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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끼치게 받기 싫은 그런 전화.
게시물ID : menbung_487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보쿠와오마케
추천 : 11
조회수 : 935회
댓글수 : 27개
등록시간 : 2017/06/24 21: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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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큰아버지의 칠순이다.

나는 갈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의가 있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

물론 수강생이 없는 토요일이지만 나는 그런 핑계로 가지 않았다.

아버지께선 꼭 와서 얼굴이라 비추라고 하셨지만 난 가지 않았다.

늦은 결혼 때문에 또는 잘 안풀리는 직장의 이야기, 아니 얼마전 헤어진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꺼내기 싫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단 한 사람 때문이었다.

28년 전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때 우린 큰 아버지댁에 가서 자주 놀았다.

거긴 형 두 명과 장녀인 누나가 있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 형제와 터울이 크지 않아 자주 어울려 놀았고 그 날도 그런 비슷한 날이었다.

그 날은 내가 몸이 별로라서 동생과 사촌들은 놀러 나갔고 나는 할머니가 한 숨자라고 비켜주신 할머니 방에서 뒤척이며 누워 있었다.

그때 나가 놀러간줄 알았던 누나가 들어왔다.

아픈지 물어보고 내 얼굴이나 이마에 닿아야 했을 그 손이 내 바지 언저리에 있었다가

'재미 있는거 알려줄게.'라며 속삭이며 속옷 안으로 손이 들어왔다.

그렇게 얼마인진 기억나지 않는 수분 혹은 수십분의 시간은 할머니의 인기척이 문밖에서 날때까지 이어졌고

나는 그 누나가 싫어졌고 무서워졌다.

그 뒤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큰집은 무조건 어른과 같이 있거나 동생과 붙어있었고 다행히 얼마후 우리집 사정으로 우린 큰집으로 놀라가지 않을 거리의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다.

누군가에게 말을 했어야 하는 상황인지도 몰랐을 나이였고 그 뒤 사춘기를 거치며 그 행동들이 뭘 의미하는지 알게 됐을때 나는 그 누나를 저주했다.

그날 오후의 햇살이나 할머니방의 냄새, 천장의 전등과 단순히 반복하는 무늬가 아직도 생각나는 나는 지금도 그날의 꿈을 꾼다.

그렇게 보고 싶지 않은 누나였기에 누나의 결혼식과 형들의 결혼식도 가지 않았고 심지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도 나는 가지 않았다.

오늘, 아버지는 본인이 전화를 하셔서 직접 나를 바꿔 주시며 큰 아버지에게 인사를 시켰고 

바로 뒤에 'XX 누나도 있는데 바꿔줄까?' 하셨다. 당황스러웠지만 난 피하고 싶었다. 서둘러 다시 강의를 들어가야 한다고 전화를 끊었고

한 40여분뒤 잔치 끝났다시며 아버지가 다시 연락을 해오셨다.

'앞자리에 XX 누나 앉아 있는데 바꿔줄까?'라시며 다시 말을 하시길래

'저 아직 강의 중이에요.'라며 다급히 끊어 버렸다.

어찌 사는지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날이다. 
아니 그냥 죽어버렸으면 했던 날이 많았던 사람인데 내 속내를 30년 가까이 모르시는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그런 전화를 권유했다.

아버지가 미웠지만 미워해야할 대상은 그 쪽이 아니니까 난 오늘도 그 사람이 빨리 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죽으면 내가 전화 받을 일이 없을테니까 오늘은 잠들기 전까지 XX누나가 죽기를 바라고 내일 아침의 난 이 더러워진 기분이 사라져 일상의 나로 돌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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