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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 굽는 노인
게시물ID : humorbest_5081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겨울Ω
추천 : 119
조회수 : 31050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8/06 14:58:50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8/06 12:11:42


=====


벌써 4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인터넷 개통한 지 얼마 안 돼서 프루나에서 야구공부하며 살 때다. 공유 사이트 왔다 가는 길에, 프루나는 속도가 느려서 토토디스크로 갈아타기로 했다. 토토디스크 한구석에 kimcc라는 동영상 올리는 노인이 있었다. 노모 동영상 몇개 받아 가지고 가려고 올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포인트를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저용량으로 올려주실 수 없습니까?”


했더니,


“저용량으로 올리면 毛나 보이겠소? 포인트가 아깝거든 프루나 가 받으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포인트를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올려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속도가 빠른 것 같더니, 해뜨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정도면 충분히 화려한데, 자꾸만 더 확인하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완료 해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해 뜰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조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모자이크라도 좋으니 그만 공유 해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보일만큼 보여야 야동이지, 하두리가 재촉한다고 AV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받을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본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곧 해 뜬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프루나에서 받으시우. 난 안 올리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해 뜬다고 못하는 것도 아닌지라,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올려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저퀄리티에 보이지도 않는다니까. 야동이란 제대로 골라 올려야지, 야한것만 나온다고 야동인가.”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바지를 숫제 무릎까지 놓고 태연스럽게 왼손은 거들고 있지 않다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잠깐 졸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동영상을 틀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공유 해준다. 사실 업로드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야동이다.


해도 떠버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업로드를 해 가지고 포인트 벌이가 될 턱이 없다. 다운로더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포인트만 되게 부른다. 네티켓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생각할 수록 갈 시각만 가까워 왔다. 그러다가, 공유폴더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저퀄리티 동영상들을 지우고 있었다. 그 때, 지우고 있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날카로운 감식안과 다양한 컨텐츠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밤에 와서 다른 공유사이트에 동영상을 업로드 해놨더니 다운로드 숫자가 몹시 높다. 본인들 하드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설명을 들어 보니, 화질이 너무 구리면 치다가 화나기 마련이며, 주인공이 너무 못생기면 보다가 끄기 쉽상이란다. 또 주인공이 예뻐도 모자이크면 질리기 마련인지라, 요렇게 꼭 알맞는 동영상은 좀체로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엣날부터 내려오는 동영상은 혹 화질이 떨어지면 실눈을 뜨고라도 볼 만큼 스토리가 좋았다. 그러나, 요새 동영상은 한 번 시리즈가 나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동영상에 숫자를 붙일 때, 질 좋은 여우들을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카메라로 찍는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출시한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싸구려 배우를 써서 바로 올린다. 금방 만든다. 그러나 스토리가 탄탄하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신경쓰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스토리 짤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동영상 공유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동영상을 업로드 할때면 보통 것은 보통, 풀버전은 풀버전, 고화질은 고화질이라고 제목으로 구별했고, 고화질은 구하기가 세 배 이상 힘들다. 고화질 풀버전이란 아홉 번 보고 심사 한 것이다. 얼핏 보아서는 다섯 번을 확인 했는지 열 번을 확인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제목을 믿고 받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이 넘친다. 아무 동영상이나 고화질, 풀버전, 얼굴이쁘다 써있다. 어느 누가 남이 먼저 볼 수도 없는데 아홉 번씩 확인하지도 않고, 또 남이 잘 받지도 않는 40~50대 동영상을 올리는 이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공유는 공유요 퀄리티는 퀄리티지만,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좋은 동영상을 업로드 한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유 폴더 하나를 채워 냈다.


이 공유 폴더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포인트를 벌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대인배가 나 같은 소인배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공유폴더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포인트에 휴지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밤에 컴퓨터 켜는 길로 kimcc를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의 공유폴더는 사라져 있었다. 나는 그 노인이 있었던 공유폴더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네이버의 뉴스 기사를 바라보았다. 김본좌께서 잡혀가셨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마지막 동영상을 업로드 하고 있었구나. 열심히 동영상을 확인하다가 저퀄리티면 과감하게 삭제하는 노인의 의연한 모습이 생각났다. 나는 무심히 ‘야구동영상(夜口動影上) 다양한내용(多陽瀚來用)!’ 김본좌(金本坐)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도 공유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동영상을 가지고 떠들고 있었다. 전에 따닥, 하고 클릭해서 동영상을 다운받던 생각이 난다. 포인트 충전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포인트 충전해서 받는 곧도 없이, 친구들이 알아서 구해준다. 김본좌이니, kimcc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이름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년 전 동영상 올리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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