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아저씨는 제가본 사람중 가장 뛰어난 파렴치한인것 같아요.
어쩜 그렇게 뻔뻔하기가 하늘을 찌르세요?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그렇죠. 사람을 봤으면 인사를 하고 퇴근길에 만나면 수고했다 따듯한말 건내는게 당연한거 저도알아요.
그치만 그렇게 사람대접 받고 싶으셨으면 개처럼 행동하진 마셨어야죠.
제가 살아온 22년동안 아저씨는 쓰레기여도 안아주고 싶은사람.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는사람. 아프면 걱정되고 괜찮냐 약먹었냐 물어봐주고
싶은 사람, 가끔은 작아보이는 어깨가 안쓰러워 힘내라고 사랑한다고 해주고 싶은사람 이었어요.
그런데 더이상 쓰레기를 품에 안고 살아갈수가 없네요.
아저씨, 아저씨가 저희 가족에게 준 상처는 지옥불구덩이에 가셔서 매일매일 참회에 눈물을 흘리신다해도 다씻을수 없으실거에요.
저는 아저씨의 모든 행동을 기억하니까요.
저 초등학교 2학년, 우리 오빠나이 12살.
친구분 차에 얻어타시고 돌아오시던 길에 주차장에서 전화를건 엄마의 통화목소리를 듣고 그 울림에 노래방 아니냐며 집에 들어오신 엄마를 폭행했던것. 그때 엄마가 너무힘들어 뒤돌은 아저씨의 목을 졸랐지만 그렇게 쉽게 벗어날수 없다는건 어린나이인 저도 알고있었어요.
작은 몸으로 엄마를 때리는걸 막아보겠다고 아저씨 바짓가랭이를 잡고 늘어졌고, 겁만은 우리오빠 눈물뚝뚝흘리며 방구석에 움츠리고 울던것 모두 기억합니다.
저 초등학교 3학년, 우리 오빠나이 13살.
말다툼하시다 뒤돌은 우리엄마 뒷통수에 아저씨가 던진 리모컨이 정확하게 맞았었어요. 내눈앞에서 흰자만 보이며 쓰러지시던 엄마의 모습에
어찌나 현실감 없던지 처음엔 눈물도 안나오고 장난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었어요.
몸을 덜덜떨며 거품을 무시던 낯선엄마에 모습에 그제서야 진짜구나 했던것같네요. 닦아도 닦아도 거품은 계속나오고 오빠와 내가 아무리
엄마,엄마 하고 소리쳐도 대답없는 엄마.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아저씨가 했던말. 생생히 기억합니다.
'뭘 쳐울고 자빠졌어. 119를 부르던지 내비두던지'
저 중학교 2학년.
시골에서 올라온 홀로 외톨이 되신 우리 외할아버지가 딸내미는 잘사나 올라오신 그날.
할아버지는 큰방에서 혼자 잘들리지도 않는 귀로 텔레비전을 보시고 아저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작은방 컴퓨터로 고스톱을 치셨었죠.
어린나이인 저였지만 성치않은 몸 이끌고 서울까지 오신 할아버지 옆에서 말동무 해주지 않던 아저씨가 철이 없어 보였어요.
이날도 엄마와 아저씨는 말다툼을 하셨어요. 아저씨가 그러셨잖아요. 할아버지가 직접 재배하신 쌀 받기싫으니 돌려보내라고.
엄마도 그랬겠지만 저도 이해할수가 없었어요. 이건 그냥 할아버지가 딸을 생각하는 마음인거잖아요.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아저씨 모습에 놀란 할아버지가 옷을 챙겨입으시고 가신다고 너무 오래있었나 보다고 하셨었죠.
급히 신발을 찾으시는 할아버지 팔을 부여잡고 울던 엄마 모습이 생각나요.
'아버지, 아버지 가면 저 맞아죽어요. 가지마세요 아버지..'
엄마의 처절한 부탁에 할아버지는 그날 불편한 마음으로 하룻밤 지내시고 아저씨 출근한 다음날 새벽에 바로 짐챙겨 시골로 내려가셨던거 기억해요.
아버지에게 좋은모습 못보여드리고 힘들게 사는 모습만 보여드린 엄마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지 저는 감히 상상도 못합니다.
저 고등학교 1학년.
그날도 어김없이 입에 담을수 없는 욕을하시며 주전자 의자 가방 선풍기 눈에띄는 물건들 모조리 집어던지고 그것도 모자라 멱살잡고 구타까지하시는
아저씨를 못버티고 아저씨 화장실간 사이 몰래 집나가신 엄마. 그때 저한테 빨리 나오라고 같이 가자고 다급하게 말하던 엄마따라 저도 같이 도망가고 싶었지만 파자마차림이었고, 혹시나 아저씨가 소리듣고 화장실에서 튀어나올까 겁이나 못따라갔어요.
그리고 그 야밤에 엄마를 찾아오라며 파자마 입은 저를 밖으로 내몬 아저씨. 그때 엄마 찾지않고 밖에 숨어있다 집으로 들어간거였어요.
엄마가 어딨는지 모르겠다는 제말에 제 온몸을 때리셨었죠.
그날 처음으로 아저씨께 제가 반항했잖아요. 아저씨를 밀쳐내고 주먹으로 아저씨를 그냥 막 때리면서 말했어요.
'이렇게 때릴려고 나 낳으셨어요? 왜낳았어요 그냥 죽이세요'
지렁이도 밞으면 꿈틀한다잖아요. 저는 아저씨한테 밟힌 지렁이일 뿐이라 꿈틀해봤어요. 그러면 혹시나 움찔하실까봐서요.
그날 옆에 놓여있던 스킨병을 부여잡은 주먹으로 얼굴을 맞으면서 생각했어요. 난 아빠가 없어.
대학도 졸업했고, 이제 제 앞가림은 할수있는 미용사인 저와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 다 부러워하는 대학들어간 우리오빠.
거기서도 장학금 받고 학교다니면서 ROTC까지 됐어요. 지금은 장교로 군대들어간 자랑스런 내 오빠는 겁많던 울보소년이 아니에요 이제.
아저씨가 해주신거라면 돈이겠죠. 여지껏 이만큼 키워주신것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저씨에 돈보다 우리 엄마의 돈이라고 해야 맞는거 아셔야해요.
우리엄마보다 7살이나 많은 아저씨가 하실수 있던 일은 경비일 밖에 없으셨어요. 한달에 많이 받으시면 고작 120만원.
그돈으로 4명이 먹고살기는 턱없이 부족해 우리엄마 마흔이란 나이에 공장에 들어가 일하셨고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서 아저씨 드실 도시락싸고 아저씨 새벽에 출근하시면 아침 7시 30까지 일나가신 엄마. 하루꼬박 일하시고 밤 10시 다되서
집들어오시면 그 양손엔 내일 아저씨 해드릴 반찬재료가 들려있었어요.
피곤하신몸 이끌고 음식하다가 새벽 한시다되서 잠드시던 우리엄마. 그렇게 힘들게 버신 돈, 자기 통장으로 못넣으시고 아저씨께 매달 가져다 드린것도 알고있어요.
엄마가 번돈이 더많지만 엄마꺼는 없어요. 다 아저씨꺼 잖아요. 아저씨집, 아저씨 통장.
저번 달, 오빠가 친구들과 군대가기전 마지막 여행을 간 날.
술먹고 들어오신 아저씨가 부린 술주정에 짜증이난 제가 톡쏘아붙이자 아저씨 다 큰 성인이 된 저를 또 때리셨어요.
아저씨의 큰 덩치 큰주먹은 막을수가 없더라구요. 아저씨가 날린 주먹에 제가 코를 부여잡고 코피를 질질 흘렸잖아요.
그때 아저씨가 하신말 지금생각해도 우습더라구요.
'이 xx끼가 언제 코성형했어. 이 새끼 코 부여잡는거 봐라?'
제가 코를 부여잡은건 맞은 코가 아파서였구, 콧대가 높아진건 아저씨가 때려서 부어오른거였어요.
그렇게 다음날 저와 엄마는 집을 나왔고 가진게 없던 저희는 교회에서 잠을 잤어요.
그리고 이틀되는 날 여행에서 돌아오는 오빠가 걱정되 엄마는 아저씨가 계신 집으로 다시 들어가셨어요.
곧있으면 군대갈 오빠가 혹시나 상처받고 입대할까 걱정되셨던 거겠죠.
하지만 저는 한달동안 집을 나와살았어요. 친구집을 옮겨가며 자기도 하고 교회에 몰래 들어가 잠을 자기도했어요.
그래도 행복했어요. 아저씨 얼굴을 보지않아도 됐고, 아저씨한테 얽매여서 하루하루가 지옥같진 않았거든요.
그때에 저가 자유롭다고 느껴질 정도 였으니까요.
그러다 매일 우리 걱정을 하시는 엄마는 입대 몇일 안남은 오빠때문에 다시 집에 들어갔죠.
오빠 군대들어가고 오늘이 3일째네요.
몇일 조용해서 아저씨가 나한테 미안한가라는 생각이 잠깐들었어요. 아저씨가 뻔뻔한 사람이란걸 잊었었네요.
저한테 인사를 바라지 마세요. 저는 아저씨를 용서해서 들어온게 아니니까요.
저하고 대화하려고 하지도 마세요, 저하고 눈을 맞추려고도 하지마세요. 제 관심 제 웃음 제 이야기 저에 대한 모든거에 관심갖지마세요.
아저씨를 위한건 하나도 없어요. 아저씨는 제 마음속에서 죽었어요.
제가 죽였어요. 한달전 저를 때린그날 아저씨가 방문에 꽂은 식칼로 아저씨를 죽였어요.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죽이라고. 아니면 죽여버릴테니까 나 자고있을때 죽이던지 알아서 하라고.
그때 전, 제 마음속에선 방문에 꽂혀있는 식칼을빼 아저씨를 죽였어요.
네, 저는 마음속으로 아저씨를 죽인 살인자에요. 제가 지은 죄는 나중에 받을게요. 엄마랑 오빠 힘들지 않게 행복하게 살게되면
그때 제가 지은 죄 달게 받을게요. 약속해요.
그러니 저를 아는척 하지 말아주세요. 아저씨는 제 마음속에선 이미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제가 열심히 벌어서 엄마와 오빠를 데리고 엄마가 벌어서 구한 아저씨 이름으로된 그집을 나와드릴께요.
그러니 그때까지 저한테 제발 관심 갖지 말아주세요.
아저씨, 아니 아빠. 안녕히 계세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런글 올려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