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이디?”
애플파이를 먹던 루나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다 먹고 말해. 루나.”
잔을 들어올려 우아하게 홍자를 마신 셀레스티아는 잔을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그리드. 탐욕과 타락의 정령이지. 넌 모르겠지만 말야. 520년 전이던가? 이퀘스트리아 변두리에 있던 한 마을이 전소되는 일이 있었어.”
“마을이 통째로 불탄거야?”
루나는 입에 묻은 파이 조각을 닦으며 또렷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래. 나와 로얄가드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엔 잭커루라는 어스포니가 자신의 목을 긋고 있었어.”
“세상에...”
“그 녀석이 쓰러지고 나서 녀석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튀어나왔지.”
“그게... 그리드?”
“맞아. 녀석이 로얄가드에게 달려들길래 내가 제압했지.”
“어떻게?”
“마법으로. 쉽게 잡히던데?”
“그럼 별거 아닌 놈인가 보네.”
빈 찻잔을 들여다 본 셀레스티아가 잔을 채운 후 찻잔을 들어올렸다.
“이 녀석은 물리적인 힘은 약해. 하지만 매우 위험하지.”
“어떤 면에서?”
“정신을 오염시키거든. 그 마을의 포니들은 그리드에게 침식당해서 서로 죽고 죽였어.”
“마을 주민 전체가?”
셀레스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니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존재라...”
“그래. 어떻게 보면 디스코드보다 더 위험해. 디스코드는 스케일이 크긴 하지만 결국 큰 장난으로 볼 수 있지만 이 녀석은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거든.”
“그래서 그 녀석은 어떻게 됐어?”
“봉인해서 내 수집품 창고에 넣어놨지.”
“다행이네. 그 녀석이 다시 세상에 나오는 일은 없겠지.”
“응. 녀석이 다시 빛을 볼 일은 없을꺼야.”
루나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셀레스티아의 말에서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수집품 창고?”
“......”
“내가 모르는 그런 곳이 있었어?”
“아...그게 말이지. 루나. 말해주려고 했는데...”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언니.”
찔끔한 표정의 셀레스티아가 시선을 피하는 걸 보며 루나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 못 말린다니까. 나한테 또 숨기는 거 없어? 혹시 내가 모르는 조카라도 있는 거 아냐?”
루나가 한탄하듯 내뱉은 말에 셀레스티아의 얼굴이 굳었다. 루나는 언니의 굳은 얼굴을 바라보며 경악했다. 놀란 루나의 시선을 슬며시 피하던 셀레스티아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 그...”
자신을 가리키며 말을 잊지 못하는 루나의 경악한 얼굴을 살며시 곁눈질 하던 셀레스티아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
“뭐야! 도대체 나 없는 동안 무슨 짓을 하고 다닌거야! 언니!”
뒤늦게 셀레스티아를 쫓아가는 루나의 목소리가 캔틀롯의 왕성을 뒤흔들었다.
“도망가지마! 언니이이!”
캔틀롯 왕성을 뒤흔드는 고함소리와 함께 이퀘스트리아의 두 지배자가 쫓고 쫓기는 진풍경을 로얄가드들은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 *
“핑키 파이!”
한참 문을 두드리던 애플잭은 고개를 흔들며 뒤로 물러섰다.
사건이 일어나고 몇 일이 지나도록 핑키 파이는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누구의 방문도 거부하며 집에 틀어박혀 있길 고집하는 통에 친구들이 돌아가며 그녈 찾았지만 누구도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문 밖에서 힘없는 목소리를 들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오늘 핑키 파이를 찾은 애플잭은 이상함을 눈치챘다. 평소에는 신경질적이든 울먹이는 목소리든 뭔가 반응이 있었다. 기분 나쁜 적막감에 트와일라잇에게 달려간 애플잭은 다시 핑키 파이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보는 대로다. 트와일라잇.”
“안에 들어가 봐야겠어. 뒤로 물러나 애플잭.”
트와일라잇의 뿔이 빛나고 그녀의 몸이 빛나더니 사라졌다. 트와일라잇이 다시 나타난 것은 핑키 파이의 집 안이었다. 집 안은 어둡고 지저분했다. 벽에 걸려 있어야 할 사진이나 그림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어 걸을때마다 유리가 밟히는 소음을 냈다. 한쪽 벽에 있는 선반 위의 병엔 잔뜩 말라 비틀어진 꽃 하나가 그 화사한 잎을 모두 바닥에 떨구고 있었고,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닫혀 있어 빛 한점 들어오지 못했다. 평소 핑키 파이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런 건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며 트와일라잇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핑키 파이?”
조심스럽게 친우의 이름을 불러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안에 없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녀를 포니빌에서 봤다는 포니는 없었다는걸 상기하며 트와일라잇은 가장 안쪽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트와일라잇은 검은 그림자가 덮쳐 오는걸 보고 옆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트와일라잇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소리를 내며 내려선 그림자는 관성을 무시한 듯 그대로 방향을 바꿔 그녀를 덮쳤다. 그림자와 한덩이가 되어 바닥을 구른 트와일라잇은 뒷발로 그림자를 밀어내고 뒤로 몸을 굴려 일어섰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트와일라잇은 뿔에서 빛을 일으켰다. 환한 빛이 방을 밝히자 그림자는 눈을 가리며 뒤로 물러섰다. 트와일라잇은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분홍색의 몸, 곧게 뻗은 붉은 갈기와 꼬리, 풍선 모양의 큐티마크. 핑키 파이였다.
“핑키 파이!”
트와일라잇이 외치자 핑키 파이는 눈을 가리고 있던 발을 내렸다. 핑키 파이의 눈을 본 트와일라잇은 흠칫, 뒤로 물러섰다. 눈동자 주위로 잔뜩 충혈된 핑키 파이의 눈엔 공허가 가득했다. 시선은 트와일라잇을 향했지만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블...루..베리?”
몸을 흔들며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다가오던 핑키 파이가 어느 순간 빠른 움직임으로 트와일라잇에게 달려들었다.
“블루베리!”
딸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드는 핑키 파이를 트와일라잇은 마법을 사용해 멈춰세웠다. 네 개의 다리를 마법으로 구속하여 공중에 떠 올린 트와일라잇은 천천히 마법의 범위를 늘렸다.
“윽! 아윽!”
잡아당겨지는 고통에 신음하는 핑키 파이를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며 트와일라잇은 생각했다.
‘이대로 찢어버릴까?’
순간적으로 든 자신의 생각에 놀란 트와일라잇의 마법이 깨지며 핑키 파이가 한쪽 벽으로 거세게 내동댕이쳐졌다. 거칠게 벽에 부딛히고 바닥으로 떨어진 핑키 파이는 기절했는지 움직임이 없었다.
“내가 도대체 왜?”
잠시 머리를 흔든 트와일라잇은 서둘러 핑키 파이에게 다가갔다.
“핑키. 핑키 파이. 정신차려.”
몸을 흔들어 봤지만 핑키 파이는 눈을 뜰 기미가 없었다. 입술을 질끈 깨문 트와일라잇의 뿔이 빛나고 핑키 파이와 트와일라잇은 집 앞으로 이동했다.
“트와일라잇. 핑키는? 핑키!”
“병원으로. 많이 쇠약해졌어.”
“어... 알았다.”
사라졌던 장소에 다시 나타난 트와일라잇을 보며 다가온 애플잭은 의식이 없는 핑키 파이를 업고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
* * *
수도인 캔틀롯에서 조사관이 도착했다. 놀랍게도 그리핀이었는데, 그는 본인을 미네스 스윈들이라고 소개했다.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의 안내를 받아 보관된 젤너의 사체를 본 미네스는 그의 상처를 꼼꼼이 살피기 시작했다.
만져보고, 벌려보고, 심지어는 상처에 난 피를 핱아보던 미네스는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를 불렀다.
“대쉬 경.”
“말하시오.”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하던 미네스는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의 눈을 바라보았다.
“경이 최초 발견자라고 했죠?”
“그렇소.”
“범인은 보지 못했습니까?”
“불행히도.”
“비가 왔다고 했죠?”
“그렇소.”
“그날 비 온다는 예보는 없었구요?”
“그렇소.”
“흥미롭군.”
“무엇이 말이오?”
미네스는 대쉬의 말을 무시하고 젤너의 시체에 다가가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에게 손짓했다. 주니어가 가까이 다가가자 젤너의 가슴을 가리켰다. 뭔가에 관통당한 상처였다.
“이걸 보시오.”
“......?”
“이거... 마치 뿔에 찔린거 같지 않소?”
“뿔?”
“창 같은 날붙이라면 상처는 좁고 길게 나 있을거요. 근데 이거 보시오.”
미네스는 가슴의 상처를 양손으로 벌렸다.
“안쪽으로 갈수록 상처부위가 작아지지. 이 상처는 원통형의 뭔가에 찔린 것이 분명하오.”
“그것이 뿔이다?”
“예를 들자면 그런거요. 뿔이 아닐수도 있겠지. 공들여 깍은 나무 창이라던가...”
“말하고 싶은게 무엇이오?”
“현장에 가봅시다.”
말과 함께 곧장 밖으로 향하는 그를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가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미네스는 이번에도 무시했다.
병원을 막 나선 둘은 길 앞쪽에서 먼지구름이 다가오는 걸 보고 길 한쪽으로 비켜섰다. 곧 그들의 옆으로 핑키 파이를 업은 애플잭과 트와일라잇이 지나쳤다. 그들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고 급히 병원으로 향하는 걸 바라보던 미네스가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분이 트와일라잇 공주님이요?”
“그렇소.”
“호오...? 흥미롭군.”
애플잭과 트와일라잇이 병원에 들어서는 걸 바라보던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는 미네스의 말에 그를 돌아보았다.
“흥미롭다? 뭐가 말이오?”
“......아무것도 아니오. 젤너라는 로얄가드의 시체가 발견된 곳으로 갑시다.”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른 미네스가 한쪽 방향을 향해 날개짓을 하며 속도를 높였다. 제멋대로인 그 모습에 화를 낼 만도 하련만,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는 아무 말 없이 날아올라 그의 뒤를 쫓으며 외쳤다.
“그쪽이 아니오!”
* * *
현장에 도착한 미네스는 주변을 꼼꼼이 살피기 시작했다. 아직도 젤너의 피가 흐른 흔적이 남아 있는 땅을 기다시피 하며 이리저리 꿈틀거리는 미네스를 바라보던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는 어린시절 스윗 애플 에이커스의 일을 도와주며 봤던 사과벌레를 연상했다.
“대쉬 경.”
잠시 추억에 잠겨 있던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는 그를 부르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이번엔 또 뭐요?”
“병원으로 돌아갑시다.”
“이유는?”
“용의자를 찾은 것 같소.”
“!”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미네스를 보며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병원에 도착한 미네스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지나가는 간호사를 불러 세웠다.
“거기 간호사 아가씨.”
“네? 무슨 일인가요?”
지나가던 간호사가 돌아보자 뜻밖의 미모에 눈이 휘둥그레진 미네스가 그녀의 앞발을 붙잡고 은근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거 이런 깡촌에 이런 미인이. 아가씨 이름이? 본인은 이퀘스트리아에서도 가장 뛰어난 수사관이자 신사인 그리핀 미네스 스윈들이라고 하오. 시간있으면 우리 어디가서 따끈한 차라도...”
질겁한 간호사가 잡힌 발을 빼려했지만 미네스의 손은 용의주도하게 그녀의 발을 잡고 있었다. 결국 지켜보던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가 미네스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후에야 간호사는 발을 뺄 수 있었고 도망치듯이 떠나갔다.
“아아! 간호사 아가씨이~. 크악!”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에게 밟힌채로 손을 뻗어 애처롭게 간호사를 불러보던 미네스는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가 발에 힘을 주자 비명과 함께 침묵했다.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는 미네스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세워 으르렁거렸다.
“네놈 도대체 뭐하는 수작이냐?”
“수작이라니? 수컷이 아름다운 암컷에게 흥미를 보이는 건 자연의 법...오! 공주님.”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가 뒤돌아 보자 과연 트와일라잇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쉬 경. 그자는 누군가요?”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는 멱살을 잡았던 발에 힘을 풀었다. 자유가 된 미네스는 트와일라잇에게 쪼르르 달려가 그녀의 발 밑에 조아렸다.
“오!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님. 신 미네스 스윈들 인사 올리옵나이다. 소신은 저 위대한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자태를 흠모하여 과감하게 이퀘스트리아로 투신한 자로서, 작은 특기를 살려 수사관으로서 일하고 있으며 명을 받고 이번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오늘 도착했나이다. 평소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온 바, 부디 소신에게 공주님의 발굽에 입을 맞추는 영광을 주실 수 있겠나이까?”
쫑알쫑알 떠드는 미네스를 보며 트와일라잇은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에게 진짜야? 하는 눈짓을 보냈고,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는 한숨을 쉬며 사실입니다 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어느새 트와일라잇의 한쪽 발을 들고 입을 맞추고 있는 미네스를 보며 트와일라잇이 말했다.
“미네스경. 오늘 도착했다고 했는데 뭔가 알아낸 것은 있나요?”
슬그머니 발을 빼며 트와일라잇이 묻자 미네스는 멀어져가는 트와일라잇의 앞발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소신 공주님의 기대에 부합하여 유력한 용의자를 추정했나이다!”
“정마...”
“정말인가!”
트와일라잇의 말은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가 놀라 외친 소리에 묻혀버렸다. 병원 내에 있던 모든 포니의 시선이 모아지자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는 헛기침을 하며 원래의 자세로 돌아갔다.
“정말인가요? 미네스 경.”
“네. 공주님.”
트와일라잇은 자세를 가다듬고 미네스에게 물었다.
“그 용의자가 누구인지 지금 말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공주님. 이번 사건의 용의자는...”
병원내의 모든 시선이 미네스의 입에 모아졌다.
“용의자느은...”
잠시 뜸을 들이던 미네스는 주변의 시선이 험악해지자 서둘러 말했다.
“바로 공주님입니다.”
“!”
소리없는 경악이 그 공간을 지배했다.
** 손 아직도 아픔... 구부리는 건 괜찮은데.. 좌 우로 비틀면. 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