” 라는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을 가까스로 다시 삼켰다. 


여자애에게 있어서는 집이라는 곳은 악몽과도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가출할 때 들고 나온 10만원이 전부였으니 돈이 떨어지면 당장 살길도 막막했다. 


그렇지만 집으로 돌아가긴 죽기보다 싫었다. 


돌아간다면 더 심하게 맞을 테니깐. 


갑자기 침체되어있는 여자애에게 나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괜찮아?”


여자애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나를 흘낏 올려다보더니 기운 없이 말했다.


“상관하지 말아요.”


그녀는 소파위에 옆으로 누워 등받이를 마주봤다. 


난 갑자기 조용해진 그녀가 걱정됐지만 지금은 그냥 그녀를 혼자 두기로 했다. 어느 누구나 사색의 시간은 필요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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