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2009년 9월 MB가 해외에서 "북한에 준 지원금이 핵무기에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자
국내 언론들이 얼마를 퍼줬네~ 하면서 맞장구 쳤지요.
시간차를 두고,
한국경제 2010. 1. 31 자 기사 <" 北, 경협자금 70억달러로 핵무기 만들었다"…美의회 조사국 보고서 >에서는
심지어 북핵전문가 래리 닉시의 미국 의회 조사국 보고서 (CRS)를 인용하여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핵개발용 퍼주기설을 증명하려 합니다.
닉시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과 2001년 있었던 김대중 정부의 현대그룹을 통한 자금지원 때문에
북한의 우라늄 관련 수입이 가속화했고 결론적으로 "북한의 핵무기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책임"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실제로 찾아서
래리 닉시가 2010년 1월에 작성한 CRS 보고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외교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Development and Diplomacy)' (33p)를
살펴보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일지,
그리고 자금원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은 전혀 다른 스토리가 나옵니다.
핵무기 생산 시설
-1960년대 소련이 영변에 실험용 원자력반응로 설치해줌
“The U.S.S.R. provided North Korea with a small research reactor in the 1960s”
-1984년부터 영변, 태천에 건설 시작한 원자력반응로 두 개
-1987년에 완공된 원자력반응로 하나 (위치 언급 없음)
-플루토늄 재가공 공장 하나 (연도 언급 없음)
-1990년 작성된 소련 KGB 리포트는 북한이 핵폭탄 제조 장비 하나를 완비했다고 보고
인력
-1991년 소련 붕괴 때까지 소련에서 북한 핵과학자들이 훈련
“North Korean nuclear scientists continued to receive training in the U.S.S.R. up to the demise of the Soviet Union in December 1991”
-1990년대 러시아와 동독의 과학자들이 북한에 있었음
“East German and Russian nuclear and missile scientists reportedly were in North Korea throughout the 1990s”
재료확보와 재료 가공 기술/장비
-1989년 12~24kg의 플루토늄 추출 추정 (CIA, DIA 12kg, 한국 정부 7~22kg, 일본 정부는 16~24kg 추정)
-1990~1991년 20kg의 플루토늄을 추출 추정 (러시아 국방성 추정)
-1993년 러시아로부터 플루토늄 56kg을 밀수 (독일의 Stern지 보도)
-1993년 러시아에서 우라늄 밀수
-1993~2003년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어 칸(A. Q. Khan)이 13차례 방문하여 고농축 우라늄 기술 전수.
-1996년 파키스탄의 우라늄 농축 기술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기술의 맞교환 합의 (황장엽 박사 증언 인용)
-1998년부터 고농축 우라늄 제조용 부품과 장비 수입 시작, 그 이후로 수입이 증가하는 추세
-1999년부터 중국 기업이 미사일 프로그램 관련 재료와 부품 공급
-2003년 25kg의 플루토늄 추출 추정 (지그프리트 헤커 박사 보고)
발사기술(이 부분은 네이버 백과사전도 참조했음)
-1970년대 초부터 탄도미사일 개발
-1980년대 스커드 미사일 업그레이드하면서 단계적으로 사정거리를 늘림-한국이 사정권에 포함됨
-1993년 노동 1호 첫 번째 시험발사 - 노동호 시리즈는 일본이 사정권에 포함됨
-1998년 대포동 미사일 첫 번째 시험 발사. 대포동 시리즈는 괌이 사정권에 포함됨
-2006년 시험 발사하고 실패한 대포동 2호는 미국 서부 지역도 포함
-2009년 대포동 2호 2차 실험 발사했으나 미국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판명되었음. 그러나 2006년 미사일보다 발전했다는 평가.
DJ, 노무현 정부 때 일어났던 일이 바로 미국을 사정거리에 둔 발사기술 테스트였습니다.
그리고 2006년 지하에서 핵폭탄 실험했지요. 2차 실험은 2009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80~90년대에 원료 모으고 기술 배우고 시설 짓고 우리나라까지 도달하는 미사일 기술 개발해 놓고
실질적인 핵개발 거의 다해놓은 마당에
DJ, 노무현 정부 때 북한에 들어간 현금이 핵개발의 주요원인인 양 하는 건 억지 지요.
다음은 가장 논란이 되는 북핵의 자금원입니다.
자금조달 소스
-1993년 이란과 핵 공동개발 협약. 미 CIA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이 북한의 핵 개발 자금을 지원하고 나중에 기술전수 받기로 함.
래리 닉시가 제공한 소스: Economist Foreign Report 1993. 4. 22, 연합뉴스 1993. 1. 26, 1994년 KBS-1 라디오 네트워크 1994. 2. 24
-1993년 미국 하원의 보고서(Republican Research Committee 작성)에 따르면, 이란이 북한에게 핵을 공동으로 개발해주는 댓가로 주는 자금은 5억달러, 한화로 5천억원.
래리 닉시가 제공한 소스: US News and World Report 1993. 3. 29. 연합뉴스 1993. 7. 16
-1990년대 북한은 스커드 미사일과 노동 미사일을 파키스탄, 이란, 예멘, 시리아, 이집트에 수출 (가격은 명시되지 않음)
“In the 1990s, North Korea exported Scud and Nodong missiles to Pakistan, Iran, Yemen, Syria, and reportedly Egypt.”
중동 뿐 아니라, 남아시아 국가에 수출
“The fourth level of North Korea’'s missile program has been the export of missiles to other countries in the Middle East and South Asia and joint collaboration in the development of missiles with Iran and Pakistan.”
1997년 시리아에 핵반응로 공사 (이란 자금으로)
2000년대에도 복수의 중동국가와 북한의 무기 협력은 계속되며 일본 산케이 신문 등에서 보도됨
즉, 래리 닉시 보고서에서는 90년대 중동, 동남아시아 쪽 국가들과의 무기 및 핵기술 거래가
80~90년대 집중된 북한 핵개발의 주된 자금원으로 언급 되며
한국 정부의 자금 지원은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한나라당과 보수신문이 주장하는 김대중, 노무현의 핵무기용 퍼주기설,
현대그룹의 대북지원금이 원인이 되었다는 얘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황적으로 보아 80년대 소련과의 거래 혹은 소련으로부터의 지원,
90년대 중국과의 거래 혹은 중국으로부터의 지원이 있었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위에 언급한 한국경제신문의 기사를 읽어보면,
래리 닉시 보고서에서 딱 한부분만 발췌해서 그게 전부인양 하고 있지요.
바로 우라늄 관련 수입이 2000~2001년 경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개발이 60년대부터 시작되어 80~90년대에 거의 완료되었다는 큰 그림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현대가 2000년 금강산 관광 개발 사업권 비용을 지불한 사실과 연결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