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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최고의 흑역사, 태풍 셀마.
게시물ID : history_51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SKY!
추천 : 13
조회수 : 200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7/24 03:21:12


전낙지가 대한민국을 지배하던 1987년 7월.

7일에 괌 부근에서 열대저기압이 발생해 느린 속도로 힘을 키우며 역시 느린 속도로 북상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발달 속도가 느려 태풍취급을 받지 못했지만, 다음날 서쪽으로 방향을 돌린후 갑자기 포풍성장을 시작, 9일에 태풍으로 인정되고 셀마라는 이름을 받았다.

전성기인 11일에는 중심기압 911 hPa, 최대풍속 65m/s, 크기 1850km를 찍었다. 아래 사진이 전성기때의 셀마다.

한반도와 일본, 중국 동부쪽을 찍은 사진인데 이들 국가가 안보인다.


어쨋든 셀마는 계속 서진하며 12일에는 필리핀 근방에 도달했고, 다시 여기서 방향을 북쪽으로 돌렸다.

14일에는 일본 오키나와 부근에 도달했다. 여기서 힘을 잃는듯 했지만, 셀마는 이 순간 다시 파워업하며 북진했다.


그리고 기상청은 셀마가 일본으로 가고 한반도에는 간접적인 영향만을 줄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15일에 셀마는 한반도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미 태평양 함대,일본등 다른 국가나 그 기관들은 모두 셀마가 한반도로 갈거라고 예측했지만, 한국 기상청만은 지조있게도 기존 입장을 유지해 일본으로 간다고 예측했다. 당시 해외서 정보를 얻는것도 제한적이고, 또 전두환의 은혜덕에 정부나 정부 기관이 부르는 대로 받아 옮기던 언론들은 셀마가 일본으로 간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한반도 상륙.


셀마의 실제 이동 경로. 전라도쪽 남해안을 통해 들어와 국토를 관통하며 강원도쪽 동해안으로 빠져나갔다.


태풍이 안온다고 했으니 그 대비를 한 사람은 없었다.

전국에서 345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피항하지 않은 선박이나 태풍 대비를 하지 않은 산업현장에서 발생했다.

침수피해등으로 발생한 이재민은 약 10만명. 피해액은 6천억원에 달한다.


기상청은 책임 회피를 위해 자신들만 아는 온갖 전문용어를 동원해 물타기를 시도하고, 셀마가 대한해협을 통해 일본으로 간것으로 조작된 이동 경로를 발표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 대부분이 태풍이 온것조차 모르고 있었고, 아직도 기상청의 실책과 사후 언론조작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어쨋든 기상청은 이 일을 인정했는데, 공개 사죄하지 않고 영구보존판인 기상월보에 슬그머니 잘못을 시인했다. 물론 이것도 모르고 있던 사람이 많다.


후일 양심선언을 했다고 하는데 언제 한건지 정확한 날짜는 구글링을 해도 안나옵니다.

사족으로 당시는 기상청이 아니라 기상대였습니다. 노태우 시절 기상청으로 렙업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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