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월호가 터졌을 당시 대학생이었습니다. 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져버린 꽃들이 아쉬워 눈물 깨나 흘리고, 마음이 무거워 mt며 답사며 모두 거부했던 그런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기억도 무뎌가고, 노란 리본마저 한 켠에서 조금씩 빛이 바래갈 즈음. 저는 이따금씩 마음이 맞는 직장 동료들과 만나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안주 거리로는 직장 상사 이야기, 동료들 이야기. 그러다가 보니 어느새 동료의 친구와도 넋두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분은 xx랜드에서 근 3년을 일하신 분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인지 정규직인지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런 걸 물을 만큼 허물 없지도 않았거니와... 저는 은연 중에 그 사람을 꺼렸습니다. 안하무인의 말투와 행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들먹이는 그의 모습은 석가모니와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이었습니다. 어린이날을 며칠 앞두고 몰아친 업무에 짓눌려 저는 동료들과 도피하듯이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제가 꺼리는 그 친구분도 있었지만 저는 개의치 않고 제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한 아이가 했던 말, 앞으로 나아갈 방향, 조만간 있을 행사와 공개적인 업무 등등.
세월호 2주기에 얽힌 일화를 한참 풀어갈 쯤이었습니다. 저는 답지 않게 눈물까지 흘리며 안타까움과 마음 아픔을 토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분이 대뜸 그러더군요.
- 유족들한텐 미안한 얘기지만 솔직히 나는 세월호 같은 사건 한 번 더 터졌으면 좋겠다. 원래 4월 말~5월 초에 놀이공원 x나 사람 많아서 개빡치는데 재작년이랑 작년엔 별로 없었거든. - 대체 뭐가 좋다고 여기만 x나게 오는 거냐? 가서 추모나 할 것이지. 그런 거 한 번 터지면 인간들도 쉬고 나도 쉬고. 개이득 아니냐?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울음도 그치고 그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얼굴에 떠올라 있는 건 제 슬픔을 짓누르고도 남을 혐오와 짜증이었습니다. 저는 머리 끝까지 차오른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화를 냈습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어요? 입에서 튀어 나오면 다 말인 줄 알아요?" - 갑자기 왜 그래요? 취했어요? "당신 미쳤냐고요. 온 국민이 ptsd에 걸렸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심각했던 일인데. 당신한테는 그 날의 참극이 그저 쉴 거리 정도였어요?" - 왜 그렇게 과민반응 하는데? 희생자 유족이라도 돼요?
저는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차가운 파도에 하릴없이 져버린 그 꽃들을. 그의 매도 한 번에 저는 그들을 위로할 자격조차 잃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친구분은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는 저를 가리키며 어이가 없다는 둥, 성격이 이상하다는 둥 저를 까내리기 바빴지만... 저는 차오르는 눈물을 훔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어떤 죄가 있기에 저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요. 채 피지도 못한 꽃들의 무엇이 잘못이기에 저토록 저질스러운 잡변에 유린당해야 하는 걸까요.
그 후로도 언성이 오고 갔지만 그 친구분의 소신은 참으로 무서웠습니다. 이제 30대를 바라보는 성인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몰염치를 넘어 파렴치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냉혹하다 해도 사람의 목숨과 하루 일신의 안녕을 저울질하다니...
무엇보다도 그런 그에게 맞서는 저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주위의 시선이 아프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아이들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아이들을 지켜줄 수도 없게 만드는 작금의 세태... 오늘따라 이 매서운 바람이 야속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