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트와일라잇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배경을 바라봤다.
‘다들 얼마나 변했을까?’
생각하며 사과파이를 입에 가져갔다.
“트와일라잇”
한쪽에서 배를 두드리고 있던 스파이크가 트와일라잇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 스파이크를 바라본 트와일라잇은 딸기케이크를 입에 가져가며 말했다.
“왜 그래? 스파이크”
“너무 많이 먹는거 아냐?”
스파이크의 말에 트와일라잇은 들고 있던 케이크를 내려놨다.
“많이 먹는다고? 내가?”
주변을 둘러 보자 빈 접시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열차 직원이 새로운 음식을 카트에 담아 가져오고 있었다.
“저. 공주님.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재료가 떨어졌어요.”
트와일라잇은 당황했다. 언제 이렇게 많이 먹었지?
“아... 그... 그렇군요. 수고했어요.”
가져온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빈 접시를 챙겨 나가는 직원이 문을 닫자 벽 너머로 ‘세상에 공주가...’ 하는 말이 작게 들려왔다. 볼이 화끈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트와일라잇은 자신이 먹었음이 분명한 주변에 널린 케이크며 푸딩등의 파편과 방금까지 산처럼 쌓여 있던 그릇들, 그리고 해치운 양에 비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포만감에 더욱 당황했다.
“스파이크. 내가 언제부터 먹기 시작한거야?”
“열차에 타자마자야. 트와일라잇. 네가 그렇게 많이 먹는 건 처음 봐.”
“열차에 타고나서 지금까지 계속?”
스파이크는 대답대신 어깨를 들석였다. 그 때 문 밖에서 포니빌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트와일라잇은 의문을 뇌리 구석에 집어넣고 널려있던 파편들을 마법으로 한쪽 구석에 몰아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생각하자.’
“스파이크.”
“알아. 안다구.”
스파이크는 여행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일어섰다.
열차가 포니빌에 도착하고 트와일라잇이 내려서자 폭죽이 터지며, 검은 그림자가 트와일라잇을 덥쳤다.
“어서와! 트와일라잇. 세상에 변한게 없네. 역시 공주야.”
“핑키 파이!”
트와일라잇의 몸을 감다시피하며 끌어안은 건 핑키 파이였다.
“핑키 파이. 정말 보고 싶었어.”
트와일라잇은 놀랐지만 예측이 불가능한 오랜 친구를 마주 끌어 안았다.
“세상에. 기차로 올 거라고 얘기 안했는데 어떻게 안거야?”
“그냥 그럴 거 같았어.”
“하긴. 넌 핑키 파이니까.”
트와일라잇은 납득했다.
“우! 우!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 어서가자. 트와일라잇.”
“그래.”
핑키 파이와 트와일라잇이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트와일라잇. 물건 다 내렸...... 트와일라잇?”
수많은 짐과 함께 텅 빈 역을 바라보는 스파이크의 옆으로 싸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 * *
하늘을 바라보며 트와일라잇을 기다리던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한 트와일라잇은 그녀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포니빌의 주민들을 바라보며 단상에 올라 방문사를 읊었다.
행사가 끝난 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추억을 공유하며 함께 보낸 트와일라잇은 그녀가 포니빌에 있을 때 거주하던 도서관에 거주하게 됐다.
그 다음날부터 포니빌의 주민들은 환호했다. 황혼의 공주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런 저런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기 떄문이다. 작게는 싸움을 중재하며 양쪽 모두 납득 할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놨고, 크게는 수많은 유니콘의 힘이 필요해 보고만 있었던 댐의 수리를 완벽히 끝내버렸다. 주민들의 이런저런 고민거리도 끝없는 지식을 자랑하며 적절한 조언과 행동을 알려주는 등, 그녀는 단 시일 내에 포니빌에서 가장 사랑받는 공주가 되었다.
그리고 몇 일이 지나갔다.
탕!
애플 볼스는 단번에 들이켜 비워진 술잔을 탁자에 세차게 내리쳤다.
“도대체 뭐야? 그 공주.”
꽤나 많이 마셨는지 발그레한 볼과 흔들리는 몸은 그가 술에 취해 있슴을 알려줬다. 모든 이가 그렇듯이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볼스의 맞은편엔 푸른색의 포니가 앉아 취한 볼스를 바라보며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진정해. 볼스. 왕실모독죄로 잡아 넣을 수 있다. 아무리 내가 네 친구라지만 지킬 건 지켜다오.”
“어이구. 이거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네. 왕실모독죄? 당장 잡아가시지?”
푸른색의 포니는 한숨을 쉬었다. 평소엔 멀쩡한 녀석이 술만 들어가면 이렇다니까.
“적당히 해. 볼스”
“이봐. 주니어. 아무래도 그 공주 이상해.“
“주니어가 아니라 레인보우 대쉬다. 말해 봐.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포니빌의 모든 주민들은 그녀를 칭송하고 있다.”
푸른색의 포니는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원더볼츠의 수석 교관이 된 레인보우 대쉬가 같은 원더볼츠 단원인 소어린과 연애끝에 결혼하고 얻은 아들로, 레인보우 대쉬와 마찮가지로 푸른색의 털과 무지개색의 갈기와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소어린은 다른 이름을 지어주려 했지만, 레인보우 대쉬는 이 아이는 역시 나의 아이라며 자신의 이름을 물려주길 원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원더볼츠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주니어는 그런 레인보우 대쉬의 기대를 저버리고 로얄가드에 지원해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황혼의 공주. 즉,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의 호위를 위해 뒤늦게 포니빌에 파견된 로얄가드 중 하나였다. 그가 뽑힌 것은 단지 포니빌이 고향이라는 이유일 뿐이었지만...
“그날 공주가 왔을 때, 단상 위의 공주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어.”
“그래서?”
애플 볼스는 주니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갖다 대며 나직히 속삭였다.
“공포를 느꼈지.”
“공포?”
“그래. 공포. 너도 알다시피 난 겁이 없는 편이야. 에버프리 숲도 나에겐 공포의 대상이 아니지. 그런 내가 그 날 벌벌 떨었어. 단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말야.”
“결국... 단지 네가 겁 먹었다는 것 뿐이군. 어처구니 없는 이유다.”
애플 볼스는 몸에 힘을 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렇지. 어처구니 없어. 누구도 내 말을 믿지 않아. 너처럼...”
“누구라도 그럴거라 생각한다만...”
주니어가 잔을 들이키고 내려놨다. 지나가는 여급에게 추가 주문을 한 그가 볼스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봤다.
“네 감이 뛰어난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이유가 되진 못해. 캔틀롯에서 내가 본 공주님은 자애로운 분이셨다.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지만 다른 포니들에게 불편을 끼치진 않지.”
애플 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친구는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다. 정직함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어머니 애플잭은 평생 거짓말을 한 적이 없지만, 자신은 어릴 적부터 이런저런 일들을 회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왔다. 반면 눈 앞의 이 친구는 자신이 아니라 이 녀석이 오히려 어머니의 아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곧은 태도를 보여왔다. 틀림없이 그의 말은 진실일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알아. 네 말은 믿을 수 있지. 포니빌에서 공주의 인기가 날로 높아져가는 것도 알고 있고. 휘유~ 그 마법이라니. 그 댐을 그렇게 순식간에 고쳐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어.”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님의 재능은 마법이다. 다른 공주님들도 뛰어난 마법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트와일라잇 공주님 만큼은 아니지.”
“그래도 말야. 난 그녀를 볼 때마다 섬짓해. 소름이 돋는다구. 내 가슴이 알려주고 있단 말야. 그녀에겐 뭔가 있다고...”
하소연 하듯이 말하는 애플 볼스를 바라보던 주니어는 때 마침 여급이 술을 가져오자 그녀를 불러 세웠다.
“잠시만, 아가씨.”
“네? 주문하실 게 더 있나요?”
앙증맞은 에이프런을 걸친 여급은 주니어의 말에 반쯤 돌렸던 몸을 바로 세웠다.
“지금 포니빌에 계신 공주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쳇. 헌팅인 줄 알았는데...’
“네? 뭐라고 말씀하셨죠?”
여급이 작게 중얼거린 말을 듣지 못한 주니어는 되물었고 여급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앞발을 흔들고 주니어의 질문에 대답했다.
“정말 아름다운 분이죠. 그 외모하며, 뿔도 그렇고 날개도 정말 아름답구요. 왕족이래서 거만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고, 얼마 전엔 제 고민도 말끔히 해결해 주셨다니까요.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니는 남자 하나가 있었는데 공주님이 나서자 순식간에 해결됐어요. 그리고...”
“아. 그 정도면 충분하군요.”
답례로 은화 하나를 건넨 주니어는 볼스를 돌아봤다.
“이게 보통 포니빌 주민들의 인식이다. 난 네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만...”
“알아. 안다구!”
애플 볼스는 주니어를 노려봤다.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상하단 것을. 그 날 이후 몇 일 동안 알게 모르게 공주를 쫓아다닌 애플 볼스는 그녀에게서 아무런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자신이 잘못 생각한 건지? 단지 몸에 이상이 있었던 건 아닌가 의심해 본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그녀의 눈을 볼 때마다 그런 의문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젠장. 모르겠다.
결국 머릿속이 엉망이 된 애플 볼스는 신경질적으로 눈 앞의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어이. 그걸 그렇게 마시면...”
“무...머? 무슌 소뤼...어...내 마리 에... 어어?”
애플 볼스는 갑자기 주니어의 머리가 아래로 내려가는 걸 봤다. 곧이어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그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콰당!
의자채로 뒤로 넘어가 바닥에 대자로 뻗은 애플 볼스를 바라보던 레인보우 대쉬 주니어는 쓴웃음을 지었다.
“바보자식. 그건 럼주다.”
* * *
애플 볼스는 몸이 흔들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땅이 옆으로 흐르고 있었다. 땅이 옆으로 흘러?
고개를 틀자 주니어의 뒤통수가 보였다. 그리고 몸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화끈한 느낌이...
“우에에엑!”
주니어의 발에 토했다.
“우왓! 이 망할 자식. 뭐하는 거야!”
발에서 전해오는 뜨거운 느낌에 주니어는 애플 볼스를 던져 버렸다.
“크엑. 야! 이 자식아.”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이 자식아.”
주니어의 앞발이 강한 힘을 담고 그대로 애플 볼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악! 소리를 내며 굴러간 애플 볼스는...
“크어어억! 우엑!”
땅을 부여잡고 다시 토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토악질 하던 애플 볼스가 토악질을 멈추자, 주니어가 다가왔다.
“시원하냐? 이 망할 자식. 이런 놈을 친구라고. 술 먹고 뻗은 거 챙겨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 망할 자식아.”
“헤헤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바닥에 주저앉아 비굴한 웃음을 짓는 애플 볼스를 주니어는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친구? 누가? 누구의? 나이는 내가 더 많다만.”
“헤헤. 형님. 화 푸시죠.”
애플 볼스는 가까이 다가온 주니어의 발을 부여잡고 얼굴을 부볐다. 당연히 입가에 묻어있던 파편들이 주니어의 발에 묻었다.
“으악! 이 미친 자식이 끝까지.”
주니어가 기겁하며 내지른 발을 땅을 굴러 피한 애플 볼스가 일어나 도망치며 외쳤다.
“날 내팽개친 복수다!”
“거기 서! 이 자식. 내년 오늘 네놈의 제사를 지내고 말 테다!”
“오! 그 거짓말 진짜냐? 으헤헤헤.”
주니어에게 자신의 엉덩이를 보이며 두드리던 애플 볼스는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주니어의 모습에 기겁하며 빠르게 발을 놀렸다. 길 옆의 숲으로 들어가 한 동안 쫓고 쫓기던 둘이 발걸음을 멈춘 것은 숲 안쪽의 작은 연못이었다.
“주니어. 발이나 씻자구. 냄새 나지 않아?”
“네놈 짓이다만.”
“그런 사소한 건 잊어버려. 여기서 시원하게 씻고... 어?”
애플 볼스가 연못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방금 전까지 하늘에 떠 있던 커다란 보름달이 비추는 빛으로 밝던 주변이,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비가 쏟아졌다.
“씻을 필요가 없어졌는걸?”
비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던 애플 볼스가 허탈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늘 밤에 비가 예보되어 있었나?”
“응?”
하늘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주니어를 본 애플 볼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잠깐. 이번 주는 내내 맑음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
“예보를 잘못했나? 웬 비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애플 볼스는 문득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던 친구가 조용하단 걸 알아챘다.
“어이. 주니...”
“쉿!”
다급한 목소리로 볼스의 입을 닫게 만든 주니어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분위기가 변한 주니어의 모습에 조심스럽게 곁에 다가간 볼스가 속삭였다.
“왜 그래?”
“비명 소리다. 따라와. 볼스”
“뭐? 비소리 밖에 안 들리...어? 주니어!”
심각한 얼굴의 주니어는 볼스에게 따르라 말하고 숲 안쪽을 향해 급히 달려갔다.
“젠장! 대단한 일진이군. 기다려! 주니어.”
애플 볼스는 주니어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달렸다. 볼스가 얼마 달리지 않아 나무 옆에 서 있는 주니어를 발견했고 속도를 줄인 애블 볼스가 그에게 다가갔다.
“어이? 왜 그래?”
“......”
“야. 주니......억!?”
친우의 이름을 감탄사로 끝내버리는 위업을 달성한 애플 볼스에게 주니어의 앞, 나무둥치에 기대어 앉아 있는 포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지만, 몸 이곳 저곳에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상처와 무언가에 관통 당한 가슴. 그리고 아마 발톱 같은 것에 쥐어뜯긴 목. 상처에서 흘러 나오는 피로 추정되는 검은 액체..
로얄가드의 복장을 한 갈색의 포니가 온 몸에 상처를 입은 채 쓰러져 있었다. 입에선 피를 토하며 간절한 눈빛으로 주니어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힘겹게 입을 열고 닫던 그는 잠시 후,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숨을 멈추고 말았다.
“젤너...!”
주니어의 입에서 이젠 시체가 된 로얄가드의 이름으로 생각되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애플 볼스는 비통한 표정의 주니어와 ‘젤너’였던 포니의 시체를 바라보며 포니빌에 큰 사건이 시작될 거란 ‘예감’을 느꼈다.
** 속도좀 붙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