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빨갱이들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안 지키면 자녀들이 큰일 난다."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다. 70년대도 아니고 2014년도에 '빨갱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다니. 영화 < 건국대통령 이승만 > 의 시나리오 심포지엄에 이 영화의 제작 총감독을 맡은 서세원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 역시 믿지 못할 얘기다. 한 때는 그래도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던 개그맨이 아니었던가.
서세원의 이 말은 이 날 행사에 참여한 김길자 대한민국사랑회 회장과 애국총연합회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이 영화 < 변호인 > 을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되살리려 한다"며 비판한 것에 대해 덧붙여 나온 발언이라고 한다. 그것이 어떤 경로로 나온 것인지는 몰라도 그 발언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와 이 영화의 시나리오 심포지움이라는 행사가 얼마나 비상식적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일이다.
서세원은 이런 얘기도 했다고 한다. "똥 같은 상업영화 때문에 한 국가와 시대, 민족이 잘못된 집단최면 상태에 빠지고 있다." 또 이 영화의 후원자인 서울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 < 변호인 > 이 천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나라가 망하고 있다는 뜻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대중들의 선택에 대한 상식 이하의 폄하가 깔려 있다.
대중들이 선택한 상업영화들을 '똥' 같다 표현한 것이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 변호인 > 을 본 천만 관객은 졸지에 나라가 망하는 지표가 되어버렸다. 이를 '빨갱이' 발언과 연관해 생각해보면 이들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 이들은 어쩌면 < 변호인 > 을 본 천만 관객을 빨갱이에 물든 대중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설마.
물론 서세원은 자신의 발언의 과격함을 의식했는지 "이번 기회에 하나가 되고 이념 싸움을 하지 말자.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것이 부끄럽다." 또 "이승만 나쁜 놈, < 변호인 > 나쁜 놈 하지 말자"는 발언을 덧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굳이 < 건국 대통령 이승만 > 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 변호인 > 운운한 것에는 분명한 의도가 엿보인다. 사실은 '빨갱이' 운운해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념적인 잣대를 내세워 일종의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는 것.
사실 < 건국 대통령 이승만 > 과 < 변호인 > 은 비교자체가 될 수 없는 작품이다. 제목에서부터 비롯되듯이 < 변호인 > 은 굳이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아도 작품 자체로 충분히 대중들을 끌만큼 자족적인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다. 하지만 < 건국 대통령 이승만 > 은 말 그대로 대놓고 이승만 대통령의 영화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러니 영화는 제작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념적인 잣대부터 내놓는 것일 게다.
그렇게 자신이 없는 걸까. 대중들의 자유의지로 선택 받기는 애초에 글렀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니 상업영화를 '똥 같다'고 말하는 것이고, 그런 영화를 선택한 대중들을 망국의 징조로까지 자극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영화가 3천만 관객을 동원해 한국이 잃어버린 건국 정신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놀라운 발언이 아닌가. 영화를 얘기하면서 '잃어버린 건국정신 회복'을 운운하는 것도 우습지만, 여기에 3천만 관객 동원이라는 상업적인 수치를 덧붙이는 것은 말 그대로 블랙 코미디다.
영화가 영화로서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애국주의와 연결되며 허상을 만들었던 경험을 우리는 이미 심형래의 < 디 워 > 논쟁에서 겪은 바 있다. 이번 '빨갱이' 발언으로 논란에 불을 지핀 서세원의 < 건국 대통령 이승만 > 이라는 영화 제작 심포지엄에서 < 디 워 > 심형래의 망령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종교행사 같은 분위기에 국가를 운운하며 특정 이념을 강요하는 심포지엄. 제 아무리 이념도 장사가 된다지만 그렇게 자신이 없는 걸까. 설마 종교적인 믿음이나 애국주의까지 들먹여야 겨우 볼 수 있는 영화라 스스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영화감독이라면 자신의 영화에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