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관계 먼저 확인합시다. 5월 17일 계엄령 선포, 5월 18일에는 계엄 반대 시위가 있었습니다. 무장한 계엄군은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했고요. 이날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계엄군의 진압봉에 맞아서 죽었다고 하더군요. 차량시위는 20일, 21일에는 계엄군의 발포로 56명 사망에 500여 명 부상. 시민들이 무장의 필요성을 느낀 게 21일부터였고, 이날 장갑차와 트럭을 탈취해 무기고를 점거, 무장했다고 합니다. 계엄군은 시민이 총을 들고 무장한 상태여서 조준사격을 한 게 아닙니다. 그들이 조준사격을 해서 시민들이 무장한 거지.>
이 전후관계로 파악할 수 있는 건, 5.18은 절대 정부 전복을 의도하고서 이뤄진 게 아니라는 겁니다. 북한 세력의 개입은 황장엽의 회고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광주 소식을 듣고 앗싸 좋구나, 를 외치며 간첩 투입을 준비했는데 준비가 끝나고 보니까 상황이 종료돼서 실패했다고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