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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은 이야기를 멈추고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마호가니 나무로 만든 고풍스런 벽시계는 새벽 2시를 넘어 3시로 가고 있었다.
"너무 늦었구나. 이만 자……"
쥬디시스를 바라본 트와일라잇은 놀랐다. 눈을 크게 뜬 쥬디시스가 표정을 잔뜩 찡그린 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왜 그러니?"
"공주님이 불쌍해서요. 어엉엉엉."
트와일라잇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게 있어 그 일은 아주 오래 전 과거의 일일 뿐이었다. 한동안은 가슴 깊숙이 남은 상처에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해 주었다. 지금은 그저 불쾌한 기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진짜 힘든 건 그 일이 아니었다.
'그래. 그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
탁자에 엎어져 본격적으로 울고 있는 쥬디시스를 바라보는 트와일라잇의 심정은 복잡했다. 그녀의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슬퍼해주는 존재는 참 오래간만이었다. 아니 공주의 좌에서 내려온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의 사건 이후로 트와일라잇은 쭉 혼자였었다. 지금은 흉해진 모습과 목소리 때문에 그 누구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그녀 자신도 다른 이의 관심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친구들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자. 그만 울거라. 아침이 되면 얼굴이 부을 거야. 여자아이는 몸을 단정히 해야 한다."
트와일라잇은 울고있는 쥬디시스를 달래야했다. 그녀는 눈물을 닦아주고, 코를 풀게하고, 흐트러진 갈기를 다듬어 주는 등의 여러가지 일을 한 후에야 하나뿐인 침대에 쥬디시스를 눕힐 수 있었다.
"오늘은 일단 자려무나."
"크응! 훌쩍. 네에."
안도의 숨을 내 쉰 트와일라잇이 뒤돌아 섰다. 손님을 맞을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었기에 오늘은 따로 잠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방을 나서는 데 등 뒤로 쥬디시스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 공주님."
"…왜 그러니?"
쥬디시스의 부름에 짧게 한숨을 내 쉰 트와일라잇이 되돌아 자신을 바라보자, 쥬디시스는 담요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머뭇머뭇 말했다.
"자…자장가 불러 주실 수 있으세요?"
"하아?"
"저… 쉽게 잠들지 못할 거 같아서. 헤헤헤."
"일 없다. 네가 망아지도 아니고…"
쥬디시스의 귀가 축 쳐졌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지만 트와일라잇은 관심을 끊기로 했다.
"…서."
방을 나서려고 할 때, 쥬디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아 결국 다시 물어야 했다.
"…뭐라고 했니?"
"저…어머니가 안 계셔서."
"……?"
"잠자리까지 챙겨준 건 공주님이 처음이예요. 그래서…저…"
늙어서 이 무슨 고생인지 한탄한 트와일라잇은 자신도 잘 모르는 자장가를 더듬더듬 불러줘야 했다. 탁한 목소리에 음정도 맞지 않고 중간중간 끊기기도 했지만, 쥬디시스는 웃음을 머금고 잠들었다. 눈물자국을 달고 있는 채로…
쥬디시스가 잠들자 트와일라잇은 바닥에서 자기로 결정했다. 평온한 자신의 일상을 헤치며 귀찮은 일만 남기는 쥬디시스였지만 밉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관심을 받으려 하지 않는 일상을 오래도록 보내온 스스로를 이상하다고 여기며, 서쪽으로 한참이나 기울어진 달에서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맞으며 트와일라잇도 조용히 잠들었다.
* * *
"꺄악! 늦었다! 늦었어!"
트와일라잇은 우당탕 하며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바닥에서 잔 때문인지 굳은 몸을 풀며 일어난 트와일라잇의 눈에 창 밖을 보며 허둥거리는 쥬디시스가 보였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왠 소란이냐?"
"늦었어요!"
"뭐가?"
"늦었다구요!"
"그러니까 뭐…"
쥬디시스는 이미 밖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거실에서 다시 물건이 우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흔든 트와일라잇이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집 밖으로 나가자 쥬디시스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쥬디시스. 도대체 뭐하는 거…"
"잘 보세요. 공주님."
한쪽 눈을 찡긋하며 미소를 보낸 쥬디시스가 천천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한 쥬디시스가 자세를 낮추며 힘을 쓰자 그녀의 뿔이 밝게 빛나며 주변을 밝혔다. 얼굴을 찡그리며 뿔의 빛을 점점 키우던 쥬디시스의 등에 한 순간 빛의 날개가 생성됐다. 페가수스의 그것처럼 빛나는 날개는 곧 활짝 펴졌고 쥬디시스의 몸이 천천히 하늘로 떠 오르기 시작했다. 트와일라잇의 눈에 달걀만하게 보일 때까지 올라간 쥬디시스의 뿔에서 빛이 폭발했다. 강렬한 빛이 일대를 환하게 비추자 고개를 돌려 눈을 보호한 트와일라잇은 빛이 사그라들자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놀라움에 입이 벌어졌다. 어둠을 몰아내며 태양이 떠 오르고 있었다.
쥬디시스가 천천히 내려왔다. 아침이슬에 젖은 풀숲 사이로 발굽이 땅에 닿자, 날개가 떠오른 태양빛에 반짝이는 이슬처럼 흩날리며 사라졌다. 땅에 내려선 쥬디시스가 트와일라잇을 보며 입가에 환한 웃음을 머금었다. 이 세상 모든것을 담은 듯한 자부심으로 가득찬 모습을 보며 그저 입을 벌리며 놀라던 트와일라잇도 의문을 뒤로 하고 그녀를 마주보며 웃어주었다. 그것은 지금의 그녀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찬사였다. 찬란한 아침 해를 맞으며 늙고 어린 두 포니가 환한 웃음을 머금고 서로를 마주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쥬디시스가 힘없이 쓰러졌다.
"쥬디시스!"
트와일라잇이 놀라 달려가 쥬디시스를 안아 들었다.
"괜찮니?"
트와일라잇이 걱정스레 물었다. 쥬디시스는 기운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해를 떠 올리면 항상 이래요. 루나 공주님 말로는 마법의 반동을 버틸 정도로 성장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트와일라잇은 쥬디시스를 안아들고 오두막으로 향했다. 어쨌든 일단 눕혀 놓고 볼 일이다.
일개 유니콘이 해를 띄우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지만, 트와일라잇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쥬디시스도 해를 띄운 건 하루 이틀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러려니 넘어갔다. 다만, 신경을 쓰긴 썼는지 아침식사로 어제 먹다 남은 음식외에 주변에서 뜯어온 것으로 보이는 연근과 싱그러운 과일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다르다면 다르달까. 물론 쥬디시스는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그저 맛있게 먹었을 뿐.
아침을 먹고 나서 트와일라잇은 평소의 일과를 시작했다. 일단 집안과 주변을 청소했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가 여러 가지 식용 풀과 과일들을 땄다. 청소와 그날 먹을 식사를 준비 한 후에는 기념비를 청소했다. 거의 항상 방문객들이 있는 터라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 쓰레기가 생긴다. 그것들을 모두 수거해서 태울 건 태우고 묻을 건 묻는다. 그 일이 끝나면 쉬며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기며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으로 가는 곳이 무덤이다. 잡초를 뽑고, 더럽혀지거나 파손된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살핀다. 모든 일이 끝나면 그제야 오두막으로 돌아간다. 쥬디시스는 트와일라잇을 따라 다니며 싫은 기색 하나 없이 그 모든 일을 묵묵히 도왔다.
쥬디시스가 말문을 연 것은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였다.
"아무것도 안 물어보시네요?"
"뭘 말이냐?"
"제가 아침에 한 일이요."
"놀랍기는 했지만 그 뿐이다. 짐작가는 것이 없는 것도 아니고…"
"헤에. 뭔데요? 뭐죠? 뭘까요?"
트와일라잇은 악동 같은 미소를 잔뜩 베어물고 자신을 요리조리 훝어보는 쥬디시스를 마땅찮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참이냐?"
"엑? 절 쫓아낼 생각이세요?"
"사실 그러고 싶다만…"
"너무하세요. 그리고 얘기도 아직 다 못 들었는데…"
"……"
"얘기 안 해주실 거군요?"
"괜한 얘기를 꺼냈다고 후회 중이다."
트와일라잇은 침대 옆에 있는 책장에서 책을 하나 꺼내들었다.
"난 지금부터 책을 읽을거다. 넌 네 처소로 돌아가렴."
"저 잘 곳 정해놓은 곳이 없는데요?"
"그럼 캔틀롯으로 돌아가."
"기차는 이미 끊겼다구요. 그리고 루나 공주님이 기념일까지 여기 있으라고 하셨어요."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날 방해하진 마."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볼을 부풀리며 불만스런 표정으로 트와일라잇을 바라보던 쥬디시스는 반응이 없자 결국 자신도 새들백에서 뭔가를 꺼내들고 보기 시작했다.
한동안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 들려왔다. '이퀘스트리아의 건국과 역사'라는 책을 읽던 트와일라잇은 문득 잔이 비었음을 발견하고 일어섰다. 잔을 채우고 자리로 돌아와 책을 다시 편 트와일라잇은 문득 끙끙거리며 뭔가를 들여다보는 쥬디시스를 발견했다. 슬쩍 들여다보자 수식이 잔뜩 적힌 종이였다.
"뭘하고 있는게냐?"
"…숙제요."
"숙제?"
"루나 공주님이 내준 숙제. 아우~ 어렵네."
트와일라잇이 보니 물질변화 마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자신도 한동안 골머리 앓던 문제. 그때 핑키파이가 거울연못을 사용해 포니빌에 큰 소란을 일으켰었다.
잠시 도와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역시 이런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트와일라잇은 관심을 끊고 다시 책에 몰두하려 했지만 신경이 쓰였다. 곁눈질해보니 끙끙거리며 가끔 머리를 부여잡는 쥬디시스를 보던 트와일라잇은 결국 다가가 옆에 앉았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흐른 후에 쥬디시스의 '풀었다!'하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쥬디시스에게 다시 침대를 내 준 트와일라잇은 어제의 일을 교훈 삼아 바닥에 깔개를 깔고 그 위에 몇 개의 천을 더 놓았다. 건초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누가 그걸 미리 준비해 놓겠는가? 급조한 잠자리였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 쥬디시스는 이미 잠들었는지 미동이 없었다. 트와일라잇은 불을 끄고 자리에 몸을 누였다.
쥬디시스가 살며시 눈을 떴다. 바닥에 잠든 트와일라잇을 보니 고르게 기복하는 가슴이 깊이 잠든 것처럼 보였다. 쥬디시스는 살며시 침대에서 빠져나와 트와일라잇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트와일라잇의 몸은 따듯했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놀랐다. 어제 처음 본 포니였다. 물론 책이나 다른 포니들에게 듣기는 꽤 많이 들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을 한 유니콘이라고. 직접 봤을 때엔 정말 놀랐다. 그 흉측한 몰골이라니, 목소리는 또 어떤가? 성대에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듣기에 정말 거북했다. 그리고 들려준 충격적인 과거, 크나큰 상처를 입고 상처입은 몸을 가지고 친구들의 무덤을 지키는 과거의 영웅. 아마 말하지 않은 뒷 얘기는 더 큰 상처가 있을터였다. 그녀가 최고의 위치에서 내려와 이런 촌구석에 흉측흉 몰골로 있는 건 이유가 있을것이다. 그녀 스스로 말한 죄가 어떤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이상하게 친밀감이 들었다. 트와일라잇의 따듯한 온기를 느끼며 쥬디시스는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었다.
* * *
같은 일상이 반복됐다. 트와일라잇은 쥬디시스를 내치지 않았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알게 모르게 배려하며 – 일단 식단이 바꼈다 – 몇 일을 평소와 같이 보냈다. 잠자리에 파고드는 건 귀찮았지만 내버려뒀다. 어미 없이 자랐다고 하니 포니의 체온이 그리운 거겠지. 대충 보아하니 캔틀롯의 왕성에서 지내온 듯 하다. 그곳에서 가족의 정 같은 것을 나눠줄 이는 없었을테지. 그래서 그냥 놔뒀다.
기념 행사가 이뤄지는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평소와 같은 일과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책을 읽는 트와일라잇에게 쥬디시스가 다가왔다.
"공주님."
"……?"
"정말 얘기 안 해 주실 건가요?"
트와일라잇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진실을 아는 것은 때론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단다."
"알아요. 남은 이야기는 지금까지 들었던 것보다 더 끔찍할지도 모른다는 걸, 하지만 루나 공주님이 절 이곳에 보낸 것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공주님도 그런 이유로 제게 말해 주시지 않았나요?"
"……"
"전 제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참을 고민하던 트와일라잇은 결국 책을 덮었다.
"시청을 나선 난……"
밤이 깊어갔다.
** 글 쓰는게 점점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