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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술라 미술(히베르노-색슨 미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中
게시물ID : history_48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monade
추천 : 2
조회수 : 345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6/27 09:04:01
지난 글 : 인술라 미술(히베르노-색슨 미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上 2. 인술라 미술의 특징 인술라 미술은 앞서 언급했다시피 고대 켈트족 미술과 고대 게르만 미술, 그리고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을 품고 있는 초기 기독교 미술의 혼합 미술이다. 따라서, 이 미술에 대해 분석하다보면, 당시의 사회상 역시 유추가 가능하다. 다시 상기하자면, 성경은 당시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성경 장식은 그 귀족의 위상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었고 따라서 성경을 아름답게 꾸며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 때 유럽 대륙에서는 성경 표지에 로마인들이나 지역 토호들에게 약탈한 것으로 보이는 보석들을 성경 표지에 박아 장식함으로써 자신들의 성경이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를 어필했고, 당연히 이 때 널리 유행했던 도적 기사들이나 떠돌이 기사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성경을 소지한 귀족의 호위대는 정예로 꾸려지기도 했다. 한편, 겉표지를 그렇게 화려하게 장식하고 나니 정작 책 본문은 약간의 삽화가 들어있는, 그야말로 소박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는 그냥 책이었다. 로마 제국 시대에도 제국의 변경으로 여겨져 늘 질박하며 그런 사치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브리타니아에서 성경의 표지를 보석으로 장식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돈이 많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질박함이 고대 켈트 미술의 재발견으로 이어지고(물론 상술했다시피 옆 동네 동족들의 영향도 강하게 받았고), 따라서 보석이나 금실 대신 사람이 한 줄 한 줄 정성스럽게 그린 자연주의적인 그림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예제로 든 것은 모두 인술라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인 린디스판 복음서의 부분인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켈트족 취향에 맞춰져 있음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인술라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남긴 양식은 바로 말기 "라텐(La Tene)" 양식인데, 이를 통해 로마 제국 시대에도 로마의 미술이 켈트의 미술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더로우의 서, 마르코 복음 첫 부분. 라틴어로 '시작'인 Initium을 켈트식으로 형상화했다. 말기 라텐 양식의 대표적인 특징은, 바로 나선과 원형에 대한 선호를 들 수 있다. 특히, 고대 갈리아에 관한 그림을 볼 때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트리스켈레스(Triskeles : 켈트의 대표 문양으로, 나선으로 이루어진 원 세 개가 삼각형 모양으로 얽혀 있는 것.)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책에서 여백을 남기기 애매한 곳은 거의 이러한 기하학적 무늬로 채워졌다. 켈트족은 이런 기하학적 무늬를 밀도있게 배치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것은 인술라 미술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전통적으로 켈트족은 직선보다는 곡선을 선호했으며, 위에 예시로 든 그림에서 이러한 나선과 원형에 대한 집착을 확인할 수 있다. 인술라 미술의 게르만적 특징은, 바로 동식물의 기하학적 배치를 들 수 있다. 켈트족 역시 동물을 숭배하기는 했으나 그것을 그림으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위 그림에 보면 곡선과 원형이 다양한 동식물을 모티브로 해서 나타났는데, 이것은 보통 게르만적 요소라고 여겨진다. 게르만족은 이러한 동식물적 모티브를 기하학적으로 배치하는 것을 선호했으며, 이는 암흑 시대의 미술이 자연주의적 특성을 띠는 것과 관련이 있다. 고대 게르만 양식의 미술을 보면 식물은 주로 덩굴이 있는 식물이 선호되었고, 동물적 모티브로는 힘센 용과 같은 것들이 많이 나타나곤 했다. 이러한 기하학적, 동식물적 모티브에 거기에 채색을 입히는 화려한 미술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다름 아닌 로마의 모자이크 미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색채 감각 자체는 켈트족 취향이지만, 그림을 여러 부분으로 잘게 나누고 그것을 색채로 재구성한다는 생각은 모자이크 양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위에 예시를 든 것이나, 밑에 예로 들 키로(XP) 문양이 켈트적으로 재구성된 문양은 단순히 크게 그려진 것이 아니라 글자의 테두리를 유지한 채 안쪽을 모자이크와 같은 양식으로 그려놓았는데, 이것은 로마 미술의 영향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린디스판 복음서에 등장하는 키로(XP) 문양. 켈스의 서(The Book of Kells)에 나타난 키로 문양. 더로우의 서(The Book of Durrow)에 나타난 키로 문양. 뭐니뭐니해도 인술라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에 기독교 미술을 빼먹을 수 없다. 위에서 제시한 세가지 표현 방식의 영향력만큼이나 기독교 미술의 영향은 막대하다고 볼 수 있는데, 켈트족 양식이 주가 되어 로마, 게르만적 요소가 혼합된 이 미술 양식의 주된 표현 대상이자 존재 이유는 바로 기독교의 전파에 있었다.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 말기의 조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던 데 비해, 브리타니아 제도에는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나서야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었으므로 당연히 로마 교황의 영향력이 약했다. 유럽 대륙에서 건너간 일련의 선교사단은 브리타니아를 급속히 기독교화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옛날 초기 기독교 시대에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재빨리 흡수하여 세력을 키운 것처럼 이 지방에서도 켈트 문화를 흡수하여 급속하게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켈트족 양식의 십자가. 부조를 보면 알겠지만 초기 기독교 미술의 영향이 짙게 배어있다. 3. 인술라 양식 부조 이 지방의 미술 양식-켈트, 게르만, 로마의 혼합 양식-을 그대로 흡수한 기독교 미술은 이 지역에서 그 세력을 널리 떨칠 수 있었으며, 유럽의 다른 부분과는 구별되는 매우 독자적인 양식을 취할 수 있었다. 위에 제시된 이른바 '켈틱 크로스(혹은 하이 크로스)'는 바로 이 시대의 유물이며, 독특한 양식의 성경과 함께 인술라 미술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꼽을 수 있겠다. 켈틱 크로스의 십자가 중심에 있는 원 무늬는 이것이 켈트족의 유물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고대 태양신 신앙의 흔적이다. 켈틱 크로스에는 보통 복잡한 부조가 들어가는데, 이것은 로마 말기의 초기 기독교 부조에서 유래한 것이다. 다만, 그리스-로마로부터 내려온 콘트라포스토의 전통에서는 약간 비껴나 있으며, 그 내용은 보통 성경의 내용을 새기거나 켈트족의 역사를 서술한 것, 혹은 위에 나타난 것처럼 고대 게르만 양식의 덩굴 무늬 등 소재는 다양한 편이었다. 노섬브리아에 있는 이스비 십자가. 전, 측, 후면 부조의 내용이 모두 다르다. 십자가 뿐만 아니라 비석도 발달했는데, '픽티쉬 스톤'이라는 비석이 당시에 가장 유행한 비석 양식이었다. 픽티쉬 스톤은 보다 이교적인 색채를 많이 띠는데, 이것은 주로 스코틀랜드의 픽트족 양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 그 이름에 걸맞게 이것은 주로 구 로마 제국령 브리타니아보다 로마 제국령 바깥에 있었던 칼레도니아에서 발견되는데, 당시 유행하던 인술라 양식의 모티브를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을 보아 당시 앵글로-색슨 7왕국과 스코틀랜드의 교류가 나름대로 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속 공예도 나름대로 발달했는데, 금속 공예는 주로 게르만족의 양식을 그대로 답습한 면을 보여준다. 캐드볼의 힐턴 비석. 가장 상태가 좋은 픽티쉬 스톤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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