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두어달동안 금전적인 관계로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사는 동안 나의 행색은 꾀죄죄하게만 변해가따.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날은 물에 손을 대지 않으니 피부도 거무틱틱하니 암울한 색깔로 덮혀있었고, 머리는 떡이 되어서 젤이나 무스, 스프레이 없이 손으로만으로도 내 맘대로의 헤어스타일을 연출할수 있었다. 머리 근지러운건 머리에 피가 날정도로 긁다가 그 한계만 넘어서면 평온함을 찾을수가 있다. 한가지 문제가 되는건 백수의 필요충분조건인 담배를 피울때, 기름기가 좌르르르 흐르는 머리에 담뱃불이 옮겨붙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했던일이다. 남자니까 물론 수염도 나겠지... 나의 수염은 어떤 스타일일까? 임꺽정? 브레드피트? 용의 눈물의 이방원? 김흥국? 개인적으로는 용의 눈물의 이방원같은 수염을 좋아한다. 수염이 길어도 그렇게 깔끔한 이미지를 풍기다니...멋지다. 하지만 나의 실상은 이방원수염이 아니고, 이방수염이다. 대외적으로 활동할땐 항상 깔끔하게 수염을 깍지만, 대내적으로 활동할땐 얍쌉한 이미지를 벗어날수 없다. 하여간 초췌함의 최고봉인 나의 대내적인 만행은 대외적인 행사가 있을때에서야 비로소 끝이 난다. 어느날 3일째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가족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낙으로 살아가던 중, 따르릉 전화가 와따. 주머니가 비어있으면 절대 밖에 나가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성실한 나에게 "왈왈아 노올자아~" 라는 말을 하며 전화가 시작되어따. "중얼중얼..." "꿍얼꿍얼..." "속닥속닥..." "소근소근..." "궁시렁궁시렁" "왁자지껄~!" 딸깍.... 뚜뚜뚜뚜~~ 전화내용은 한마디로 친구가 모든 향락비용을 부담할테니 올차비만 들고 1시간 후에 대학로로 나오라는 파격적인 내용이어따. 정말 그 친구를 만난후로 처음으로 후회가 안되는 순간이어따. 대학로면 30분이면 갈수 있는 시간이다. 30분동안 준비하고 나가면 되지. 하지만 나의 꼬질꼬질함을 벗어나기엔 30분은 무리였다. 샤워하고 머리감고 이빨닦고 세수하고 ...룰루룰루~~~ 역시 묵은 때는 소요시간이 만만치않았다. 하여간 때는 뺐으니 광을 내야지...드라이하고 머리 손질하고 누더기를 벗고 멀쩡한 옷으로 갈아입으니 1시간이 흘렀다. 예상소요시간보다 무려 10분이나 단축시켰다. 추운날 밖에서 떨고 있을 녀석을 생각하니 애처로왔다. 거울앞에선 내모습...여자만이 변장에 능한건 아니다...-_-;;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가 문득 생각났다.(나름대로의 생각이지만서두...) 나가려고보니 오랫만에 얼굴에 물을 묻혀서 그런지 얼굴이 땡겼다. 머 얼굴에 바를꺼 없나??? 두리번두리번.... 얼마전 볼링장에 처음가신 아버님께서 보너스 스트라이크를 쳐 받아오신 남성용 스킨이 있길래 살펴보니, 뒷면에 영어로 잔뜩써있다. 음...-_-;; 적당량을 손에 묻혀 바르라는 뜻같다. 설마 적당량을 발에 묻혀서 얼굴에 바르라는 말은 아닐테지....그 폼을 상상하니 갑자기 웃겨서 여유있게 잠시 웃었다........우햐햐햐~ 날씨가 꽤 추운데 마로니에 공원엔 바람피할때나 있을까? 기다리는 녀석이 측은해졌다. 손에 잔뜩 쏟아서 탁탁~! 손뼉치고 얼굴에 탁~! 바르는데..... 나홀로집에에서 맥컬리컬킨이 왜 갑자기 소릴질렀는지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낄수 있었다. 댑따 얼굴이 따가웠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싸구려라서 그런가? 난 가끔 귀여운 내동생의 존슨즈베이비로션을 애용하기땜에 이건 첨써본거여따. 냄새도 갱장히 독했다.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 이정도로 독하면 불이 붙지않을까? 왜, 독한 위스키같은것두 불이 붙지않던가. 책상에 있던 잡물들을 우루루 책상밑으로 밀어서 떨어뜨려버리고 (무언가 하나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들린듯했지만 애써 신경쓰지 않았다.) 책상위에 그 스킨을 조금 흥건할 정도 따른다음...불을 찾았다. 바지주머니 속에 있는 라이터를 책상밑에 수북히 쌓인 잡물더미 속에서 열심히 찾았다. 찾다보니 신경질이 난다. 담배를 한가치 피워물고 나서 다시 찾기 시작했다. -_-;;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저능아같은 짓이어따. 잠시후 나의 오류를 깨달은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신경질을 잠시 부린후 책상위에 흘려놓은 스킨에 불을 붙이려고 보니 없다...무언가 물기가 마른 흔적만이 남았다. 놀라운 휘발성이다...그렇다면 불이 붙을 확률이 높다. 나의 실험정신에 이 추위속에서 기다리는 친구도 감탄사를 아끼지 않을것이다. 불을 붙였다..... 자세히 관찰을 해따...오옷~! 정말 불이 붙는다... 이쁜 파란 불꽃이 춤을 추며 내 눈앞에서 넘실거렸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불꽃에 손을 대봐따... 우씨~! 열라 뜨겁다. 후우~ 후우~ T_T 옛날 학창 시절이 불꽃속에서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때만해도 조개탄을 때던 원시적 난방시스템을 갖추고 있던 우리학교.... 내동생한테 물어보니 요즘은 따뜻한 바람 나오는 히터가 교실마다 있다고한다. 엄청나다... 하여간 그때 주번을 맡은 학생은 그날 아침 일찍 나와서 수위겸 석탄연료담당인 수위아저씨에게 반삽만 더 퍼달라고하다 댑따 욕먹고 하던 그시절...한참 모락모락 난로를 때고 있는데.... 한 녀석은 허겁지겁 앞문으로 등장한다.. "야~ 난로 땠냐? 헉헉..씨보롤~ 졸라 춥다..." 장갑낀체로 연통에다 손을 댄다.. "어? 이게 머야? 불 안지폈냐? 왜 안뜨거?" 이번엔 얼굴을 연통에다가 가져간다....-_-;; 반 아이들은 말리는 사람없이 가만히 그의 행동을 지켜본다..조마조마.. 치이이이이이이익~!!!! " 으아아아아악~!!! " 우리도 놀랬다...설마 얼굴을 연통에다 정말 댈줄이야.... 그것도 조심스럽게도 아니고 터프하게 한번에......-_-;; 그녀석은 그날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갔다. 다음날 얼굴에 붕대를 칭칭감고 등교를 했다. 그녀석은 졸업할때까지 모자란 놈의 대명사로 통하며 심한 이지메까지 당해야 했다. 심지어 다른 반 녀석들까지 그녀석을 구경하러 왔었다. 이름이 Y수문이었는데 어떻게 사는지 무척 궁금하다..... 아직도 넘실대는 파란 불꽃을 바라보며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다보니 어느덧 약속시간으로부터 한시간이 지나버리고 있었다. 이제 슬슬 출발해볼까? 후욱~! 불을 입으로 불어끈후.. 꺼진불을 다시 보고 문을 나서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친구녀석임에 틀림없다. 지금 받으면 나의 실험내용에 관해서 이야기할 틈도 없이 무지막지한 욕을 바가지로 퍼부을것이 틀림없다. 전화벨소리가 "띠리부울노마~ 띠리부울노마~" 하는 친구의 울부짖음으로 들렸다. 가뿐하게 돌아서며 문을 나섰다. 헉~! 졸라 춥다... 이 추위에 아직까지 기다리는 친구녀석의 인내심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약간의 시간이 경과한후... 혜화역에서 내려 마로니에 공원으로 향했다. 마로니에 공원 화장실앞에 꾸부정하게 서있는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친구는 고개를 바싹 숙여서 자기 옷속으로 입김을 불어넣고 있었다. 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친구에게 다가갔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낀 친구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헉~! 주디가 시퍼렇다...-_-;;; 날 발견한 친구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난 웃으며 나의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서 조심스레 스텝을 옮기며 튈 준비를 했다. 갑자기 분노의 눈빛이 번쩍이며 돌진해오는 녀석...-_-;; 나역시 몸을 돌리며 반대방향으로 졸라 뛰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전력질주를 하니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이 친구녀석이 주디가 얼어서인지 욕을 안하구 쫒아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날 참 추웠던 날이었는데.... 우린 땀을 뻘뻘흘리며 많은 사람들의 시선속에 우정을 다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