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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투쟁’과 ‘테러’, 무엇이 다른가
게시물ID : history_82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우젠장
추천 : 1
조회수 : 197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3/31 00:01:49

(수년 전 한 극우인사가 백범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로, 유관순 열사를 '여자깡패'라고 해서 이를 두고 법적 분쟁까지 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뉴라이트' 계열의 극우인사들 중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김기승 순천향대 교수가 <백범회보> 2012년 겨울호에 마침 이같은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글을 실었기에 백범기념관측의 양해를 얻어 전문을 소개합니다...편집자)    

한국의 독립운동은 의병전쟁, 구국계몽운동, 무장투쟁, 만세시위운동, 파업과 동맹휴업, 의열투쟁, 비밀결사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또한 계층 및 사회 부문에 따라 학생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등의 대중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다양하게 지속적으로 전개된 독립운동은 오늘날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다양한 독립운동의 방법 중 한국적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의열투쟁이다.

의열투쟁은 소규모 조직이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희생적으로 전개된 독립운동을 지칭하는 역사학적 개념으로 정립되었다. 의열투쟁이라는 용어는 행위의 내용과 성과보다는 독립운동가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열렬한 의지와 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데서 만들어졌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장기간의 투쟁 속에서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민족 독립이라는 정의를 실천하려는 희생적 결단이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의열투쟁'은 정의 실현 위한 열렬한 의지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의열’이라는 용어가 독립운동의 한 방법 혹은 방략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19년 ‘의열단’이 조직되면서부터였다. 의열단은 창립과 동시에 공약 10조를 정했는데, 제1조에 ‘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이라고 하였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

제1조의 정의에서 ‘의’를 취하고 맹렬에서 ‘열’을 취하여 의열단이라고 단체 이름을 정하였다. 제2조에서는 정의를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이라고 제시하고 이를 위해 ‘신명을 희생’하기로 결의하였다. 제3조에서는 ‘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한 자’라야 단원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정의 또는 충의를 실현하기 위한 자기희생적 용기와 기백을 ‘의열’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은 동양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의열’은 옛 문헌의 ‘천추의열’에서 기원한 것인데, 이는 열렬히 실천한 충의가 천추에 길이 남을 만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의열’이라는 개념에는 역사에 길이 남겨 후세인들이 본받아야 할 정의로운 행동과 정신이라는 동양의 전통적인 교훈주의적 역사관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의열’을 검색하면 다양한 용례를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역사 인물 중에서 ‘의열’의 표상은 주의 무왕과 관우였다. 주의 무왕은 은의 마지막 왕인 폭군 주왕을 몰아내고 주를 세워 천하태평을 이룩한 존재로 군주의 모델로 섬겨졌다. 충의와 용맹이 널리 알려진 관우는 임진왜란 이후 관왕묘가 만들어지면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천추의열'서 기원...교훈주의적 역사관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도 훌륭한 임금뿐만 아니라 오래 동안 존경을 받고 기억되어야 할 만한 사람들에게도 ‘의열’이라는 호칭이 부여되었다. ‘의열’이라는 단어로만 평가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충효’ · ‘효우’ · ‘덕행’ · ‘충용’ 등의 단어와 함께 쓰였다. 말하자면 유교에서 추구하는 강상윤리를 맹렬하게 실천하여 표창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의열’이라는 칭호가 부여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칭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시기에 집중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즉 외적의 침입이라는 국가적 위기의 상황에서 국가를 위하거나 강상윤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맹을 발휘한 인물들에 대한 포상이 많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적군과 끝까지 싸우며 순국한 사람, 아비를 따라 죽은 자식, 적에게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결한 여인이나 주인을 따라 순절한 사람도 포함되었다.

또한 의열의 인물에는 지아비를 죽인 자를 죽여 주인의 원수를 갚은 노비,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주인에 대해 충성을 다한 창기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조선시대에 ‘의열’이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강상윤리를 지키기 위해 자기희생적 용기를 발휘한 사람들을 칭송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였음을 알 수 있다. 

 1919년 9월, 당시 64세의 고령으로 사이토 충독 마차에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

이러한 전통 속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의병을 일으키고, 구국계몽운동을 전개하고,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불의한 자를 처단하고, 자정 순국한 사람들을 의사 혹은 열사로 불렀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국망의 위기라는 어려운 여건에서 신하, 국민, 인간, 민족, 국가, 세계의 의리를 실현하기 위한 독립운동은 모두 의열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의 독립운동은 기본적인 목표가 개인과 민족의 자유, 국가와 세계의 평등, 동양과 세계의 평화라는 ‘천하의 정의’였으며, 그 실천의 방법은 어렵고 힘든 긴 세월 동안 전개되었기에 비상한 자기희생적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의열투쟁을 한국의 역사적 전통 속에서 형성된 일반적 의미에서 정의한다면, 독립운동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근대 역사학은 전통적 역사학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서구의 근대적 역사연구 방법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한국 독립운동사를 서술할 때 투쟁방법 혹은 방략에 중점을 두면서 독립운동을 갈래지었다. 이에 소규모의 조직이나 개인에 의한 요인 암살이나 시설 파괴와 같은 투쟁 노선을 의열투쟁으로 규정지었다.

‘의열’이란 본래 주 무왕처럼 천하의 폭군을 정벌하기 위한 전쟁을 통해 천하의 정의를 실현한 것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군주로서 불의를 징벌하고 천하의 의리를 확립한 국가적 수준의 실천도 포함된 개념이었다. 이 점에서 국가 혹은 국민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독립전쟁을 추가한 독립운동 노선도 의열투쟁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의열투쟁은 '자기희생적 결단'의 산물 

그런데 학자들은 주로 보통 사람들이 충의를 희생적으로 실천한 것을 발굴하여 포상한 사실에 주목하여 의열투쟁 노선을 좁게 규정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도덕적 가치 평가를 중시하는 의열투쟁이라는 용어가 방략이나 방법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것도 자기희생이라는 동기적 측면보다도 적에 대한 공격의 방법이라는 결과나 도구적 측면이 강조되게 되었다.

즉, 의열투쟁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에 대한 암살과 침략시설 파괴라는 투쟁 방법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의열과 투쟁이 합쳐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암살과 파괴라는 방법은 자기희생적 결단 없이는 실천하기 어려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상해임시정부 한인애국단 소속으로 홍구공원에서 의열투쟁을 벌인 윤봉길 의사

과거 한국의 문화 전통에서 의열은 외적의 침입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희생적 결단으로서, 적을 물리쳐서 승리를 얻어야 하겠다는 성과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행동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역사학자들은 방법과 결과까지도 고려하는 독립투쟁의 한 방법이나 방략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용어의 문제가 제기된다. 암살과 파괴를 주요한 저항 혹은 투쟁의 방법으로 삼는 노선을 서양에서는 ‘테러리즘’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암살과 파괴를 통해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부르거나 독립운동을 테러리즘으로 부르는 견해도 있다. 의열투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독립운동사 연구자들 중에서도 의열투쟁이 방법에서는 테러리즘이지만, 목적과 동기에서는 테러리즘과 다르게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들은 테러리즘이라는 용어가 도덕적 가치 평가가 배제된 투쟁의 방법만을 지칭하는 객관적인 사회과학적 용어임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과연 테러 혹은 테러리즘이라는 용어가 가치중립적인 사회과학 혹은 정치학적 개념인가에 대해서는 숙고할 필요가 있다.

테러 혹은 테러리즘은 서구의 역사적 전통 속에서 형성된 용어이다. ‘테러’는 본래 공포 혹은 두려움을 뜻하는 용어로서 테러리즘이란 사람들을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하는 폭력 행위를 뜻하는 것이다. 테러리즘의 어원은 프랑스의 공포정치 시기 반대파를 폭력적으로 탄압하여 사회 전체에 극도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테러'는 현 체제 반대세력의 폭력적 행위 

이후 일반적으로는 국가 권력에 반대하는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그들의 행위에 부여되는 용어가 되었다. 반대파 암살은 테러의 대표적 행위의 하나였다. 또한 ‘백색테러’나 ‘적색테러’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서구 근대 역사에서 현 체제나 가치를 부정하는 반대세력의 정치사회적 행위에 대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9.11테러 이후 테러리즘과의 전쟁이 선포되고 일반인들조차도 테러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에 2004년 UN에서는 테러리즘을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하거나 정부 또는 국가로 하여금 특정 행동을 금지 또는 하도록 하기 위해 시민 또는 비전투원들에 대해 죽음 또는 심각한 신체적 상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정의하였다. 

 '의열단사건'으로 5년 5개월 감옥을 살고 출소한 의열단원 김시현 의사 관련 보도

오늘날 테러리즘은 평화와 안전을 해치는 집단적 폭력 시위, 정치적 목적으로 두려움을 야기하는 폭력적 범죄 행위, 두려움을 야기하는 의식적 계획, 온건한 테러리즘, 혁명을 추구하는 정치적 테러, 공식 기관이나 국가에 의한 테러리즘 등 다양한 형태로 분류되고 있다. 테러리즘은 암살과 파괴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며 기존의 체제와 질서를 전복하는 계획까지도 그리고 그 주체가 소규모 불법 단체이든 공식적인 국가이든 구별되지 않고 광의로 쓰이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테러 혹은 테러리즘이라는 용어는 가치중립적인 사회과학적 용어나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개념이야말로 국가나 사회라는 공동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떨게 하는 범죄 행위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 김기승 교수
따라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사회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테러 혹은 테러리즘이라는 용어를 원용하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이 용어를 도입하여 한국의 독립운동의 전체 혹은 어느 한 측면을 설명한다고 해서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학술적이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테러 혹은 테러리즘 용어는 약소민족과 국가를 군사적 경제적으로 침략하여 인류공동체를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만든 제국주의에 부과되어야 한다. 한국의 독립운동은 제국주의적 테러리즘에 저항하여 민족의 독립과 세계 평화라는 휴머니즘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의열투쟁이었다.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2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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