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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 역사 (19) 전쟁과 모르핀 (파란 글자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모르핀 중독에 대해 알려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르핀 중독자들의 건강 악화에 관한 사례들이 발표되었다. 수척한 외모와 쇠약함, 성 능력 또는 욕구의 상실, 변비 등 중독 증상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당시 모르핀은 여가 목적인 기호품 형태로 사용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이를 증명하듯 삼류 통속소설 작가들은 모르핀을 죽음의 관념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이에 대해 올버트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르핀 중독자의 얼굴 변화
'피하주사를 통한 모르핀 투약이 신파조의 도구로 선정적인 소설에 도입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유행의 최고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 우리 중 한 사람이 오래지 않아 주사기를 손에 든 채 사라지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별들에게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모르핀 중독은 소설을 많이 판매하기 위한 도구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이 은유적인 표현을 할 때도 사용되었다. 1886년에 영국의 랜돌프 처칠 경은 글래드스턴(영국의 정치가, 수상직을 4번 역임)이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것을 모르핀을 먹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처칠 경은 사실을 모르고 은유적 표현으로 이렇게 말했지만 글래드스턴은 실제로 의회에서 연설할 때 아편제를 커피에 타서 먹었다.
랜돌프 처칠과 글래드스턴 아편 연구에 대한 중요한 연구 성과가 유태계 독일인 의사인 에드워드 레빈스타인에 의해 나왔다. 1878년 영국에서 간행된 그의 책 <모르핀 중독>은 모르핀의 증후, 병인(病因), 예후(豫後), 에방법에 대해 자세히 적고 있다. 그리고 노먼 커 박사는 1876년 습관성 중독자들의 치료를 위한 법률을 제정할 목적으로 협회를 설립했다. 9년 후에 그 협회는 병적인 음주벽 연구를 위한 협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협회의 주된 목적은 알콜 중독을 줄이는 데 있었다. 설립자인 노먼 커 박사는 비록 치료하기는 훨씬 더 힘들지만 아편 중독이 알콜 중독보다 덜 위험하다고 믿고 있었다.
이 협회가 이룩한 가장 큰 성과는 음주나 약품으로 인해 중독되는 것은 명백한 질병이며 의학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개념을 널리 퍼뜨렸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