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의 전작들은 항상 불편했어요. 파리의연인은 뭘 모르고 욕하며 끝까지 봤다지만 그 이후 온에어는 못봤고 상속자들은 옆에서 보는 사람이 있어 욕하며 중간중간 봤고요. 신사의 품격, 시크릿가든은 인기가 많다니 보려고, 보려고 몇번을 노력했지만 못 봤고요. 그러다 태후를 봤는데 어후... 대부분 남주의 말도 안되는 설정들 땜에 힘들었다지만 저는 여주의 근거없는 감동코드 남발에 열받아서 못 본 케이스입니다. 중간중간 보는 것도 볼때마다 욕하고 짜증내고 그러면서도 자꾸 뭔지모를 기대감이 있어 보고 또 기대감을 욕하곤 했죠.
저는 드라마를 캐릭빨로 보거든요. 캐릭 설정 독특하면 보고 들마가 캐릭에 의존을 많이 해서 구성이 무너져 있어도 어느 정도는 걍 예능이다~ 생각하며 잘 봐요. 가을동화가 그랬고, 맘에 안들면 자꾸 죽여 없애는 작가 들마도 그렇게 두 갠가를 봤습니다. 응답시리즈도 독특한 구성과 캐릭 때문에 봤죠. 노희경작가의 작품들도 진입 자체는 나름의 철학이 깃든 캐릭터들이었어요.
김은숙 작가의 들마를 보려고 했던 이유도 이 작가분이 캐릭하나는 디게 열심히 만드신다는 느낌이 있어서였거든요. 마냥 자상하지만은 않은 남주가 사랑에 빠지고, 그러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캐릭터의 이런 모순되는 상황을 웃기게, 또 현실감있게 묘사해주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캐릭터에 능력몰빵을 시켜주다보니 현실적으론 말이 안되는 게 자꾸 나오는 거죠. 의사가 전염병동에 마스크도 안하고 들어가서 환자에게 물리는데 <감동받으라아~> 하는 음악이 빠바밤 깔릴 때는 진짜 대본이고 연출이고 촌스러워서 이걸 본 내 뇌도 던지고 가서 카메라도 던지고 김은숙 작가의 노트북도 던져버리고 싶었어요.
그런 제가 도깨비를 본방사수하고 있습니다. 애키우느라 늦어지면 녹화해놓고, 중간에 나갔다 와야 하면 몇번이고 돌려봐요. 여전히 장면전환할 때 촌스러운 거나...라쎄린드랑 뽀샤시 효과로 화면 바를 때는 카메라 던지고 싶고, 앞으로 언제 구성이 무너질지 모른다... 각오는 하고 있긴 한데요. 이 드라마는 보기 전부터 느낌이 좋았고, 보고 나서도 역시, 좋네요.
그게 왜일까, 생각을 하니. 김은숙 작가는 현실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서, 그 세계에 온전히 빠져버리면 별 문제가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후도 걍 유시진 대위가 초능력자였음 재밌게 봤을 것 같더라고요. 차가 절벽으로 떨어지는데 유시진 대위가 송혜교 옆자리로 태연하게 올라타서 초능력으로 바다에 떨어지기 직전에 차를 들어올린다든가요. 곽거에 자기 초능력으로 존경하는 상사를 구할 수 있었는데, 승전의 기쁨에 취해 미처 총알을 못봐서 못구했다는 자책을 한다든가요. 이라크였나...파병인가 가야하는데 남겨질 송혜교가 너무 안쓰러워 송혜교의 기억을 지운다든가! 기억을 지웠는데 이여자가 뭘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이라크까지 자봉와서 유시진을 만났던 자리를 맴돌다가!! 유시진 대위를 만나면서 자신도 모를 눈물을 흘리며 엔딩을 맞는다든가!!!
네, 이 얘기 쓰고 싶어서 글 썼어요. 아 너무 열받아서... 간만에 열심히 본 공중파 들마라 더 열받아서 어허허허
도깨비는 확실히 현실에 비추어 말이 안된다! 고 말할 부분도 적고, 그저 온전히 그 세계에 빠지면 되니까 편하고 재밌어요. 김은숙 작가가 이렇게 꽉 닫힌 세계는 디테일하게 잘 그리는 느낌이라능.
김은숙 작가님 판타지길만 걸으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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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후...없는 삶은 생각할 수가 없는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