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면단위 외삼촌 댁에 겨울 나들이를 가면, 난 항상 바닥이 차다고 투덜거렸다. 그때마다 외삼촌은 주전자를 버너 위에 얹어 물을 끓여 방을 데우시면서, 물만 끓여선 즐겁지가 않다며 굳이 예전에 말려 놓은 꽂을 물에 넣어 끓이시고는 '백한아, 어때 향기 나지?' 물으셨다.
사실 별 향기는 없었다. 향기가 있었더래도 그 향기보다는 따뜻한 김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천진난만하게 즐거워하는 외삼촌의 표정에 '네, 어떤 꽃이에요?'하고 물었다. 외삼촌은 맞춰보라고 했고, 나는 외삼촌이 그게 어떤 꽃인지 알려주실 때까지 아는 꽃이름을 댔다. '국화에요? 코스모스? 에잉, 모르겠어요.' 하니, 외삼촌은 무척이나 즐겁게 웃으시고는 '나중에 백한이가 소주 한 주전자 가져다 주면 알려줄게' 하셨다.
물이 가득 찬 주전자 위에 꽃잎 몇 장으로 밤을 나던 그 겨울이 지나고도, 열 댓 번의 겨울이 지나서야 소주 한 주전자를 살 수 있는 나이가 됐다. 대학에 입학하고 맞은 첫 방학의 끄트머리에서 벌초라도 할 겸 외삼촌의 묘소에 들렀다. 술이 과해 돌아가신 분께 차마 소주를 한 주전자나 드리진 못하고 평소 반주로 즐겨 드셨다던 막걸리를 한 병만 사서 뿌려드렸다.
오늘은 날씨는 그 겨울, 꽃잎이 둥둥 떠 있던 주전자를 끓여 데웠던 그 방마냥 무척이나 촉촉하고 너무 따뜻했다. 그때 그 꽃잎이 뭐였는지 지금껏 모르는 건, 외삼촌이 그렇게 좋아하시던 소주가 아니라, 막걸리를 뿌려서 그런 모양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