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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은 우리 민족사 가장 큰 기적 … 진보도 인정해야”
게시물ID : sisa_3793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Jessie.J
추천 : 1/3
조회수 : 672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04/13 16:24:03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가 보는 현대사 논쟁
친일파 논란은 건국에 흠집내는 것
진보진영에 아무런 도움 안 돼
독립운동사-건국 후 역사 구분해야






1970~80년대 운동권에서 대표적으로 활동했던 주대환씨. 요즘에는 유럽의 복지국가식 사회민주주의를 연구·전파하는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요즘 진보진영에서 제기하는 친일파 문제는 내용이 일방적이라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했다. [김형수 기자]




민주통합당 김광진(32)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6·25전쟁 영웅’ 백선엽(93) 장군을 ‘민족반역자’로 몰아붙였다. 통합진보당 이정희(44) 대표는 대선 TV토론에서 박정희(1917~79) 전 대통령을 친일파라고 공격했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가 만들어 지난해 11월 선보인 동영상 ‘백년전쟁’은 이승만(1875~1965)·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친미파라고 규정했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민족문제연구소, 대개 진보좌파로 분류되는 이들에게서 반복적으로 불거져 나오는 ‘친일파 논란’이다. 이런 현상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이가 있다. 1980년대 최대 규모의 노동운동 그룹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의 약칭)의 리더 주대환(59)씨다. 현재는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다.

 주 대표는 “진보세력이 민족민주운동 시절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신적 굴레 혹은 집단적 콤플렉스다. ‘후진국형 진보=올드 레프트(구좌파)’의 한계를 벗고 ‘선진국형 진보=뉴 레프트(신좌파)’로 거듭나야 한다. 친일파 논란으로 보수 진영을 제압할 수 있다는 발상은 이제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모적 친일파 논란을 그치기 위해선 “진보세력의 사상혁명 혹은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며 “건국과 농지개혁,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사에 대한 시각을 진보세력이 재정립해야 한다. 건국의 기적을 인정해야 한다. 건국에 참여한 신익희(1894~1956)와 조봉암(1898~1959)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진보의 역사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승만 대통령까지 친일파로 분류됐다.

 “‘백년전쟁’엔 중요한 전제가 빠졌다. 이승만은 1896년 창설된 독립협회 당시 이미 선구적인 사상과 활동을 통해 청년 지도자로 우뚝 섰다. 1905년 미국으로 가기 전에 이승만은 이미 감옥살이도 오래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독립운동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승만을 이해하는 결정적 대전제를 ‘백년전쟁’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승만 반대 세력에서 나온 나쁜 소문을 모아 놓았다. 그런 눈으로 보면 이승만이 왜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됐는지, 또 해방 직후 박헌영·여운형 등 좌파가 만든 ‘인공(조선인민공화국)’에서 이승만을 주석으로 추대했는지 설명이 안 된다.”

 - 돈·여자 문제, 권력욕 등도 얘기했다.

 “정치적 운동을 하다 보면 분파투쟁, 노선투쟁, 헤게모니 다툼이 일어난다. 상대 약점을 확대해 도덕적 비난도 한다. 70~80년대 내가 겪은 노동운동도 그랬고, 민주화운동도 그랬다. 독립운동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 얘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봐야 한다. 대개 무장투쟁 강경파였던 박용만(1881~1928)이 외교·교육을 통한 독립을 중시한 이승만을 비난하면서 나온 얘기다. 친일파 운운은 독립운동 노선 차이를 과장한 것이다. 분파투쟁에서 나온 말을 다 믿으면 안 된다.”

 - 친일파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가 뭘까.

 “대한민국 건국에 흠집을 내는 것이다. 이런 논란이 진보세력에 도움이 될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2030세대는 친일파 논란 자체에 머리를 갸우뚱할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진보 진영이 그걸 깨달아야 한다.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독립운동사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역사는 분리해 서술해야 한다. 대한민국 건국은 독립운동의 연장으로 설명하기 힘든 사건이다. 대한민국 건국을 누구의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 대대로 소작농이었다가 마침내 자영농으로서 새 나라의 국민이 된 대다수 사람의 눈으로 보면 대한민국 건국은 기적이다.”

 - 대한민국 건국이 기적이란 뜻은.

 “산업화·민주화가 대한민국의 기적이라고 하지만 사실 더 큰 기적은 평등한 자영농의 나라 대한민국의 탄생이다. 중국·북한·북베트남·몽골 등 아시아의 잇따른 공산화가 압력으로 작용해 예방 혁명 차원의 농지개혁이 남한에서 단행됐다. 미국 영향을 받던 대만·일본에서도 실시됐는데 그중에 남한이 가장 잘됐다. 1960년 유엔 조사 농지소유 평등지수를 보면 한국 1위, 대만 2위, 일본 3위였다.”

 - 남한의 농지개혁이 북한보다 못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중국이나 북한에서 농민에게 분배된 토지는 곧 집단농장으로 바뀐다.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에 이르기까지 수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 북한은 오늘날까지 만성적 식량 부족에 시달린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대비다. 대한민국 건국과 농지개혁, 한국전쟁이 전개된 과정을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으로 땅을 갖게 된 수많은 자영농의 자발적 중노동과 창의력이, 또 그들의 교육열이 오늘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경제발전 기적을 만든 에너지의 원천이다. 위대한 나라가 탄생했다. 대한민국 건국이야말로 우리 민족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다.”

 - 이념 분쟁의 뿌리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진보세력은 대한민국 사관을 재정립해야 한다. 백범 김구를 중심에 놓는 역사는 이제 그쳐야 한다. 진보세력은 신익희와 조봉암의 기억을 회복해야 한다. 신익희는 1946년에, 조봉암은 1945년에 각각 임정계(한독당)와 공산당에서 이탈해 이승만 및 한민당과 손잡고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했다. 그들의 참여는 목숨과 명예를 건 모험적 대결단이었다. 건국에 참여 안 한 임정계와 공산당은 이들을 두고두고 배신자로 낙인 찍었다. 그 영향으로 오늘의 우리도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한 노선과 참여하지 않은 노선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 지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신익희와 조봉암의 대한민국 건국 참여는 옳았는가 틀렸는가, 이 질문을 오늘의 진보세력이 던져야 한다. 한독당과 공산당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볼 것인가, 신익희와 조봉암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볼 것인가.”

 - 신익희·조봉암을 특별히 재조명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으로 이승만·김성수·신익희·조봉암을 꼽을 수 있다. 김성수는 전면에 나서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일찍 타계함으로써 결국 신익희와 조봉암이 이승만의 정치적 경쟁자로 등장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신익희와 조봉암이 한독당과 공산당의 옛 동지들과 결별하며 건국에 참여할 땐 거의 혈혈단신이었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 간 결단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1955년 무렵, 즉 해방 뒤 10년 만에 이승만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이 또한 격동의 시기에 일어난 드라마틱한 사건이다. 한독당과 공산당 중심의 역사는 신익희와 조봉암 중심의 역사 서술과 크게 다르다. 후진국형 진보의 민족주의 사관과 선진국형 진보의 민주주의 사관의 차이다.”

글= 배영대 기자




◆주대환=1954년 경남 함안 출생. 73년 서울대 종교학과 입학 이후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에 투신. 유신 시절 민청학련사건 등에 연루돼 세 차례 투옥. 80년대 최대 노동운동 세력인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의 리더로 활약. 현재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로 있다. 진보 세력의 변혁을 촉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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