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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이별
게시물ID : art_90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삶은계란..
추천 : 3
조회수 : 36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4/02 11:44:28

 

" 미안한데, 우리 헤어지자."

" …아."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예쁜 목소리가 쓰리다. 가벼운 침묵뒤에 짧은 감탄사, 딱히 이렇다할 큰 반응이 즉각 나타나질 않아 괜히 침을 삼킨다. 몇주 전 부터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던 그녀의 이별선언 이었지만 씁쓸한 마음을 감출길이 없었고, 나는 습관처럼 또 탁자에 팔을 괴고 검지로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려다 이런 내 습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그녀가 떠올라 눈가로 가던 손이 멈칫 하고 얼어붙었다. …사실 이젠 무슨 소용이겠느냐 만은.

 

 짧지않은 침묵이 이어진다. 상처투성이의 투박한 손으로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다. 헤어지자. 라는 말을 천천히 곱씹으면 씹을수록, 무거운 정적을 억지로 깨어보려 실없는 말을 내뱉기 위해 망설이듯 입술을 벙긋거리려 하면 할 수록 머리는 아프고 속은 답답하다. 

 

 

 

 붙잡아볼까, 떠나지 말아달라 매달려라도 볼까. 답지않게 구질구질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자꾸만 떠올라 눈을 감았다. 눈꺼풀은 천천히 닫히고 완전한 어둠과 마주하고 나서야 아직까지 현실성없이 내 머릿속을 겉돌기만 하던 너의 이별선언이 절절히 다가와 숨이 막혔다. 너에게 매달리며 울음을 터트려야 할지, 찌질하게 되려 성을 내며 너를 밀어내야 할지 아니면 덤덤하게 네 말에 수긍하며 너를 보내줘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이 복잡하게 뒤엉킨다. 하고싶은 말은 많은데 막상 입을 열려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가르쳐줄수 있다면 말해줄래? 내가 너에게 해야할 말은 어떤 것인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작고 고른 숨소리에 그제야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마음이 약한 신경성의 두통을 동반했다.  

 

 

 

 

 

" …내가 너무 자만했었나봐. 정말로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울고있는건지, 어떤건지. 아주 조금 울먹거리는 소리를 애써 삼키며 운을 때는 너는 후회스러운듯 체념성 짙은 말을 이어갔다.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 헤어지는 마당에 꼴에 나란 것도 전 애인이랍시고 차려주는 예의인건지, 아니면 정말로 내게 마음이 남은 건지. …그말은 하지 않는게 좋았을텐데.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하는 네가 야속하면서도 아직까지 네 목소리 하나조차도, 숨소리 한줌 조차도 사랑스러운 나는 혹시나 내게 조금이라도 미련이 있을까 착각하게 될지도 몰라. 그럼 내가 너무 비참해 질 것 같아, 자기야.

 

  망연히 테이블 위에 덮어둔 탁보의 짜임을 노려보며 앞전의 말에 담긴 너의 마음을 이기적이리 만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넘겨짚어봐도 비참함은 가실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내귓가에 사랑을 속삭이던, 영원을 노래하며 웃음짓던 그 목소리가 그렇게 아플줄 알았더라면 조금은 덜 혼란스러웠을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너와의 추억속에서 나는 왜 단한번도 너와 나의 이별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말도 안되는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지만 영원할 것 만 같았던 짧은 여정에 단 한조각 불신조차 품지 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한심스럽게 느껴져 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 …하고싶은 말 없니?"

" ……."

 

 

 

 

 내가 무슨 할말이 있겠어. 목구멍 까지 차오르는 말을 억지로 밟아죽이며 헛웃음을 터트린다. 뭐가 그리 좋다고 병신같이 한참동안 얼빠진놈 마냥 웃다가, 어느 순간 제정신이 돌아오자 그제야 나는 직감적으로 이 전화통화가 너와 나의 마지막 추억이 됨을 깨닫는다. 너와의 마지막 추억이 고작 목소리 뿐이라는 사실에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수 가 없어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말라서 튼 입술이 까끌하다. 거칠게 일어난 껍질을 앞니로 뜯어내다 문득 내 입술을 덮치던 네 온기가 다시 닿는 애틋한 상상을 한다. 머리가 아프다. 

 

 

 

 처음부터 내가 널 받아들이면 안돼었나보다. 저울질 해선 안될 관계란걸 알면서도 애초부터 나에 비해 너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스럽고 빛나는 여자이기에 어찌보면 이 이별이 당연한 결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다고 구차한 변명을 하면 내 마음이 좀 나아질까. 비겁하게 온갖 핑계를 대며 고개를 젓다가 한손으로 눈썹끝을 천천히 치켜올림과 동시에 지끈거리는 두통이 조금이나마 가라앉길 바라면서 관자놀이를 짚었다.

 

 

 

 내 일을 그만두면, 힘들겠지만 새삶을 찾겠노라 약속하면 네가 다시 돌아올까. 기대만 부풀고 정작 쓸모는 없는 생각을 하다 주먹을 쥐었다. 손안에 가둬두고 떠나가지 못하도록 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면 너는 없겠지.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고 숨이막힐때 까지 내달려보고 싶다고 하던 너도, 진정으로 예쁘게 웃어주며 머리를 쓸어넘기던 너도 반짝이며 행복한 웃음을 짓고있는 너또한 없겠지.

 

 

 

 

" 사랑해."

 

 

 

 

 주먹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들어 따끔하게 아려오는 통증때문인지 눈앞이 어지럽고 흐리다. 떨리는 목소리로 네 이름을 부르려다 입을 닫는다. 미련스럽게 입술사이를 비집고 새어나오는 숨과 네 이름이 네 화를 달래려 쓰던 편지위로 떨어진다. 여자애들이 열광하는 로맨스영화처럼 로맨틱을 가장한 찌질함을 쓰고 울고싶지는 않았다. 우리의 마지막이 그런 슬픈기억으로 남는 것은 원치 않는다. …사실 이마저도 훗날에 떠올린 기억속에 내 자신이 구차해 보이지 않기 위해 나는 나의 체면 때문에 너를 덤덤하게 보내려는 개수작일지도 몰라. 이런 거야말로 정말로 찌질하다는 건데. 비겁하게.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던 손을 내리고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얼굴이 화끈하게 열이 올랐고, 금방이라도 일그러질 듯 아슬아슬하게 곡선을 그리는 입꼬리가 위아래로 떨린다.

 

 

 

 

" 그러니까 여기까지 할게. 행복해."

" …앞으로 연락하지 말자."

 

 

 

 

 너는 목을 누르는 답답한 소리로 마지막 말을 건네고는 전화를 끊었다. 통화종료 화면이 뜨고는 바로 휴대폰 배경으로 설정된 너와나의 사진이 뜬다. 공허하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신호음이라도 울렸으면 좋겠건만.

 

 내눈과 맞추며 반짝이던 그 눈동자는 다른남자를 향하고 내 얼굴을 쓰다듬던 그 손은 다른사람의 손을 잡겠지. 내 볼에 닿는 너의 손을 다시 기억해 냈을때 쯤, 그제야 그 흔한 커플링 하나. 하다 못해 싸구려 반지하나 선물해 주지 못했던 것이 떠올라 그제동안 나의 무심함에 고개를 떨군다. 마음에 없는 여자를 구슬릴때에는 얼마나 헌신적인 척을 해댔던가. 그런데 정작 마음다해 사랑하는 너를 위해서는 진정으로 가슴 절절한 말한마디, 너와 내 사이를 이어주는 작은 선물하나 없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잘 해줄수도 있었는데.

 

 

 

 

" ……."

 

 

 

 

 아직까지 너의 향기가 내 집 곳곳에 배여있었고, 너의 흔적이 내 생활 사이에 빈틈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 안녕."

 

 

 

 

 이젠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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