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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1
게시물ID : panic_459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oima
추천 : 14
조회수 : 21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4/19 20:40:58

#1



나는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차를 타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적절한 대상자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내 마음에 드는 대상자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설령 찾았다고 해도 어떻게 데려가야 할지 고민이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대놓고 여자를 납치했다간 금방 감방에 갈게 뻔했다.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에서 대상자를 찾아야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운전만 몇 시간째. 


어느 세 날은 저물었고 차량 라디오시계는 오후 09:46 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럴 거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납치라는 것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나로 써는 당연한 일 이었다. 


나는 근처 편의점에 들러서 삼각김밥과 라면을 사 먹었다. 


편의점 유리 밖 풍경은 매우 한적했다. 


도로 위 주황색 가로등이 거리를 비추고 그 밑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지나갔다. 


문득 찬란했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당시 23살 이었던 나는 잘나가던 팝아티스트였다. 


초기의 내 작품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지구촌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설적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 대 히트를 친 것이다. 


사람들은 내 작품에 공감했고 또 좋아했다. 


그리고 유투브를 통해 그 범위는 점차 외국에까지 퍼져갔다. 


누군가 내 작품을 편집해 만든 동영상을 유투브에 올린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 어느 샌가 핫 이슈가 되었고. 


내 작품을 극찬하는 댓글들이 수없이 올라왔다. 


그리고 얼마 후. 


수많은 러브콜이 쇄도했다. 각종 언론의 인터뷰, 광고 섭외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렇게 난 하루하루를 꽉 찬 스케줄로 바쁘게 살아갔다. 대학 강연도 돌아다녔고. 해외에 개인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년 뒤 나는 어리석은 실수 하나로 그 많은 명성을 잃어버리고 다시 평범한 예술가로 돌아오게 되었다. 


전시회 작업 차 들린 라스베거스가 화근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도박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표현한 작품들을 전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사람은 내가 되어있었다. 


처음 접하는 카지노는 나에겐 신세계였다. 그리고 그것은 커다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한판만 하려던 도박이 돈을 따는 맛에 점점 더 판이 커짐에 따라 따는 돈보다는 잃는 돈이 더 커져갔다. 


오기가 생긴 나는 본전이라도 찾자는 생각에 갖고 있던 돈을 모조리 베팅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결국 가지고온 모든 돈을 날린 나는 예정된 전시회를 열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여권마저 담보로 잡혀있었기 때문에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귀국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카지노에서 도박을 했다는 사실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벌써 소문이 자자하게 퍼져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카지노에서 나오는 장면을 누군가 동영상으로 찍어 유투브에 올렸던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거침없이 비난했고 내 명성은 점차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곧이어 들이닥친 경찰이 나를 체포해 결국 법원에서 징역 1년이라는 처벌을 받았다. 


지금 내 나이 스물일곱. 교도소에서 나온 뒤로 나는 한없이 무료한 나날을 보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은 예전에 천재 아티스트로 활동할 때 통장에 모아둔 수십억의 돈과 내가 만들어놓은 작품들이 전부였다. 


잘 나갈 때는 한없이 많았던 친구들도 이젠 다 떠나가고 없었다. 


먹고, 싸고, 자고. 


항상 이런 식의 삶의 패턴이 반복되었다.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통장엔 돈이 넘쳐났다. 


차라리 이렇게 살 바에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삶에 낙이 없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삶을 살던 중 2년 전 우연히 공원에서 만난 할머니는 나의 삶에 다시 색깔을 입혀주었다. 


기분전환을 목표로 공원을 찾아갔던 나는 벤치에 앉아있던 어떤 할머니를 만나게 됐다. 


할머니는 강아지를 대리고 있었다. 종류는 코카스파니엘. 


그동안 말동무가 없어서 많이 적적해있던 나는 할머니에게 말이라도 걸 겸 할머니 옆에 슬며시 앉았다.


“개가 참 예쁘네요.”


할머니는 옆에 있던 나를 보더니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요놈 키우는 재미로 살아. 자식 놈들 다 가버리고 남은 건 요놈밖에 없으니깐.”


“자제들은 다 어디 갔나요?”


“다 자기 살기 바쁘지. 요즘 세상이 어디 늙은이가 거들 수 있는 세상인가. 늙은 남편 죽고 나니 둘째딸이 지 어미 쓸쓸하다며 강아지 한 마리를 주더라고. 그 뒤로 한 번도 못 봤어. 그저 우리 멍순이 하고 집지키다 때 되면 가는 거지. 요놈이 내 삶에 버팀목이야.”


할머니는 멍순이 라고 불리는 강아지에게 빵조각을 물려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멍순이가 할머니보다 먼저 죽으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나는 장난스레 할머니에게 질문했다.


“요놈이 내가 사는 이윤데 사는 이유가 없어지면 죽어야지. 늙어서 오래 살면 뭐하나.”


“에이, 할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난 어리석은 질문을 한 내가 후회되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삶의 이유를 강아지에게서 찾고 있었다. 문득 할머니가 부러웠다. 


그래도 삶의 이유가 있으니깐. 나는 그것도 아니었다. 


삶에 이유가 없는 나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그저 숨 쉬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그 때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언가가 나를 자극했다. 


할머니와 강아지를 보고 느낀 것은 “바로 이거야!”였다. 


살아가는 의미가 없었던 나는 무언가 삶의 의미를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그것을 비로소 찾아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육’이었다. 


무언가를 키우면 그것을 살려야하는 의무가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나에게 삶의 이유를 만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단지 동물을 사육한다는 것에 내 인생을 걸만한 가치는 없을 것 같았다. 


더욱 가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곧 생각해낸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나는 사육의 대상이 동물보다는 사람이라면 그 의무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나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 사육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지극히 정상이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일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아니다. 


이건 예술이었다. 차기 예술작품. 삶속에 녹아있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작품제목을 생각했다. 


‘흑백 아티스트의 되찾은 색깔.’ 


나름대로 괜찮은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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