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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오거리의 까마귀들, 1. 태양을 위하여 - 2
게시물ID : pony_377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불가필
추천 : 5
조회수 : 33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3/24 21:04:52

 가만히 햇볕을 맞고만 있어도 기분 좋은 오후였다. 하늘은 맑고 바람도 상쾌했으나, 늙고 음흉한데다가 치졸하기까지 한 유니콘들에게 한참이나 시달리다 벗어난 미하일의 구겨진 얼굴을 도로 무표정한 그것으로 돌려놓지는 못했다. 그가 눈동자에 노기(怒氣)를 품고 지나가자 왕실 입구에서 졸던 문지기들도 복도에 메뚜기 떼처럼 모인 관리들도 입을 다물고 길을 비켜주었다. 성 뒤뜰에 가꿔놓은 정원에 도착할 때까지 그의 화는 커지지 않았고 줄지도 않았다.
 아무리 자유롭게 행동하는 근위대의 부대장이라 할지라도 나라의 가장 어른 되는 이 앞에서 노여움을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봄의 일광과 정원의 풍광을 감상하며, 그는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표정이 어느 정도 수습되자 미하일은 예의 무미건조한 음성을 내며 잔디밭을 걸었다.
 “보고 드립니다, 공주님.”
 “어머, 차나 마시면서 쉬는 중이었는데…….”
 늘 이런 식이었다. 근위대의 일은 본디 대장이 보고하되, 이번처럼 어쩌다 그가 대신 보고하게 되는 일이 생기면 공주는 집무를 맡고 있다가도 어떻게 알았는지 티타임을 즐긴다, 낮잠을 잔다, 휴식을 취하다가 그가 찾아오면 휴식을 방해했다고 공연히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이미 수차례나 당해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그럴 때마다 그의 얼굴은 송구스러워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 날은 경우가 조금 달랐다.
 “죄송합니다만, 공주님. 근위대가 수도 캔틀롯에 숨어 있던 역당들을 급습하여 대거 나포한 경위에 대해,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가 꿈쩍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청색 외투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같은 것이 나오더니 그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유니콘의 마법이었다.
 목을 가다듬은 미하일이 마악 첫 줄을 읽으려는 순간 보고서는 다시 접혀 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당황한 그의 눈에 공주님의 자태가 미소와 함께 들어서, 그는 다시금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미하일. 그대는, 샤이닝 아머와 달리 직접 작전에 참여했지요?”
 “그렇습니다, 공주님.”
 “이 보고서는 그 얘가 썼을 테고요.”
 “그렇습니다, 공주님.”
 찻잔을 내려놓은 셀레스티아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 말밖엔 못하나요. 인형도 아니고. 작은 불평을 그는 흘려들었다.
 “그건 별로 궁금하지 않아요. 그보단, 현장에 있었던 포니의 말을 듣고 싶은걸요.”
 그는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치밀한 수사 끝에 역도들이 모이는 장소와 시각을 알아냈으며, 그대로 덮쳐 잡아들었다. 반항해서, 잡았다. 사건의 앞과 뒤가 분명해서 떠올리고 말 것도 없다. 그럼에도 공주는 그에게 묻고 있었다.
 “죽은 포니가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씩씩하고 자신감에 찬 목소리다. 역심을 품은 공화주의자들의 우두머리들을 수십이나 잡아들이면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았다는 것은 근위대의 오랜 역사를 통틀어 고려해도 비견할 사례가 몇 없는 혁혁한 전과였다.
 그러나 공주는 기뻐하지 않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미하일은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공주는 그것만을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공화주의자들이, 죽었나요. 공주는 그에게 그것을 묻고 있었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기억 저편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하다. 공주님, 저들은 당신을 몰아내려 합니다. 당신의 목을 비틀고 사지를 바수려 합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는 묻지도 못했다. 그는 수많은 포니를 죽인 학살범이었다. 중죄수 주제에 감히 공주를 똑바로 쳐다볼 용기와 뻔뻔함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
 “작전을 수행하는 중 테믈라딘의 아들 요루즈가 부상당한 몸으로 강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하기는 했습니다. 그를…… 쏘른의 아들 일리사이가 그를 구해내긴 했지만 말입니다.”
 효과는 신통했다. 공주가 그의 다른 말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공주는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일리사이가? 호오, 내가 포니를 잘못 봤던 모양이군요.”
 “그는 맞아 죽을 위기에 처했음에도 전우를 버리고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없는 말에 마음에 없는 설명을 덧붙일수록 그는 점점 더 비참한 몰골로 변해갔다.
 “상을, 훈장을 주어야겠군요.”
 현명한 결정이십니다, 공주님. 이로써 저희 근위대는 더욱 용기백배하여 공주님의 적을 물리치고 공주님과 이 나라를 수호하도록 하겠습니다. 미하일이 개미만한 소리로 말해서, 그 말은 공주에게까지 닿지 않았다.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공주는 찻잔을 들어 허락했다. 편히 쉬십시오, 공주님. 뒤돌아선 미하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공주는 그가 염려한 것을 묻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가 단순히 확대해석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애써 고개를 털었다. 그는 죄 지은 것이 없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곧은길을 걸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의 마음도 한층 편해지었다. 공주에게서 멀어질수록 그의 편안함은 커져갔고 그의 어깨는 좁게 움츠러들었다.
 그러고 보니, 보고서를 올리지 못했다. 근위대장에게 ‘내가 까먹었으니 네가 드리도록 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보고서만 전하기로 결심하고 그가 몸을 돌리자 청아한 미성이 그를 맞았다.
 “난 그대를 믿는답니다. 미하일, 다음부터는 그들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이며 그들 또한 내 마음에 드는 백성이라는 것을 생각하세요.”
 그의 얼굴이 다시 붉어진다. 그가 소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엄하게도 대답도 하지 않고, 울음을 참으며, 미하일은 보고서고 뭐고 전력으로 질주해 공주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헛, 부대장님 아니십니까.”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꽃향기가 나는 마차 위에 있었고, 그가 탄 마차는 그와 같은 근위대에 의해 주행을 멈추고 있었다.
 미하일은 한 조를 이룬 세 포니를 모두 알고 있었으며 그중 가운데의 포니는 특히 잘 알고 있었다. 요루즈. 죽음의 문턱을 밟고 온 포니의 이름이 그의 이름이었다.
 “난 자네를 믿네, 요루즈.”
 요루즈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그도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건넸는지 알지 못했다.
 “편히, 며칠 쉬라고 했는데.”
 요루즈는 머쓱하게 웃었다. 상처들이 낫지 않아 지금도 머리에 날개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몸이었다. 안정을 취해야 하긴 하지만 한가한 태양구 경비로 일하는 중이니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을 터였다.
 “막스 녀석 보시면, 저 대신 좀 고맙다고 해 주십시오.”
 미하일은 쓴웃음을 지으며 알았다고 대답하였다.
 둘 사이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은 마부는 놀라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그가 태운 손님은 그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높으신 나으리이고, 그의 아들이 툭하면 얘기를 늘어놓는 직속상관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입에서 그의 아들 이야기가 나왔다. 늙은이는 놀랍고 감격스러워서, 주제도 모르고 불쑥 말을 꺼냈다.
 “이야! 우리 막스가 주둥이만 열었다 험 나오시는 어른들이시구만요!”
 그는 말을 하고 나서야 끼지 말아야 할 자리에 끼어들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어깨를 움츠렸다. 충혈된 눈이 불안으로 주변을 마구 훔쳐보았다.
 “막스 아버님 되십니까?”
 다행히 나으리들은 그를 야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어깨가 도로 펴진 것은 또 아니었다.
 요루즈라 불린 근위대원이 늙은이의 앞발을 덥석 잡았다. 갑작스럽고 불편해 그 쪽에서 먼저 놓으려 했으나, 요루즈는 그의 발을 꽉 잡고 좀체 놓아주질 않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막스가 제 생명을 구해주었고 곧 어르신이 구해주신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순박하게 웃었다. 아들만한 나릿님에게 어르신 소리를 들어서는 아니었다. 요루즈의 입에서 이름이 불릴 때마다 그의 마음은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해졌다.
 앞발을 붙잡힌 채로 마부는 고개를 돌려 미하일을 올려다보았다. 늙고 무지한 포니의 눈은 기쁨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미하일은 감히 그 빛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니깐 성함이, 미하일 부대장님. 야기는 많이도 들었습니다. 우리 막스, 부족한 머저리 놈 데리고 다니시느라구 수고 참 억수로 허셨겠어요.”
 그가 보니 미하일은 어째선지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래……. 막스는, 뭘 하고 있습니까?”
 늙은 어스 포니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눈도 빛을 잃고 죽어갔다.
 “그기, 지 방 뜨뜻허게 허고선 자알 쉬고 있습니더.”
 미하일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혹시 자기가 한 말이 나으리의 비위를 상하게 했나 싶어 마부는 입을 다물고 눈치를 살폈다. 어색한 침묵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요루즈가 어색하게 말했다.
 “그런데, 저, 부대장님. 이곳은 어쩐 일로?”
 그제야 미하일은 그가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 상기해냈다. 내 정신 좀 보게. 그는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왕립…… 병원에 가는 중이네.”
 근위병들은 별 말 없이 길을 비켜주었다. 그들의 금빛 갑옷 너머로 호화로운 복장의 포니들이 지나간다. 미하일이 흘낏 보았을 때 마부는 여전히 불안해하는 기색만 보이고 있었다.
 마차는 곧 다시 출발했다. 늙은 마부는 다른 것들을 잊고 달리는 데에 다시 집중하였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미하일은 어스 포니의 뒤통수를 보며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해도 그는 여전히 죄수의 몸이었다. 오히려 죄가 커지는 듯했다. 그런 그가 셀레스티아 공주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송구스러워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왕가동의 유니콘들과, 페가수스들이 보인다. 왕가동은 죄 지은 자들을 모아놓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그는 흐느끼고 싶어졌다.
 멀리로 거대한 병원이 보인다. 늙은이는 무표정했다. 아울러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 울음소리가 그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마구 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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