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때의 광기와 범죄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진거 같아 좀 씁쓸합니다.
우선 악갤러님이 주장하시는 부분에 대한 근거를 가져와 주신다면 다른분들과의 의미있는 토론이 진전될듯합니다. 그리고 보통 근거는 기존에 대항해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는 분들이 '먼저'제시하는 편이 보편적인 방식이죠.
전쟁 자체는 나찌독일이 원했던 것입니다. 처칠은 39년 이후 2차대전 이후 수상이 됩니다. 물론 그 전부터 히틀러를 위험인물인 것을 파악하고 경계했죠. 처칠 이전의 수상인 체임벌린은 38년 그 역사적인 종이한장을 통해 어떻게든 전쟁을 막으려했죠. 36년 라인란트 재점령, 베르사유조약 파기, 군비확장 등의 우려스러운 상황이 계속되다가 38년 오스트리아 합병과 체코의 주데텐란트 할양요구에서 유럽의 긴장감이 절정에 이르죠.
36년 8월에 시작된 독일의 군비확장 전에는 독일도 불황으로 인한 실업자와 전후 파괴된 공업력 회복에 정신이 없었죠. 그게 선행되지 않는다면 나찌당 역시 국민의 지지를 잃을테니까요. 뭐 그 경제복구가 성공하다보니 타국에서도 평화를 옹호하고 주장했던 히틀러를 좋은 지도자로 볼수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말입니다.
뭐... 그리고 평등사회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평등이 특정 인종에게만 적용되는게 평등입니까? 순수아리안 인 종. 그것도 조상중에 유태계가 없다는 족보를 인증해야 하는 사회가 평등한 사회라고 볼 순 없습니다.
유태인에 대한 포그룸은 그 역사가 깊다고 합니다. 중세 이후 시작되어온 것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사악한 행위라 합니다. 프랑스와 소련에서도 존재한 일입니다만 그게 대규모 학살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죠. 그리고 학살이 조작이라 하시는데 뭐, 스탈린에 의해 가해진 학살도 전후 나찌독일의 짓이라 넘겨진 것도 있으니 그러실수도 있지만 나찌독일이 유대인 절멸을 시도하려고 했고 그것이 실시되어 수없이 많은 유태인들이 죽은 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또한 유태인뿐만이 아니라 슬라브인, 집시등 많은 인종이 학살되었으며 자국민 중 정신이상자, 불구자에 대한 중절 수술을 행했으며 ss대원과 젊은 처녀들을 모아 우수한 아리안종을 대량생산하고자 한 좀 어처구니 없는 인종개량을 하기도 했죠.
36년 이전까지는 저도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히틀러는 36년에 단명한게 아니라 45년까지 살았고 그 10간의 시간은 어떻게 설명하실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연합국이 전쟁을 도발하고 원했다라고 하는데 독일의 군사력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려 했던 시도들은 어떻게 해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유럽열강은 이합집산이 있기는 하지만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프랑스는 1차대전 이후 같은 배를 탔고 소련도 고립주에서 벗어나 38년엔 독일이 주데텐란트 요구 거부에 전쟁을 개시할 것에 대비하여 백러시아 군관구에 동원령을 내린것을 보아 역시 독일에 대항하는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했음이 확인됩니다. 그러한 상황인데 폴란드의 독립은 영국과 프랑스가 보장하고 있었습니다.
38년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기위해 주데텐란트 합병을 인정했더니 체코를 합병까지 한 마당에 단찌히 햘양이 폴랑드 합병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그 누구도 할수 있는 겁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평화교섭을 시도하면 누가 인정할지 모르겠습니다. 상황을 할수없게끔 만들고서 평화교섭을 거절했다 해서 그 책임이 거부한 사람의 책임이 되는건가요?
단찌히에서의 독일인 학살이 전쟁의 명분이 된게 아니라 통조림작전이라는 조작을 통해 명분을 만들어서 9시간 후에 폴란드 침공이 개시되었습니다. 학살에 대한 항의와 배상요구, 그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가 아니라 조작을 통해 전쟁을 하면 뭐... 그때는 그래도 1939년입니다. 고대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 법령이 만들어진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36년까지의 상황만이 아니라 45년까지 히틀러의 죽음까지 바라보시는 건 어떠신지 한번 여쭈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