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742일을 맞이하는 4월 26일 오늘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9반 김해화 학생과 2학년 10반 이단비 학생의 생일입니다.
김해화 학생입니다.
해화는 동생이 하나 있는 맏딸입니다. 해화는 한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어머님이 간호사로 일하셔서 아마 엄마 때문에 의학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엄마가 일주일에 2-3일씩 야근을 하시는데, 해화는 엄마 야근하시는 날에는 밤 늦게라도 잠들지 않고 기다렸다가 엄마한테 꼭 전화해서 하루 일과를 다 얘기하고 안부인사를 하고야 잠들었습니다. 엄마랑 같이 교회도 다녔는데, 해화는 교회에서 유치부 보조교사였습니다.
상냥하고 자상한 성격이라 친구들한테도 인기 만점이던 해화는 특히 3반 김빛나라 학생과 친했다고 합니다. 매일매일 같이 학교에 갈 정도로 단짝이었고, 서로 집에도 종종 놀러갔습니다. 생일에는 정성 가득한 손 편지를 써서 서로 생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해화는 빛나라에게 손으로 직접 쓴 "평생친구 인증서"를 주었고, 빛나라도 해화 생일에 케이크와 폭죽 그림을 아기자기하게 직접 그려넣은 생일축하 편지를 써 주었습니다.
해화가 빛나라 생일에 직접 써준 "평생친구 인증서"입니다. 아래는 빛나라가 해화 생일에 준 생일축하 편지입니다.
이렇게 친했던 해화와 빛나라는 둘 다 세월호를 타고 떠나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딸들을 잃고 나서 단짝이었던 두 친구의 아버님들이 함께 진상규명 활동에 나서서, 빛나라 아버지는 2014년 당시 가족협의회 위원장을 맡으셨고, 해화 아버님은 부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셨습니다.
함께 생일을 맞이한 10반 이단비 학생입니다.
단비는 무던하고 조용하고 밝은 아이였습니다. 언제나 살짝 미소띤 얼굴로 부모님께 불평하는 일도 투정하는 일도 없고 비싼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는 법도 없었습니다. 단비가 겪은 "사춘기 사건"은 단 한 번,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 허락을 받지 않고 친구 집에서 자고 온 일이었습니다. 그 작은 소동 외에는 언제나 부모님을 먼저 배려하고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단비는 병치레도 없고,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습니다. 단비의 방에는 급식 식단표가 걸려 있는데, 단비는 뭐든지 잘 먹는 아이답게 "카레라이스" "순대국" "비엔나 케찹볶음" "파인애플" 등 여기저기 빨간 밑줄을 쳐 놓았습니다.
단비와 단비 또래 단원고 피해자들은 1997년에 태어났고 바로 그 직후에 보통 "IMF 사태"라고 하는 외환위기가 터졌습니다. 그래서 단비도 어렸을 때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학원을 많이 다니거나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단비는 밝고 무난하게 잘 자라 주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엄마한테 다 얘기하는 귀여운 아이였고, 사춘기 소녀답게 가수도 좋아해서 케이윌과 휘성의 팬이었다고 합니다.
단비의 꿈은 응급구조사, 혹은 의사가 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한 분들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단비는 [심장이 뛴다]라는 응급구조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 수학여행을 가서도 단비는 배에서 친구들과 이 프로그램을 볼 거라고 했습니다.
안산 합동분향소 전광판 #1111은 24시간 운영하며 무료입니다. #1111로 문자 보내 해화와 단비 생일을 축하해 주시면 부모님과 가족분들께서 보실 수 있습니다. 잊지 않는다고, 생일 축하한다고 #1111로 문자 보내 주세요. 가족분들께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