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753일을 맞이하는 5월 7일 오늘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10반 이경민 학생의 생일입니다.
이경민 학생입니다.
경민이는 딸 셋 중에서 막내입니다. 큰언니하고 띠동갑일 정도로 언니들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막둥이지만, 집에서 경민이는 세 자매의 기둥이고, 언니들에게 힘을 주고 어려울 때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든든한 막내였다고 합니다.
경민이네 언니들은 나이 차이가 많다 보니 이미 결혼을 하셨는데, 경민이는 특히 큰 언니네 꼬맹이 조카를 무척 사랑했다고 합니다. 경민이 큰 언니 말씀에 따르면 이 큰조카는 경민이가 다 키웠다고 하셨습니다. 집에서 가족끼리 부르는 경민이 별명이 "갱이" 혹은 "갱갱이"였기 때문에, 큰조카도 경민이를 "갱이모"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참사 당시 네 살이었던 큰조카는 경민이가 세월호를 탔다가 돌아오지 못하게 된 뒤에도 경민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쯤인 저녁때면 창밖을 내다보면서 갱이모 빨리 오라고, 보고 싶다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시간이 지나도 "갱이모"가 돌아오지 않으니 꼬맹이도 이제 저녁에 갱이모를 부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경민이 큰언니는 그런 꼬맹이를 보면 다섯 살 나이에 사랑하는 갱이모가 영영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자기 나름대로 작별을 하는 것 같아서 너무 슬프다고 하셨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경민이네 큰언니는 둘째를 출산한 지 갓 한 달이 되었고, 둘째 언니도 비슷한 시기에 첫 아이를 출산하셨습니다. 집안에 말 그대로 신생아가 둘이나 있으니 참사 소식을 듣고도 경민이네 가족분들은 갓난아기를 둘이나 돌보느라 집 밖에 한 번 나가기도 힘든 상황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경민이네 가족분들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 그 때에 멈추어버린 것 같습니다. 경민이가 왜 죽었는지 진실을 밝히는 활동도 하실 수 없고 추모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시는 다른 분들을 쉽게 만날 수도 없으니, 경민이 가족분들께는 시간이 지나도,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때의 고통과 충격이 그대로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경민이 큰언니 말씀에 따르면 경민이는 교복이 예뻐서 단원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경민이는 다른 무엇보다 예쁜 교복에 자부심을 가지고 무척 좋아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경민이 유품이 돌아왔을 때, 다른 옷이나 소지품들은 모두 바닷물에 젖고 뻘 냄새, 진흙 냄새가 배어 있었지만 경민이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했던 교복만은 갓 빨아 다려서 개어 넣은 그 모습 그대로 깨끗했다고 하셨습니다.
경민이 언니는 그래서 경민이 또래의 교복 입은 학생들이 거리를 지나다니는 등하교 시간에는 경민이가 생각나서 너무 괴롭기 때문에 집 밖에 안 나간다고 하십니다. 작년 경민이 생일 즈음에 인터뷰를 했는데, 그 이후로는 저도 안산에 갈 때마다 유모차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시는 젊은 엄마를 보면 혹시 경민이네가 아닐까, 가족분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유심히 살펴보게 됩니다.
세월호 침몰 당시에 경민이는 다리를 다쳐서 선실에서 나올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큰 선실에 친구들 네다섯 명만 남게 되었는데, 그래도 경민이는 친구들이 무서워할까봐 끝까지 침착하게 울지 않고 참았다고 해요. 그러나 한 친구가 무서워서 울기 시작하자 다른 학생들도 모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생존 학생의 증언에 따르면 그렇게 침몰하는 배 안에 갇혀 친구들과 함께 통곡하는 모습이 경민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안산 합동분향소 전광판 #1111은 24시간 운영하며 무료입니다. 경민이네 조카들도 이제는 세 살, 여섯 살이 되었을테니 어쩌면 가족분들께서 아기들 데리고 분향소에 오실지도 모르겠습니다. #1111로 문자 보내 경민이 생일을 축하해 주세요. 잊지 않는다고, 함께 한다고 문자 한 통씩 보내주시면 분향소에 들르시는 모든 세월호 가족분들께 힘이 됩니다.
다음 주 토요일과 일요일, 5월 14-15일에 안산 화랑유원지 대공연장을 중심으로 "엄마랑 함께하장"이 진행됩니다. 세월호 가족분들을 부담없이 만나실 수 있는 가족의 달 축제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