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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운문 - 어느 할아버지의 편지
게시물ID : readers_49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녹색낙타
추천 : 14
조회수 : 364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2/12/02 19:39:16

 

 할멈,

오늘 아침 일어나 나가보니

눈이 쌓여 있었소

 

 일흔하고도 몇 해를 더 두고 봐온 겨울날이건만은

소복히 쌓인 눈 위로 까치 지나간 자리

왜 그리 에리운지 모르겠소

 

 새벽엔 옆집 윤씨 영감이 구급차에 실려갔소

어찌나 소란하던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소

온 논밭에 붉은 요란이 지나가서야 겨우 눈이 감겼소

 

꿈 결에

그대를 본 듯도 싶소

 

 허이얗게 쌓인 눈을 보고 있자니

무얼 해야할지 떠오르질 않았소

그러다 아주 문득 할멈이 생각났소

굴 까러 가는 그 뒷모습이 보였소

 

 몇 날 전 큰 애가 귤박스를 사 들고 왔소

우리 엄마, 귤 참 좋아했는데

그 말에 당신 나와 봐 ─ 그대를 불렀소

아버지도 참

 큰 애가 아주 잘 컸소

 

 어제는 작은 애가 전화를 했소

아빠, 요번 주말에 내려갈게, 드시고 싶은 거 있어?

다른 건 됐고 감주랑 곶감이나 사와라 니 엄마 올 겨울도 그 타령 할 거다

.........

작은 애도 아주 잘 컸소

 

 할멈, 당신은 심심하지 않은지 모르겠소

이제쯤이면 우리 복순이 만났을 듯도 싶소

 

아, 글쎄, 얼마 전에 이 녀석이 쥐약을 먹었지 말이오.

고약한 좀도둑이 고기 속에 섞어 줘도 안 먹던 것을,

대문 앞에서 한 계절을 기다리다 덜컥 그러는데

어찌나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소

어찌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르겠소

 

 할멈, 거기는 그래, 살만 하오?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시오

이제는 당신 없이

소금이 어디에 있는지 쌀이 얼마나 남았는지

훤히 꿰고 있으니 말이오

 

 

 이제 앞마당 눈이라도 쓸러 나가야겠소

당신을 부르는 건 이제, 그만 해야겠소

 

그런데, 할멈,

몇 날을 더 기다려야

나를 데리러 오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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