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한국 자유주의자들의 한계 - 스탈린을 위한 변명
게시물ID : sisa_4980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차별곡선
추천 : 0/6
조회수 : 419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4/04/15 23:32:48
많은 사람들은 스탈린을 그저 잔혹한 독재자로만 기억하고 있다.

생각건대, 이러한 단순한 견해는
한국의 자유주의 경험의 일천함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프랑스는 2차대전 칙후
재판없이 나치협력자들을
즉결처형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과연 이러한 행위를 비민주적이라고 비난할 수만 있을까?

1789년 프랑스 혁명 직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의 위협을 받았다.

특히, 반혁명분자 부이에 장군(이 이름은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에도 나온다)은 오스트리아 국경근처에서
혁명정부를 끊임없이 위험했고,
외국군대가 파리로 오면 시민들을 모조리 죽일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결국, 프랑스 시민들은
탱플감옥 등에 갇혀있는
수만명의 구 귀족들에 대한 처형을 선택했다.

한때 고귀한 신분이었던 자들의 목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프랑스 시민들은 칼과 낫을 들고
반혁명분자들을 죽이기 위해 소리치고 다녔다.

이러한 대혼란을 겪으며
프랑스는 자유주의 혁명은
추상적인 주권재민사상 만으로 지켜질 수 없으며,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영국 등 외세와 피흘리며 싸워서야
지킬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했을 것이고,
이는 2차대전 직후의 잔혹한 나치협력자 숙청으로 나타났다.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 역시 마찬가지다.

레닌과 볼셰비키, 붉은군대의 사회주의 혁명은
1차세계대전 중에 일어났다.

연합군 측에서 싸우던 제정러시아가 붕괴되고
케렌스치의  임시정부를 전복시킨 소비에트 정부는 전쟁에서 발을 뺐으며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국가들은
사회주의 탄압, 러시아 영토분할, 연합군 배신 등 가지가지 이유로
반혁명분자인 백군을 지원하며 사실상의 농업중심의 후진국 소련을 위협했다.

결국 소련은 승리했지만,
여기서 교훈을 얻은 스탈린은
전세계가 대공황의 늪에서 허우적 거릴때

193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소련을 미국에 이은 제2의 공업국으로 탈바꿈 시켰고
(소련은 세계대공황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엄청난 경제성장률을 달성하였다)
외세와 연관되었다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반혁명분자들을 처단했다.

원리, 원칙 물론 좋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이라는 것은 때로는
우리에게 직관적 정치감각이라는 것을 선사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택동의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이 독재의 산물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소련과의 혁명노선대립과
자본주의 국가들의 압력이 강화되고 있던 시기
중국은 고립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고
모택동의 노선을 계승한 등소평(그 스스로가 그렇게 공언하였다. 즉 과학적 군사적 사상적으로 사회주의적 무장을 통해
제국주의의 침략야욕을 꺾은 이후에야 그들의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모택동과 등소평의 공통된 노선이었다)
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세계 2대 강국 중국이 시작되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대륙간탄도탄과 핵무장을 통해
미국의 침략을 원천봉쇄하여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사회주의를 수호한 후에야
혁명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들의 노선에 비추어 보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국의 자유주의는 미국에 의해 이식된 수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은
한번도 피를 흘려본 적이 없다.

그들은 그저 민중들이 독재정권과 싸워 흘린 피에 의해
자신의 명성을 쌓아갔을 뿐이었다.

김대중 등의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그렇다면, 문재인이 대선토론회때 왜 NLL에 대해 재대로 대답조차 할 수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스스로 목숨을 걸고 싸울 의지도 용기도 없다.

노무현, 문재인, 안철수를 극복하지 않고는
한국의 자유주의는 미국에 의해 이식된 자유주의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지금껏 그래왔던 것 처럼
추상적인 원칙만을 얘기할 뿐
그 자신의 투쟁을 통한 현실적인 교훈을 통해
국민을 이끌 수 있는 지도력이 없다.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가들이
새누리당의 종북몰이에 그토록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김대중, 노무현때의 대북정책 수준 조차 강력하게 추진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노무현정부의 비서실장 이면서도
대선토론회에서 남북관계 문제에 대해 추상명사만을 나열하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물론 문재인을 찍어주기는 했지만 너무나 찝찝한 투표였다)

참으로 슬픈일이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은 국민을 이끌 지도력이 없다.
촛불에서 그들이 취한 행동은 정치공학에서 나온 꼼수에 불과하였을 뿐,

한국의 자유주의를 이루려는 국민의 열의와
단 한순간도 떨어져 있지 않았던 정당은 오직 통진당 뿐이 아니었던가.

나는 통진당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한국의 자유주의가 실현되는데에
분단논리, 종북몰이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는 바,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 새누리당이 자유주의를 탄압한 명분을
대충말 살펴봐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통진당이 흘리는 피에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사람중에 한명이다.

한국의 자유주의는 미국에 의해 이식된 수준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완성시켜나갈 것인가?

나는 스탈린을 위한 변명을 통해
이 질문에 조금이라도 근접하고 싶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