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회찬 전 국회의원에 대한 안타까움.
정의롭게 신념에 따라 행동하셨던 것에 대해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에 부인이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다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노회찬 전 국회의원의 부인이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된 것은 시대적 상황에 대한 그리고 노회찬 전 국회의원의 억울한 판결에 대한 상징성 이외에는 없다고 본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국민을 대표하여 의사를 결정하는 자리이다.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그런 자리를 상징성만을 가지고 대신할 수는 없다. 부부가 일심동체라지만, 노회찬 전 국회의원의 인생과 부인 김지선씨의 인생은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 수학선생님이 아팠다고 하자. 부득이하게 수업을 못하게 되었다면, 그 빈자리를 다른 과목선생님이 채워줄 수 있을까? 수학시간에 국어선생님이나 영어선생님이 들어온다면 수학선생님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냐는 말이다. 그럴 수 없다. 수학선생님의 자리는 다른 수학선생님으로 채울 수는 있지만 아파서 빠진 수학선생님과 친한 영어선생님이 그 자리를 채워줄 수는 없다.
그래서 억울하게 국회의원직에서 내려오신 노회찬 전 국회의원이 상징성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선택을 하신 것에 대해 안타깝다.
2. 상징성에만 집중해서 자신의 생각인 것마냥 안철수를 무조건 비난하는 국민들에 대한 안타까움.
정치에서 상징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상징성으로만 대통령이 된 사람을 알고 있다. 벌써부터 불통과 함께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징성과 능력은 별개의 문제다. 국회의원이 대통령보다 중요하지 않은 자리라 할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을 억울한 노회찬 전 의원에 감정이입하여 김지선씨의 당선을 무조건적 지지하고, 안철수의 노원병 후보등록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 안타깝다.
우리는 노회찬이라는 수학선생님을 잃었다. 친한 영어선생님(김지선)이 아니라 다른 수학선생님(안철수)의 등장을 오히려 환영해야 한다.
여러 수학선생님들 중에 우리가 누구를 고를지는 선택할 수 있다. 수학 수업을 담당할 사람은 수학선생님 중에서 고르자. 그 수학선생님의 능력은 그 다음에 살펴봐야 한다. 수학 수업에 영어선생님을 앉혀놓지 말자.
3. 비난을 이겨내기 보다는 감내하는 듯한 안철수에 대한 안타까움.
개인적으로 안철수는 우리 정치판에 새로운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나에게 희망과 환희를 안겨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역경을 이겨내기 보다는 감내하는 듯하다. 정치인이니까 비난을 감수하는 듯한 모습이다. 뭔가 이해와 소통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안타깝다. 물론 아직까지 난 기대한다. 안철수가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희망과 환희를 안겨줄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안타까울 뿐이다. 분명히 좋은 사람인데 다른 정치인들과는 그릇의 모양이나 크기가 다른 사람인데....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